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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腦時代 18장-

[서현]

'분명 이상해...'

태연은 요즘 들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진행되던 변화는 어느새 자신이 확연하게 느낄 정도로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분명히 지혁 오빠를 칭찬하기는커녕 언급하는 것도 싫어하던 애들이었는데 대체 왜... 아무리 지혁 오빠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혁을 언급하는 멤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심지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금은 전체 멤버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틈만 나면 지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분명히 지혁과는 상관없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그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 역시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담배 냄새나 풀풀 풍기던 옛날의 지혁과 달리 지금은 그에 대해

더는 나쁜 감정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지혁은 호감에 더 가까웠지만 최근 들어 다른 멤버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지혁과 다른 멤버들 사이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만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다른 멤버들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현재 이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날 리가..."

"태연아, 태연아?"

"다른 사람과 상의라도 해봐야 하나. 그런데 누구랑 상의해야 하지?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태연아, 태연아!"

"어, 어?! 왜 불러 유리야?"

"아까부터 계속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무슨 고민거리? 고민거리가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나한테도 말해봐. 같은 멤버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히힛."

"아니야 됐어. 별거 아니니깐 그럴 필요까진 없어.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럼 수다 그만 떨고 다시 연습이나 하러 갈까?"

유리의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친 태연은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최근 들어 며칠 뒤 있을 컴백 무대를 위해 Hoot 안무를 연습 중인 연습실로 걸어갔다.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일단 나 혼자서 알아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 태연의 뒤에서 유리가 수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후아아~!"

한국에 있을 당시엔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언니들 몰래 빠져나와 혼자서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서현.

몇 달 전 혼자서 산책하다가 (다행히 지혁이 구해줬지만) 낭패를 볼 뻔했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숙소 주변 길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저녁 산책을 못했었던 답답함을 풀기라도 하듯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녁에 혼자서 산책을 감행하는 서현이었다.

"역시 저는 저녁 산책을 해야겠네요. 컴백 무대를 앞두고 복잡해졌던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에요."

오랜만의 저녁 산책이 상쾌했는지 혼잣말을 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가는 서현.

텅 빈 공원을 걸어가다 벤치를 발견한 그녀는 잠깐 지친 다리를 달랠 겸 그곳에 앉아 어느새 까맣게 변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변했네요. 제가 숙소에서 나왔을 땐 여름이라 해가 늦게 져서 그런지 그때까지는 아직 파란 하늘이었는데."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쉬던 그녀는 이 정도 쉬었으면 됐다 싶었는지 다시 벤치에서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이정도면 충분히 쉰거 같으니 다시 출발해 볼.. 읍!!"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손수건이 나타나 그녀의 입과 코를 덮었고

잠시 버둥거리며 저항하던 그녀는 이내 기절했는지 축 늘어졌다.

그리고 쓰러진 그녀의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명이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목표물 탈취 성공했습니다. 거보십쇼. 제가 이거 하나면 직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얌마, 내가 언제 성능 때문에 그거 쓰지 말라고 했어? 효과가 아무리 좋아도 웬만하면 그거 쓰지 말라니까. 클로로포름이 몇 년 전에

쓰이던 마취제인데 그걸 21세기에 쓰고 있냐. 게다가 그거 발암 물질이잖아. 이번 고객이 목표물 이상 없도록 하라고 얼마나 신신당

부했었는데, 너 이거 얼마짜리 거래인지는 알고 있어?"

덩치 큰 남자가 쓰러진 그녀를 안아 들으며 어깨를 으쓱했고 다른 한 명은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덩치를 나무랐다.

"어차피 겉모습에는 별 이상 없으니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아무리 발암물질이라도 이거 잠깐 맡는다고 암세포 생기는 건 아니

지 말입니다. 이게 순수한 클로로포름도 아니고 물에 희석해서 약화시켰고요. 제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 머리는 있지 말입니다."

"알았다, 알았어. 니 알아서 해라. 그보다 아까 CCTV 처리하러 간 녀석들은 어떻게 됐냐?"

"공원 전체 CCTV 처리 완료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누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조용히 약속장소로 빠진다. 그리고 당장 고객에게 목표물 탈취 성공했다고 연락해."

무전기를 통해 다른 쪽 인원에게 지시를 내린 남자는 서현을 안은 다른 남자와 함께 다시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들이 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밤하늘의 달빛만 공원을 비추고 있었다.

.................

'터벅 터벅 터벅'

"내~일이면 다시 행복 끝 고생시작이구나. 이번에는 정식 휴가도 아니었고 국내 복귀 대비한다 뭐한다 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건만."

마트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양손 가득히 들고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지혁.

내일부터는 다시 소녀시대의 국내 활동이 시작돼서 그 역시 바빠지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일단 빨리 이것들부터 집에 가져다 놓아야겠군. 내일 일이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뭐."

내일 있을 소녀시대 국내 복귀에 대비해 그 역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양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에 국내 복귀고 뭐고 일단 집에 도착해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지혁이었다.

'You better run run run run run~~'

"집에 도착하면 일단 라면 박스부터 창고에 넣고 이건.. 어라?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전화지? 특별히 나에게 전화 올 일이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자신에게 전화할만한 사람이나 사건이 없었지만 일단 걸려온 전화는 받아야 하므로

지혁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심지어 번호도 처음 보는 번호군. 어디 일단 받아볼까, 여보세요?"

"...."

그가 전화를 받았음에도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전화했으면 말을 해야지 왜 아무 말도 없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전히 묵묵부답인 핸드폰.

"잘못걸려온 전화인가? 끊어야겠군."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한 지혁이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

핸드폰에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친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 지혁..오빠."

"...?! 서현이?"

매우 작고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방금 전화기에서 들린 목소리는 그가 알고 있는 서현의 목소리였다.

"서현아? 너 맞아? 니꺼 핸드폰은 어디다 두고 이런 번호로 전화한 거야? 아니 그보다 목소리가 대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다급하게 묻는 지혁의 목소리에도 대답하지 않는 핸드폰.

대답이 없자 답답해진 지혁은 계속해서 다그쳤고 잠시 뒤 핸드폰에서 남자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 잘 들었나 배지혁."

"...넌 누구냐? 대체 누구기에 내 전화번호랑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중요한 건 방금 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성이 지금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너 이 자식, 서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직까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다만 이제부터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지."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지혁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

지금 급한 건 자신이 아니라 지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느긋한 목소리였다.

"이 여성을 구하고 싶으면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와라. 대신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말고 너 혼자 와야 한다. 만약 이것을 어긴

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장소는..."

남자는 지혁에게 찾아올 곳을 알려주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지혁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혁 오빠?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태연아 혹시 지금 숙소에 서현이 있냐?"

"아뇨, 그러고 보니 아까 전부터 서현이가 안보이네요. 아마 또 몰래 빠져나가서 산책하고 있나 봐요, 돌아오면 혼내줘야지. 근데

갑자기 서현이는 왜요?"

"그..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마."

통화를 끊고 지혁은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 핸드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히 서현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태연의 말대로라면 서현은 지금 숙소에 없다. 정황상 서현이 납치 당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남자가 말한 장소로 가지 않으면 서현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소리다.

하지만 무턱대고 혼자서 찾아갔다간 그 역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지혁은 결론을 내렸는지 핸드폰을 꺼내 효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 봐도 함정의 느낌이 나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곳에 혼자 들어갈 수는 없지. 서현아 미안하지만 일단 나라도 살아야겠다.'

그 남자는 다른 곳에 연락했다간 서현이 다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 혼자서 그곳에 가는 것은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효운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근데 이 자식은 또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하여간 중요할때는 연락이 안되요 참."

지혁이 전화를 받지 않는 효운을 향해 본격적으로 욕하려고 할 무렵 딱 연결이 되었다.

"전화받는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히네. 그래도 일단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여보세...요?"

핸드폰을 들고 있던 지혁은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울린다고 느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분명히 자신은 서 있었는데 바닥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지혁이 땅바닥에 쓰러지고 뒤에서 피묻은 각목을 든 남자가 나타나 그를 들쳐멘다.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저 멀리 날아간 핸드폰에서는 '여보세요? 여보세요?'하는 효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빌어먹을...'

욕을 내뱉으려고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잠시 빙글빙글 도는 세상과 함께 지혁은 정신을 잃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