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洗腦時代 16장-
[윤아]
"여기가 일본?"
이곳은 일본의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그곳에 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린 것 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외국은 처음 와보는군. 그나마도 놀러 온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오게 된 것이지만."
그 남자의 이름은 배지혁. 휴가를 마치고 8월 부터 일본에 진출하게 된 소녀시대와 함께 그 역시 일본에 오게 되었다.
원래 SM에서는 소녀시대의 전체적인 총괄을 담당하는 효운과 달리 단순 로드매니저 일만 담당하고 있는
지혁을 일본까지 동행시키는 것은 예산 낭비라고 생각했었지만, 소녀시대 멤버중 과반수가 넘는
5명(제시카,유리,써니,수영,서현)이나 되는 멤버가 지혁의 동행을 요청했기 때문에 같이 오게 되었던 것.
물론 소녀시대의 그런 요청의 배경에는 지혁의 지시가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100% 국내에 남는다고 판단한 그는 소녀시대가 일본으로 출국하기 며칠 전부터
자신이 세뇌했던 멤버들을 차례로 불러서 자신도 함께 일본에 갈 수 있도록 SM에 요청해 달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얻기 전이였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일본에 가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없이 그냥 한국에서 쉬었겠지만,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얻은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소녀시대를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세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녀들과 가까이서 붙어 다니는 게 세뇌작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흠.. 그나저나 서현이는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애들은 내가 시켰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서현이는 나랑 일본에 같이 가고 싶어할
이유가 없는데?"
서현이 자신의 일본 동행을 요청한 이유가 궁금해진 지혁은 그녀가 왜 그랬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때 저쪽에서 자신을 호출하는 효운의 목소리에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배지혁! 배지혁! 먼저 가서 짐 챙기고 기다리라고 했더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예! 실장님, 지금 갑니다!"
아무래도 지혁이 그 이유를 아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할 것 같다.
.................
"오빠. 오빠도 오늘 온천 가실 거에요?"
"온천? 갈 수 있다면 나야 좋지. 근데 거기 나도 가는 거야? 거기 혼탕이라서 너희만 가는 거 아니었어?"
"혼탕도 있고 남탕 여탕도 있데요. 혼탕이 있으면 남탕이나 여탕은 없는 게 일반적인데 신기하게도 거긴 혼탕에 남탕, 여탕까지 다
있다네요?"
잠시 후 그들이 가게 될 온천에 대해 지혁과 서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본진출 한 달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처음으로 받은 휴가인 이번 온천여행은
무사히 일본시장에 연착륙한 소녀시대에 대한 포상의 의미가 짙었다.
소녀시대가 일본에 도착한 지도 어느새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그들이 일본에서 거둔 성과는 SM에서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먼저 지난 8월 25일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Ariake Colosseum)에서 열린 소녀시대의 첫 일본 쇼케이스는
추가 공연을 포함해 3회에 걸쳐 열려 총 2만 2천여 명의 팬들이 뜨거운 무대에 열광했었다.
비록 티파니가 21일 서울 잠실 경기장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 때 당한 발목 부상으로 깁스하는 바람에 같이 무대에 서진 못했지만,
행사를 보기 위해 TV 방송국과 신문사, 잡지 등의 취재진 천여 명이 콘서트에 참석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게다가 다음날이였던 26일 후지TV, 니혼TV, 아사히TV 등 각 방송국과 스포츠호치, 스포츠닛폰, 산케이스포츠 등
스포츠 신문들은 소녀시대의 첫 무대를 아침 방송과 톱 지면 등을 활용해서 소녀시대의 첫 무대를 자세히 보도하였다.
이어서 9월 8일 발표한 지니(Genie)는 일본 데뷔 싱글앨범임에도 불구하고 10일과 12일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2위,
3주 연속 오리콘 위클리 싱글차트 3주연속 톱 10안에 드는 기록에 앨범까지 8만장이 넘게 팔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소녀시대의 앨범이 일본 첫 데뷔 앨범치고는 큰 성공을 거두자 SM 측에서는
10월 20일에 일본에서 발매할 두 번째 싱글앨범 지(GEE)와 10월 27일 한국에서 발매할 세 번째 미니앨범 훗(Hoot)의 활동에 앞서
첫 데뷔 앨범의 성공을 포상하는 의미로 1박 2일 일정으로 온천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스케쥴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SM에서 잡아준 온천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근데 오늘 온천에는 누구누구 가는 거야? 내가 가는 걸 보니 가는 사람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저희랑 스타일리스트 유정언니, 코디네이터 정아언니, 효운오빠 마지막으로 지혁오빠까지 총 13명이요."
"이야 생각보다 많이 가네. 난 이번에 너희 9명 이서만 가는 줄 알았는데."
"에이~ 상식적으로 회사에서 미쳤다고 저희끼리만 보내겠어요? 30분 후에 온천으로 출발한다니까 그동안 짐이나 잘 챙기고 계세요."
"하긴 그건 그렇지. 알았어, 나도 내 것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너도 얼른 가서 네 것 물건 챙겨라."
"네. 그럼 30분 후에 봐요!"
지혁과 대화를 끝마친 서현은 밝은 표정으로 지혁에게 인사하고 같은 멤버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로 달려나갔다.
지혁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거리가 멀어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그제야 방안으로 고개를 돌려서 자신이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밤에 잠잘 때 입을 옷도 필요하고. 맞다! 요것도 빼놓을 수는 없지."
그렇게 지혁이 온천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방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었을 때
'툭'
그가 1박 2일동안 입을 옷을 챙기기 위해 옷장 속을 뒤지던 순간 옷장 안 깊숙한 곳에서 비닐에 쌓여 있는
뭉텅이 하나가 떨어졌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그는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숙여 뭉텅이를 주웠다.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군."
.................
"와아! 드디어 도착했다!"
버스가 온천에 도착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버스 안에서 우르르 빠져나가는 한 무리의 소녀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정체는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여자 아이돌인 소녀시대. 온천여행의 목적지인 온천에 드디어 그녀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현재 시각 저녁 6시.
그들이 여행온 온천은 온천뿐만 아니라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숙소 또한 겸비한 곳으로 그들이 오늘 밤 자고 가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저기 버스 안에 놓인 짐들 보이냐? 저걸 xxx호에 가져다 놓고 이건 ooo호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친절하게 지혁에게 소녀시대가 놓고 간 물건들을 가져다 놓을 곳을 가르쳐주는 효운.
이미 뛰어나간 그녀들을 다시 불러서 놓고 간 너희 짐을 챙겨가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놓고 갈 수도 없으니 그녀들이 놓고 간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여기서 짬이 가장 적은 그의 몫이 되었다.
상관의 명령이니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어 꼼짝없이 옮기게 된 지혁은 투덜대면서 짐을 하나씩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체의 반 정도를 옮겼을 무렵 숙소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던 서현이 혼자서 짐을 나르는 그를 발견했다.
"어? 지혁오빠? 왜 오빠 혼자서 이걸 전부 나르고 있어요?"
"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거의 다 했으니까 넌 저기 가서 구경이나 마저 하고 있어."
"그럴 순 없어요! 이것들 전부 저희 물건인데 저희 때문에 오빠 혼자서 고생하게 놔둘 수는 없죠. 이리 줘봐요, 저도 같이 나를게요."
"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렇다면 이거 하나만 옮겨줄래?"
그렇게 지혁과 서현은 함께 짐을 옮기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서현과 마찬가지로 숙소를 구경하고 있던
소녀시대 멤버들을 만나 그녀들도 추가로 합류하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다 같이 짐을 옮기게 되었다.
여러 명이서 옮기다 보니 지혁 혼자서 옮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짐을 나를 수 있었고 협동의 힘으로
금방 일을 끝낸 그들은 식사가 준비된 방으로 와서 그들이 짐을 옮기는 동안 준비되었던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럼 이제 식사도 마쳤으니 다들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인 온천에 가야겠지?"
"맞다! 온천!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여탕은 저쪽으로 가면 돼. 참고로 여탕 반대편이 남탕 가운데는 혼탕이니까 다들 착각해서 탕을 잘못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네 알겠어요. 그럼 저희랑 유정언니, 정아언니는 온천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것 좀 챙기러 갈게요. 오빠들 나중에 봐요~"
대답과 동시에 여자들은 빠르게 사라졌고 어느새 방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지혁과 효운 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온천 준비하러 가야겠지?"
"저기 실장님 저는 그냥 방에 남아서 쉬고 싶습니다."
"응? 갑자기 또 왜? 여기까지 와서 온천에 안 들어가겠다고?"
"제가 온천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오늘 컨디션도 별로 안 좋아서 그냥 방에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맘대로 해라. 이해는 안 가지만 본인이 들어가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온천 안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니깐."
지혁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길게 말하기 귀찮은 듯 맘대로 하라고 말한 뒤 방을 나서는 효운.
효운이 나가고 방안에 혼자 남은 지혁은 잠깐 동안 자신의 짐을 뒤지면서 다른 사람들 몰래 가져온 무언가를 찾았다.
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한 그는 이쯤 됐으면 효운도 온천에
들어갔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혁오빠? 같은 숙소인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어, 써니니? 잠깐 사정이 있어서 전화 한거야. 너 지금 뭐하고 있어?"
"저 이제 온천 들어가려고요. 다른 애들 다 갔는데 이것저것 챙기다가 제가 제일 늦었어요."
"그래? 그럼 온천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 내 방에 와주면 안 될까?"
"지금요?"
"응, 지금 당장. 대신 올 때는 너 혼자와. 다른 사람에게 나 보러 간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고."
"으음...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금방 갈게요."
같은 건물 안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통화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써니는 그의 방에 도착했다.
"저 왔어요~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저만 이렇게 따로 부르시고."
그녀가 도착했음에도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물건만 뒤지고 있던 지혁은 조용히 그러나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왔다. '이면의 이순규'"
"아?"
지혁의 입에서 나온 키워드가 써니의 귀를 파고들었고 머릿속까지 들어간 그 키워드는 그녀의 뇌 안에서 잠들어 있던 암시를 깨웠다.
눈 한번 깜박이고 나면 끝날 정도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써니는 어느새 트랜스 상태 즉 최면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너를 부른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냐. 그냥 간단히 몇 가지 부탁할 것이 있었거든."
그녀는 이미 최면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녀의 입에서 답변이 나올 리는 없었지만
여러 번의 최면작업을 거치면서 이렇게 혼잣말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버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뭐, 특별히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그냥 간단한 거 몇 개만 해주면되. 예를 들자면..."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