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洗腦時代 14장-
[수영]
"너.. 방금 뭐라고 말했어?"
"시카랑 하려던 거 나랑 같이 하면 안 되느냐고요~응?"
술에 취해 발그레한 표정으로 지혁에게 애교를 부리며 들이대는 수영과 식은땀을 흘리며 난감해하는 지혁.
"지..진정해 수영아. 방금 시카랑 아무 일도 없었..없었거든."
"내가 다 봤는데 계속 고짓말할 꺼야? 자꾸 그러면 나 삐친다!"
지혁이 계속해서 변명하며 자신의 요청을 무시하자 화가 났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수영.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어?"
볼을 부풀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가 부담스러웠는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그녀를 진정시키던
지혁은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지금 이 숙소 안에서 깨어 있는 사람은 그녀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지금 깨어있는 사람이 수영이와 나뿐이라면 내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잖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얼굴에서 난감한 표정이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썩소가 나오는 지혁.
"수영아 잠깐만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흥! 나랑도 할꺼냐고 안할꺼냐고?"
어느새 식은땀을 흘리던 얼굴도 평온을 되찾고 더듬대던 목소리도 능글맞게 변해있었다.
"알았다, 알았어. 네 부탁대로 너랑 같이 해줄 테니까 이제 그만 징징대."
"웅~ 진짜?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이?"
"그래. 대신 내가 시카 침대에 눕혀 놓고 오는 동안 이거 먹고 있어."
"이게 뭔데에?"
"넌 몰라도 돼. 오빠랑 놀려면 꼭 먹어야 하는 거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거 다 먹어놔야 해. 알겠지?"
"응! 알겠어~"
원래 주머니 안에 있었던 물건을 대체 어느 틈에 꺼내놨던 건지 파란색 알약 한 개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는 지혁.
그리고 자기와 놀아준다는 말에 안심했는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는 수영이었다.
"근데 지혁 오빠아~"
"왜? 수영아?"
"다음부터 그런 표정 짓지 말아 주라~ 수영이는 그런 표정 보기 싫어."
"......"
.................
"끙차!"
수영에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건네준 지혁은 다시 잠든 제시카를 들어서 그녀의 방 침대 위에 눕혀놓았다.
그는 이번에도 조금 전 같이 그녀가 깨어나는 일이 다시 발생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제시카를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그녀가 별 반응 없이 조용히 잠만잤고 그 틈에 그는 무사히 그녀를 방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
"애들이 다들 너무 가볍네. 아무리 관리해야 하는 아이돌 가수라고는 하지만 이러다가 진짜 한 명 영양실조로 쓰러질까 무섭군."
지혁은 침대에 걸터앉아 세상모르고 잠든 제시카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후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니까."
너무 마른듯한 소녀들의 모습에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회사에 건의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들을 지워버리는 지혁이였다.
"그럼 그동안 수영이는 준비 다 끝났겠지? 이만 나가볼까?"
지혁이 방문을 열고 다시 거실로 나오자 수영은 이미 약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먼저 세뇌했던 제시카, 유리, 써니와의 차이점이라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약을 먹어서 그런지 최면상태에서도 눈이 풀려 있다는 것 정도.
지혁은 상황이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서 즐거웠는지 웃으면서 그녀 앞에 주저앉아 말을 걸었다.
"내 목소리는 잘 들리는가? 최수영?"
"네...잘 들립니다..."
만약 수영이 멀쩡한 상태에서 최면에 걸렸다면 다른 멤버들을 세뇌할 때 처럼 사람마다 어느 정도의 격차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심층 방어막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루하고 의미 없는 문답을
반복해야 했었겠지 만 다행스럽게도 약을 섭취할 당시 만취한 상태였기에 최면상태로 빠졌을 즈음
이미 심층 방어막이 많이 얇아져 있어 그런 귀찮은 작업은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쓸데없는 질문은 넘어가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건가?"
"아까... 지혁 오빠가 시카와 하고 있던 것을 저도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인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궁금해서라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지혁은 그녀의 입에서 자신이 예상했던 정확히는 자신이 의도한 대답이 나오자 기분이 좋은지 다시 한번 썩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아주 좋아. 나와 그것을 해보고 싶단 말이지?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넌 최면이 깨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지금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 매우 강해진다. 그 호기심 너무나도 강렬해서 내가 너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다
들어주게 된다."
"저는... 깨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느끼는.. 호기심이 매우 강해집..니다... 그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요구 더
라도.. 다.. 들어주게...됩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요구에 대해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내가 하는 모든 요구는 전부 너의 호기심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저는 지혁..오빠의... 요구에...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 알겠으면 잠시만 그대로 있어라."
예상보다 손쉽게 그녀에게 암시를 거는 작업을 마친 지혁은 다시 텅 빈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를 거실 소파 위에 눕혀 놓았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만취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앞선 다른 멤버들의 최면들에 비해선 너무 쉬운데..."
지혁은 수영의 최면이 제시카나 태연등 다른 멤버들을 세뇌할 때에 비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난히 진행되자 일말의 이상함을 느꼈다
사실 그가 아직 최면에 대해서는 초보이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지만, 수영의 최면이 이렇게 무난히 진행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원래 천성이 호기심이 많고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이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그가 걸었던 암시 또한 그녀의 이런 적극성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방식이었던 것.
한마디로 그가 유도한 암시의 방향과 그녀의 기존 성격이 매우 잘 어울렸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최면이 진행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다.
강철보다도 강했던 마음이 아주 미세한 변화에 의해 두부보다도 약해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기술인 최면이 어렵다는 것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물론 지혁은 최면의 세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렇게 자세한 사항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고민해도 수영의 최면이 다른 멤버에 비해 유난히 손쉽게 진행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지혁은 이렇게
답 안 나오는 문제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동안 다른 멤버들이 깨어나진 않았는지나 확인하기로 하였다.
자신이 수영을 세뇌하고 있는 모습을 이미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제시카, 유리, 써니가 본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겠지만
그보다는 혹시라도 아직 자신이 세뇌하지 못한 태연이나 서현 같은 멤버들이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하는 날엔 소녀시대 전부를
세뇌한다는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수영과의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모든 방을 다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깨어난 멤버가 없는지 확인하였고
다행스럽게도 모두 조금 전에 마신 술의 위력으로 모두 전혀 일어날 기미 없이 세상모르고 깊이 자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이 수영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깨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지혁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와 여전히 무표정으로 소파 위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쪽'
서로의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그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에서 멀어졌을 때
텅 빈 눈빛과 무표정이었던 수영은 어느새 다시 약간은 풀린 두 눈과 양볼에 발그레하게 홍조를 띤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웅? 오빠아?"
"일어났니, 수영아?"
"우응.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어썼나 보다. 헤헤."
"내가 시카 방안에 놓고 오는 동안 거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랬지. 누가 자고 있으래? 잘 거면 방에 들어가서 자던가, 이런
곳에서 잠들면 아무리 지금이 여름이라지만 너 감기 걸린다."
"이상하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분명히 나 깨어 있었는데? 우에엥~ 잠들기 전에 내가 뭘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
사실 그녀가 지금 잠들기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잠들기 전 지혁이 건네준 약을 먹고 최면상태에 빠졌지만,
그가 암시를 거는 동안 약에 관한 기억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삭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수영이 귀여웠는지 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고... 자 그럼 시작해야지?"
"응! 그럼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거 야?"
"지금부터 어떻게 하냐면 말이지.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