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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腦時代 12장-

[스토리]

"오늘부터 닷새 동안은 쉴 수 있는 건가...."

일본 진출을 앞두고 닷새 동안 스케쥴 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소녀시대.

그 덕분에 소녀시대뿐 아니라 매니저인 효운이나 지혁 역시 오랜만의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휴가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하는 것보다는 노는것이 좋기에 오랫만의 휴식이 반가운 지혁이였다

"후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내가 미리미리 문명5를 깔아놓았지."

오늘같이 쉬는 날 할 일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문명5를 미리 깔아놓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컴퓨터를 켜고 바탕화면에 깔린 문명5를 실행시키는 지혁.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타임머신에 탑승해볼까?"

아침 10시 문명5 시작.

.................

"아오 씨발! 간디 이 씹새끼!"

중국을 선택한 자신을 일본과 함께 탈탈 털어버린 간디를 욕하면서 문명을 종료하는 지혁.

"옥수수랑 다이아 교환 안해줬다고 바로 선전포고라니. 이런 놈이 비폭력주의자란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컴퓨터를 끄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벌써 숫자 9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가 고플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밥 대신 미리 구매해놓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인 화장실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명만 했더니

체감 상으론 조금 전에 문명을 시작한 것 같은데 종료해보니 어느새 1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타임 리프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지혁은 문명3나 문명4를 하면서 여러 번 경험해봤던 일이기 때문에 11시간이나 지난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진 않았지만

11시간 동안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바람에 몸이 조금 굳은 것 같아 몸도 풀고 잠깐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바람을 쐬면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담뱃갑을 찾는 지혁.

잠시 후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 안에는 마지막 한 개비만이 남아 있었다.

"응? 뭐야 벌써 다 떨어졌어? 구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떨어지다니, 이거 귀찮은데 또 편의점까지 담배 사러 가야

하나? 간디 그 새끼 생각하면 담배고 뭐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명해야 하는데."

돛대를 피면서 잠시 동안 담배를 사러 갈까 아니면 그냥

문명을 계속할까 고민하던 지혁이였지만 얼마 안되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도 참, 우리 집에서 편의점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냐. 빨리 뛰어갔다 오면 되겠지. 게다가 게임을 할 때 담배

없으면 게임 할 맛도 안 나니까 말이야."

결정을 마친 지혁은 다 핀 담배를 베란다에 놓여 있는 재떨이에 버리고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지혁을 맞이해주는 담배냄새와 뒤섞인 베란다에서 쐬던 바람과는 느낌이 다른 좀 더 신선한 감촉의 바람.

"확실히 집구석에 박혀서 게임만 하는 것보다는 가끔은 이렇게 외출도 하고 문화생활도 즐겨주는 것이 더 좋을 텐데, 근데 같이 돌아

다녀 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다니기는 싫고 결국 하게 되는 건 게임뿐이지."

이런 생활을 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바람의 감촉을 느끼다가 새삼스럽게 우울한 자신의 현실이 생각난 지혁은

왠지 모르게 입안이 씁쓸해졌지만 이내 곧 우울한 생각을 털어내고 원 목표인 편의점이 아닌 공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간디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편의점에 곧장 가서 빨리 담배나 사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막상 집 밖에 나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의 집에서 편의점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까

서두를 필요도 없고 어차피 집에 일찍 돌아가 봤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명이나 할 것이 뻔한데

이왕 이렇게 외출한 김에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이라도 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여기도 정말 오랫만에 와보는군."

집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평상시에는 소녀시대 스케쥴 관리, 이동,

기타 등등 로드매니저로써 신경 쓸 일이 많아 바빠서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고 어쩌다가 한 번씩 있는 휴가 날에는

대부분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서 공원에 올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집 바로 근처에 있는 곳임에도 거의 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정말 오랜만의 공원 산책을 즐기고 있는 그는 걷다가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아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얼마 없군. 하긴 이곳이 시골도 아니고 한국에서 공기가 가장 탁한 곳 중 하나인 서울인데 별이 그렇게 많이 보일 리가 없지."

잠시 벤치에 등을 기댄 채로 하늘을 보며 휴식을 취하던 그는 이 정도 쉬었으면 됐다 생각했는지 다시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꺄악!! 이거 왜 이러세요!"

그때 공원 저편에서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으로 봐서 누군지는 몰라도 상당히 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누가 여자를 건든 것 같은데 도와주러 가야 하나?"

비명이 들린 곳으로 가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에

나서서 도와주다가 괜히 자신만 낭패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시하고 그냥 가던 길이나 마저 가기로 하였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뚝.

"근데 방금 그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한 목소리였는데 누구였더라...... 이런 젠장! 서주현!!!"

목소리 주인의 정체를 생각해낸 지혁이 뒤늦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당히 급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서현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그녀 앞에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

"사..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크으..크으으..."

평소에는 밤늦게까지 산책하던 사람들로 붐비던 공원이었지만

오늘따라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서현의 목소리에도 그녀를 도우러 와주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아까 나처럼 도움 요청을 들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당장 나부터도 목소리의 주인이 서현이만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는 동안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어진 서현은 벤치에 발이 걸려 주저앉아 버렸고

그동안 의문의 남자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그녀에게 손을 뻗치고 있었다.

"이 자식아! 지금 당장 그 더러운 손 서현이에게서 치우지 못해!"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지혁이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나올 것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와 함께 달려나와 서현을 덮치려고 하던 남자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후려쳤고

서현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던 그는 갑자기 튀어나온 지혁의 주먹에 맞아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하고 저 구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지혁오빠?"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우연히 네 비명 듣고 달려왔다. 어디 다치거나 한 곳은 없지?"

"네. 오빠 덕분에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요. 근데 오빠 저..저기!"

지혁이 서현의 손가락을 따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남자가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입으로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음을 내고 있었고 뒤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눈도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쳇 그거 한방에 쓰러졌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 귀찮게 다시 일어나는군.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금방 처리하고 올게."

그녀에게 잠시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한 지혁은 다시 한번 자신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싸움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닌 아니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못하는 편에 가까운 지혁이였지만 상대방은 겉으로 보기에

적어도 40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아저씨였고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움직임마저 상당히 굼떴다.

쉬익~

콰당!

지혁은 자신을 향해 느리게 날아오는 주먹을 고개를 숙여서 손쉽게 피한 다음 뒤쪽으로 돌아들어 가 다리를 걸어 쓰러트렸다.

뻑!

"크흐으...."

뻐억!

"크으으으....

"그만 버티고 이제 좀 쓰러지라고!"

뻐버버버버벅!뻑뻑뻑!뻑뻑!

쓰러진 남자를 위에서 마운트자세로 일방적으로 때리는 지혁. 그 남자는 쓰러진 상태에서도 끝까지

발버둥치며 저항했지만 결국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연속된 구타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후유~ 싸움은 더럽게 못하는 녀석이 맷집 하나는 진짜 좋네. 진작 이렇게 쓰러졌으면 나도 안 힘들고 너도 안 아프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둘 다 편하잖아."

상대방을 기절시키고 근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그에게 멀리서 가슴을 졸이며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서현이 다가왔다.

"지혁오빠 괜찮아요?"

"어. 난 멀쩡해."

"그러시다면 다행... 히익! 피..피나는것 좀 봐! 대체 어떻게 때리셨기에 사람이 이 모양이 된 거에요?"

"너도 봤잖냐. 어떻게든 끝까지 반항하려고 하는거. 곱게 쓰러졌으면 나도 이렇게 까진 안했지."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너는 널 덮치려고 했던 놈을 옹호하고 싶으냐? 내가 너라면 더 패줘도 시원찮을 텐데, 뭐 그것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왜 이 시간대에 여기 있었던 건데?"

"다른 언니들은 휴가다 뭐다 해서 다들 놀고 있는데 전 특별히 할 것도 없고 그냥 잠자기 전에 산책이나 하고 싶어서 나왔어요."

"그럼 이 남자는?"

지혁이 기절해서 옆 벤치에 기댄 채로 코피를 질질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남자를 고개로 슬쩍 가리키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간만의 산책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서현은 지혁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면서 조금 전 그 소름 끼쳤던 순간이 다시 생각났는지 몸서리쳤고

지혁은 의문의 남자가 자신을 덮치려고 했다는 그녀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질문하였다.

"왜 안도망갔어? 이 사람 움직임이 되게 느려서 네가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갔으면 못 따라잡았을 것 같은데?"

"그..그게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하니까 너무 놀라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질 않더라고요."

"하긴, 한밤중에 이런 일을 겪으면 놀라서 몸이 굳을 수도 있겠군."

서현의 설명에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지혁. 그러면서 그는 옆에 쓰러져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내가 직접 처리하기에는 무리고 아무래도 회사에 맡겨야 할 것 같은데."

잠깐 고민하던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자신의 상관인 효운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You better run run run run run'

누가 소녀시대 매니저 아니랄까 봐 컬러링도 소녀시대의 곡으로 설정해 놓았는지

Run Devil Run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들렸고 그것도 잠시 이내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에서 효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지혁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한 거지? 휴가 기간이라 특별히 전화할 일도 없을텐데?"

"그게 말이죠 박실장님, 조금 난감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난감한 일?"

지혁은 효운에게 조금 전 발생했던 일들을 말해주었고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효운은 설명이 끝나자 바로 대답을 해줬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기자들에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 그 사람은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네? 제가 직접 처리하라고요? 회사에 이런 거 처리해주는 사람 없습니까?"

"지금이 휴가기간이라 회사에 당장 쓸 수 있는 인원이 얼마 없다. 그리고 그 정도는 너도 처리할 수 있잖아?"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전 한 번도 이런 걸 처리해본 경험이 없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

"그럼 알았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이만 끊겠다. 아 참, 일이 커져 봤자 좋을 거 없으니 너무 심한 처벌을 하기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넘어가 주도록."

"잠깐만요! 박실장님, 박실장님! 야 이 개새끼야 끊지 말라고!"

지혁의 외침에도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효운.

전화가 끊어진 뒤로도 한참 동안 핸드폰에 대고 욕설을 퍼붓던 지혁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서현을 불렀다.

"서현아 아무래도 네가 나랑 같이 가줘야 할 것 같다."

"네? 어딜요?"

"어디긴 어디야 경찰서지. 이런 경우는 피해여성의 증언이 없으면 내가 역고소 당할 수도 있어서 네가 무조건 같이 가줘야된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일로 경찰서를 가본 적이 없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증언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어. 그냥 나에게 말했던 것을 경찰에게 똑같이 말해주면 된다."

"그런거라면... 알겠어요. 저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까 저도 같이 가줄게요."

"좋아 그러면 네가 경찰서에 신고 해서 이곳으로 와달라고 말해라. 그동안 나는 혹시나 여기 이 남자가 깨어나진 않는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서현보고 경찰서에 신고 하라고 시킨 그는 기절해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깨어나면 좀 전처럼 다시 덤벼들지도 모르기에 경찰이 오기 전까지 혹시라도 깨어나지는 않는지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었다.

"음? 이건?"

지혁은 쓰러져있던 남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던 와중에 목 뒤에서 뭔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침? 이런 게 왜 목 뒤에 꽂혀 있지?"

아까 싸울 때는 어두워서 미쳐 확인을 못 했었지만 지금 보니

그 남자의 목 뒤에는 사파이어가 연상될 만큼 진한 청색으로 빛나고 있는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의 정체가 궁금해진 지혁이 호기심에 그것을 뽑자 푸른색이었던 침이 아래쪽부터 빠르게 루비와 비슷한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응? 갑자기 이게 무슨..."

갑자기 붉게 변한 침에 깜짝 놀란 지혁이 제자리에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침을 살펴보았고 그동안 경찰에 전화해서

이곳으로 와달라고 신고를 마친 서현은 지혁이 자리에 주저앉아 있자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오빠 뭐 하세요? 저 경찰서에 신고했어요. 금방 도착하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된데요."

"어? 어 아무것도 아냐. 금방 도착한다니 다행이네."

왠지 서현에게 침을 보여줘선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지혁은 뭘 하고 있느냐는

서현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려 대답하고 그녀가 볼 수 없게 침을 황급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서현이 없을 때 침을 차분히 다시 살펴보기로 결정한 지혁은

침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그녀와 함께 잠시 후 도착한다는 경찰을 기다렸다.

.................

"오늘 고마웠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듣고 도와준 건데 뭘. 남자가 이 정도 해주는 건 당연한 거지."

"그래도 오빠 아니었으면 저 큰일 날뻔했어요. 경찰서에선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아까 공원에서 마주쳤을 땐 얼마나 무서웠는데

요. 순간 '진짜 말로만 듣던 납치를 내가 당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요."

"그러니까 다음부턴 조심해서 다녀. 아직도 네가 누군지 깨닫지 못하고 있나 본 데 너는 우리나라 최고 인기 여자아이돌인 소녀시대의

일원이라고. 오늘은 내가 근처에서 산책하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런 일 당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글쎄요? 제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지금 그걸 대답이라고 하는 거냐. 아무튼, 한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장님에게 너희가 쉬는 날에도 경호원 붙여놓아야 한다고

건의할 테니까 각오하라고."

"그건 안 돼요! 쉬는 날까지 자유롭게 못 놀고 감시받는 건 싫다고요."

지혁의 말에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으며 불만을 표시하는 서현. 그런 그녀가 귀여웠는지 그는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게 싫다면 앞으로는 내 말대로 조심해서 다니든지. 한동안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낸다면 나도 생각을 바꾸마."

경찰서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그녀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 있는 지혁.

그들이 서현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온 경찰들과 만났을 때와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작은 소란

(서현을 보고 깜짝 놀란 경찰이 두 눈을 비비며 자기 팔을 꼬집어 본다든가,

사건 조사하던 경찰이 용의자 상대하다 말고 종이랑 펜 들고 사인요청하러 온다든가 하는)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서현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나와 사인을 받으신) 경찰서장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시켜준 덕분에

금방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들의 원 목적인 서현을 덮치려고 했던 남자를 경찰에게 무사히 넘겨줄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서현을 덮친 남자의 정체는 근처 공원에서 구걸하며 지내던 46세 나이의 노숙자였다고 한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얼마 후에 깨어난 그는 자신을 덮치려고 했다는 서현의 말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몸에 남아 있는

싸웠던 흔적 그리고 실제로 그와 싸운 지혁의 증언에 힘입어 혐의가 인정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게다가 지혁이 그를 때린 것에 대해서도 정상방위로 참작되어 치료비도 전혀 못 받게 되는 바람에 이래저래 앞날이 어두워 보였다.

"서현아."

"응? 갑자기 왜요 오빠?"

"아까 그 사람 있잖아. 왜 그렇게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글쎄요? 혐의를 인정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치소행이니까 감옥에 가기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요?"

"흐음... 그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 결정적인 증거에 증인까지 있는데 부인해봤자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만 더 구차

해지는 건데. 게다가 아까 경찰서에서 그 남자의 모습은 자신은 정말로 널 덮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러고 보니까 공원에서와는 달리 경찰서에선 이상한 신음도 안내고 시뻘겋던 눈도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네요?"

"그렇지? 확실히 이상하다니까?"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요? 어차피 그 사람은 경찰에 넘겨졌고 앞으로 우리랑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텐데."

"그건 그렇긴 한데, 궁금한 건 궁금한 거잖아."

"어차피 우리가 궁금해해도 알 방법이 없잖아요. 그냥 그거에 대해선 신경 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소녀시대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아 벌써 다 왔네요.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경찰서부터 여기까지 데려다 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래,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조심해서 잘 들어가라."

"네 오빠, 안녕히가세요."

마지막까지 서현이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걸, 확인한 지혁은 돌아서서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현이는 신경 끄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왠지 이대로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어가던 그는 주머니에서 그 남자의 목에 꽂혀 있었던 (원래는 청색이었지만 붉게 변한) 붉은색 침을 꺼냈다.

"서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기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 꼭 이것 때문에 그랬다는 보장은 없지만 신음을 내며

눈이 새빨갛던 사람이 이걸 뽑고 나니 평범한 사람이 됐고 또 뽑자마자 색깔이 청색에서 적색으로 변했던걸, 보면 분명히 평범한 물

건은 아닐 거야."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침을 천천히 살펴보는 지혁.

"게다가 아까 그 청색 빛 어디서 많이 봤던 색깔이었는데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생각이 날 것 같다가 안 나니까 답답하군"

한참 동안 침을 살피면서 자신이 그 색을 언제 어디서 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지혁이였지만

잠시 후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짜증을 내면서 침을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에라 누가 날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겠군. 나랑 별 상관도 없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고민하다니, 서현이 말대로 그냥 신경을 끄든가

해야지 이거 신경 쓰다간 괜히 스트레스만 더 받겠어."

침에 관한 것은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한 지혁은 손을 툭툭 털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뭐 때문에 집 밖에 나왔었더라....아 맞다! 담배! 빨리 편의점 가서 담배 사고 다시 문명이나 하러 가야겠다."

집으로 가던 방향을 바꿔 편의점 쪽으로 가는 지혁을 비추고 있는 달빛.

그리고 그의 뒷주머니에 살짝 삐져나와 있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역시 달빛에 반사돼서 사파이어 빛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