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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이 익숙했다. 놈은 엘리제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몇 중으로 잠가 놓은 문은 악마의 손짓에 쉽게 열렸다.







내부는 평범했다. 그러나 악마를 따라 지하 밀실에 들어갔을 때, 카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방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십여 개의 모니터가 비추는 건 분명 엘리제의 집이었다. 각각의 화면은 그녀의 집 외부와 내부를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엘리제는 인지도 높은 배우였고 따라서 경호원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물론 에이전시와의 전속 계약이 해지된 지금 경호 업체와의 계약도 더는 유지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고작 열흘 만에 이 많은 수의 캠을 설치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연함에 숨이 턱 막혔다.







화면 속의 엘리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엔 반쯤 먹은 피자 상자와 감자 칩 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지루한 얼굴로 TV를 보던 그녀가 문득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메시지라도 보내는지 손으로 톡톡 액정을 두드리다가 내려놓는다.







거의 동시에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웅웅, 진동이 울렸다.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거 아냐?’라는 문자의 발신인은 엘리제였다. 문자를 보내 놓고선 핸드폰을 연신 힐끔대다가 답이 없자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다시 TV를 보는 엘리제의 모습은 정지된 화면 같았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반짝반짝 빛날 때 곁을 맴돌던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녀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연예 뉴스에선 엘리제에 대한 자극적인 소식이 연일 방송됐고, 한번이라도 같이 일한 배우들은 병을 이겨 내길 바란다며 눈물 젖은 영상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카인은 적어도 지금이라면 엘리제의 집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할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은가. 본래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이라도 막상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동정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니 알량한 호의라도 누군가는 베풀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였다. TV 소리마저 없었다면 넓고 호화로운 집은 완벽히 고요했을 것이다. 적막 속에 고독하게 남겨졌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렇게 곁에 있어 줄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줄 알았다면, 저라도 있어 줄 걸 그랬다.







온전한 사랑을 선물하진 못하더라도 지루할 틈은 없게 해줬을 것이다. 깔깔대며 웃게 해줬을 것이다. 먹고 싶다는 건 뭐든 제일 좋은 재료로 만들어 먹이고, 얼굴에 아주 비싼 영양 팩을 붙여 주고, 카드 게임을 실컷 하며 종일 수다 떨었을 것이다.







멍청이처럼 머뭇대다가 다 망쳤다.







엘리제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저 역시 불행했다.







저 외로워 보이는 모습조차 불행의 끝이 아니라는 게 더욱 절망스러웠다. 평온한 마지막조차 기대할 수 없이 그녀는 미친 살인마에게 고통당하다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벽에 진열된 흉악한 기구들엔 검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찬찬히 그것을 훑는 카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장 확실하게 사람의 목숨을 끝장낼 수 있는 도구를 택하여 움켜쥐었다.







[뭐 하려고?]



[놈을 죽이겠어.]







악마가 동그래진 눈을 끔뻑였다.







[정말? 그렇게까지 하려고?]



[왜?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끔찍한 살인 도구를 든 채 그는 다시금 모니터 속 엘리제를 바라봤다. 분노와 살의로 파들파들 떨리던 눈매가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한 손으로 톡톡, 문자를 입력했다. ‘곧 괜찮아질 것 같아.’라고 짧게 답문을 보낸 후 도로 코트에 넣었다.







모로 누워 길게 하품을 하던 엘리제가 드르륵 몸을 떠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전원까지 꺼버리곤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담요를 코밑까지 끌어올리고선 웅크린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나직이 속삭이는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느리게 깜빡이던 그녀의 눈꺼풀은 내리 감겨 더는 열리지 않았다.











***











“엘리제.”







나직이 부르는 소리에 엘리제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더 잘 거야.”







웅얼대며 끌어안고 있던 북슬북슬 한 것에 뺨을 비볐다.







“윽.”







억눌린 신음이 턱밑에서 들렸다.







“이러면 곤란하다. 네가 원하면 난 거절할 수 없어.”







곤란하다는 말과는 달리 들려온 목소리는 명백히 기뻐 보였다. 뭘 거절할 수 없다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엘리제는 지금 당장 더 자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인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느 틈엔가 벌어져 있던 다리 사이, 크고 단단한 것이 푸욱 파고들었다. 좁고 은밀한 곳에 빠듯하게 들어찼다.







잠결에 밀려든 쾌감이 달았다. 깊숙이 파고들어 안을 꾹꾹 누르고 비벼대는 굵은 기둥이 마음에 들었다.







“으응, 좋아….”



“좋아?”







되묻는 말에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슴을 한입 가득 머금고 꼿꼿이 선 젖꼭지를 굴려댔다. 간지러우면서도 짜릿했다. 등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쓸어내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애정이 듬뿍 담긴 애무였다.







그녀의 나른한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섬세하게 움직였다. 입구에서부터 자궁 경부에 이르기까지 쑤욱 쑤욱 넣었다가 빼면서도 허리를 뭉근히 돌려 안을 휘저었다. 음부가 맞물려 비벼지자 접합부는 점점 더 질척질척해졌다.







“흐응, 으으응….”







엘리제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였다. 끌어안고 있던 것을 놓고서 아래쪽으로 손을 내려 남자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윽… 엘리제….”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것이 손에 잡혔다. 보기에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엘리제는 그제야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반짝이는 금발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엘리제는 저를 품은 남자가 카인인 줄 알았다. 그와 똑같은 색의 금발이어서 잠결에 그리 착각했다.







‘뭐야… 왜 얘랑 섹스하고 있지…?’







의아하긴 했으나 딱히 싫지 않았다.







‘이렇게 몸이 좋았구나. 남자네, 남자야.’







카인은 유명한 잡지 표지를 몇 번이나 장식했다. 제 안에서나 열네 살 소년의 구질구질함이 남아 있지, 외모 하나는 세계적으로 먹히는 녀석이었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즉에 사귈걸.’







괜히 별 같잖은 남자들 비위 맞추느라 고생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정도 되는 남자가 흔치 않았다. 조금 미친 것 같다는 게 유일한 흠이랄까.







그녀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게 견디기 힘들었는지, 내내 낮은 신음을 흘리던 그가 엘리제의 몸을 홱 돌려 버렸다. 저를 만질 수 없도록 엎드리게 하고서는 뒤에서 삽입해 왔다.







한참 동안 안을 채운 채 휘저었음에도 그의 성기가 질 안을 채우는 감각은 오싹하도록 선명했다. 쑤우욱, 끝도 없이 밀려들어 와 깊은 곳을 꾸욱 눌렀다.







“읏, 거기….”



“여기?”







그가 다시 한번 그곳을 비비며 찔러댔다. 아찔한 쾌감에 오금이 짜릿했다. 속살이 꽈악 조여들었다.







“아으응….”







그녀의 몸이 움찔대는 걸 느꼈는지 그가 그곳을 연신 쿵쿵 찧어댔다. 너무 기분이 좋아 밀액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안을 축축하게 적시고선 비집고 새어 나와 다리 사이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하으, 윽….”



“안이, 뜨거워.”







나른한 한숨과 함께 그가 중얼댔다. 점점 더 강하게 치대는 탓에 엘리제는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서 밀리지 않도록 버텼다. 그래도 자꾸만 밀려나자, 그가 몸을 낮춰 엘리제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가두듯 옭아매고서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으응, 읏, 흐읏…!”







온몸이 녹아내릴 듯했다. 남자는 그리 능숙하진 않아도 그녀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아는 듯했다. 가슴을 주무르는 강도도 적당했고 등줄기와 목덜미에 퍼붓는 입맞춤도 좋았다.







“엘리제, 흐읏… 엘리제….”







낮게 잠긴 남자의 목소리가 아래를 더욱 욱신거리게 했다. 정신없이 박아대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 그의 숨소리가 짐승의 그것처럼 거칠었다. 엉망인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하얀 머릿속에 남은 건 쾌락뿐이었다.







“아흑, 아, 아앙…!”







제 것 같지 않은 야릇한 소리가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거듭되던 얕은 절정감이 차곡차곡 쌓여 더는 견디지 못할 만큼이 되었다.







“흐윽…!”







삽시간에 온몸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쾌감에 엘리제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의 것이 입구까지 빠져나갔다가 푸욱 박혀 들었다. 사정 직전의 단단히 부푼 성기가 예민한 내벽을 거칠게 긁었다.







“……!”







벌어진 입에선 이제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시금 그의 것이 빠져나갔다. 그러고선 깊숙이까지 삽입하여 아직도 움찔대는 질 안을 느긋하게 오갔다.







“으응….”







기분 좋은 여운에 엘리제는 그에게 몸을 기댔다. 그가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춰 왔다. 젖은 소리를 내며 가볍게 맞닿았던 입술이 조금 더 깊이 맞물렸다. 사정 전인 제 것을 빼낸 그가 한쪽 손으로 페니스를 쥐고 흔들었다. 젖은 것이 마찰 되며 나는 음란한 소리에 엘리제는 아래가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억눌린 신음과 뜨거운 숨결이 뒤섞였다. 밖으로 나온 혀가 야하게 얽혀들었다. 닿은 살을 비비고 서로의 몸을 주무르며 잔열에 불을 지폈다.







엉덩이에 점점이 희뿌연 액이 튀었다. 사정의 여운에 그의 몸이 단단히 경직됐다.







다시 다리를 벌려 그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틈 없이 몸을 겹쳐 끊임없는 열락에 휩싸이고 싶었다. 유혹하고픈 충동에 엘리제가 감았던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을 때였다.







상대가 다름을 깨달았다. 잠이 확 달아나며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들었다. 하필이면 동시에 눈을 뜬 그 역시 그녀의 동요를 알아챘다.







“아….”







여태 몸을 섞은 남자는 카인이 아니라 루카스였다. 엘리제는 빠르게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뭐야, 꿈이 아니었네요.”



“꿈인 줄… 알았어?”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미안하다. 난 네가 깬 줄 알고….”



“미안하긴 뭐가요. 엄청 좋았는데.”



“…정말?”







엘리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하자고 조르려는데 잠이 깨 버렸네요. 아쉬워라.”







그제야 그의 얼굴이 도로 환해졌다.







“너만 좋다면 나는 몇 번이고 좋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나중에요. 사실 좀 급하게 상의할 것이 있어서.”



“아…. 안 그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어.”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데 성공한 엘리제는 침대에서 내려와 가운을 걸쳐 입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어도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렸다. 루카스와 몸을 섞으며 카인인 줄 착각하다니, 엄청나게 무례한 짓이었다. 실수로 카인의 이름을 부르기라도 했다면 순수한 루카스가 얼마나 상처 입었겠는가. 미안함에 식은땀이 다 흘렀다.







‘나는 대체 왜 뽀뽀 한번 안 해 본 그 녀석이랑 섹스하는 망상을 한 거야.’







물론 속에 든 영혼은 카인인 블레이크랑 미친 듯이 몸을 섞다 잠들었으니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여태껏 블레이크와 섹스하며 상대가 카인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 동일시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득 불길한 가정이 엘리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블레이크 앞에서 난 카인 리베르토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카인이 저 자신인 줄 모르는 블레이크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맞든 틀리든 해봐야 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카인의 기억을 먼저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안 그랬다간 그야말로 파국에 이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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