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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흣…!”
반사적으로 등줄기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가 느릿하게 힘주어 주무를 때마다 엉덩이 틈새가 벌어졌다가 다물리길 반복했다.
우악스럽게 저를 탐하는 그의 조급함이 엘리제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젖어 든 아래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평범한 귀에도 이렇게 잘 들릴 정도면 청각이 예민한 그는 어떠할까.
조금 만져졌다고 받아들일 준비를 서두르는 제 몸이 어이없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만큼 그와의 관계에 익숙해졌다는 증거이리라.
그가 골반 근처의 리본을 잡아당겨 풀었다. 벌어진 천 조각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손이 갈라진 틈을 훑었다. 충분히 젖은 걸 확인하고 나자 곧장 바지 버클을 풀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엘리제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지금 여기서…?’
제도에서 터진 일 때문에 대공의 집무실엔 프로이젠의 가신들이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다. 지금은 슈만 때문에 다들 물러난 상태지만 보고할 일이 생기면 금세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녀가 다과를 가지고 들어올 때도 집무실 앞 복도는 와글와글했다.
창문도 굳게 닫힌 지금 정사로 인한 음란한 냄새가 집무실 안을 가득 채울 텐데 대체 어쩌자고 이런단 말인가.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드디어 입술을 뗐다. 코가 맞닿은 거리에서 엘리제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봤다.
“…어.”
멈추라고 해야 할 순간에 괴상한 탄성만 한마디 흘러나왔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에 가득 차오른 감정이 그녀의 심장을 꽈악 움켜쥐었다.
이마에 뜨끈한 체온이 맞닿았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감은 눈동자 위에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그녀의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거의 동시에 그녀의 질구 앞에 머물러 있던 묵직한 것이 다물린 속살을 갈랐다.
엘리제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어깨를 다급히 붙잡고서 버거움을 참아냈다. 그것이 파고드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연했다. 억눌린 숨소리가 뺨과 귓가에 쏟아졌다.
퍽, 소리와 함께 그와 그녀의 몸이 완벽히 맞물렸다.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 옆을 짚은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 시퍼런 핏줄이 도드라졌다.
“하아….”
그는 약간만 몸을 물렸다가 도로 콱 박아 넣었다. 괴로운 신음이 흘렀다. 그녀가 아닌 그의 목에서 흐르는 신음이었다. 낮고 깊었다.
“엘리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커다란 페니스가 일정한 속도로 질 안을 오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으나 한 번 한 번이 거세어 민감한 곳을 거칠게 긁어댔다.
“흐윽, 읏, 으응…!”
쑤욱 쑥, 구멍을 쑤시고 휘저을 때마다 소변이라도 지린 듯 아래가 젖어 들었다. 엉덩이 골을 타고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러다 소파까지 젖어 버릴 것이다. 깜짝 놀란 엘리제가 잡고 있던 그의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잠깐, 흑, 블레이크…!”
그러나 멈추기는커녕 더욱 노골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안을 쑤셔댔다. 어깨를 두드리는 손을 잡아 내린 그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깊숙이 엮었다. 제 이름에 가냘픈 신음을 섞어 내뱉는 그녀의 입술을 덮어 머금었다.
엘리제는 마치 거대한 맹수에게 잡아먹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소리도 낼 수 없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무력하게 흔들리며 그가 선사하는 아찔한 쾌감을 받아 삼켰다.
“흐읏…!”
절정감에 파드득 몸이 튀었다. 허공에 내던져진 듯 발밑이 아득했다. 두려움마저 일어 사지가 뻣뻣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애처롭게 달라붙는 속살을 떨치듯 더욱 깊고 강하게, 빠르게 박아댔다. 붙잡을 수 있는 거라곤 깍지 껴 잡은 그의 손뿐이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주어 잡자, 블레이크가 이를 악물었다.
이미 가장 깊이까지 차지하고도 더, 더, 욕심을 내며 밀어붙였다. 활짝 벌어진 엘리제의 다리 사이가 온통 붉어지도록 쿵 쿵 찧어댔다.
다시금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제 그녀는 소파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엉덩이 아래가 이미 축축했다. 젖은 피혁이 살과 마찰하며 달라붙어 쩍쩍 소리를 냈다.
엘리제가 몸에서 힘을 풀자 그제야 그는 그녀의 손을 놔주었다. 가녀린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고는 새하얀 목덜미를 한껏 머금어 빨았다.
가랑이 사이로 파고든 손이 접합부 주위를 더듬었다. 흥건한 액을 가득 퍼 올려 벌어진 날개 사이에 묻히고는 비벼댔다.
“으읏, 응…!”
꼿꼿이 발기해 있던 자그마한 돌기가 그의 손에 짓눌려 농락당했다. 이미 한계까지 차올랐던 쾌감에 무자비한 자극이 더해지자 엘리제는 그의 몸 아래에서 또 한번 절정에 올라 바르르 떨었다.
그제야 그는 제 것을 빼냈다. 헐떡이는 엘리제를 가뿐히 안아 들더니 무릎 위에 올렸다. 엘리제는 힘없이 그의 몸 위에 늘어졌다.
“다시 한번 말해 보십시오.”
“뭐를…요…?”
가쁜 숨을 고르며 그녀가 간신히 물었다. 그러나 그는 답하지 않고 엘리제의 동그란 뒤통수만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그렇게 상냥하기만 한 한쪽 손과 달리 그의 다른 쪽 손은 양옆으로 벌어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부푼 꽃잎을 우악스레 잡아 벌렸다.
“읏, 블레이크….”
벌어진 음부에서 툭, 툭, 말간 액이 떨어져 내렸다.
벌름거리는 입구를 더듬던 손가락이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부드럽게 풀어진 안쪽이 달라붙어 조여대는 감각을 음미하듯 천천히 밀어 넣었다. 깊숙이 쑤셔 넣고는 느릿하게 휘저었다.
“아, 윽… 그, 그거 너무….”
“너무 좋다는 말 말고.”
질척질척한 소리가 노골적이었다. 쏟아진 액이 그의 손을 온통 적시는 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 주지 않을 겁니까?”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그가 속삭였다. 짜릿한 쾌감에 자꾸만 멍해지는 머리를 흔들며 그녀가 물었다.
“사랑…한다는… 말이요?”
“…….”
그가 손가락을 빼냈다. 물던 것을 빼앗겨 뻐끔거리는 입구에 다시금 무언가가 닿았다. 엘리제의 허리를 잡고 살짝 들어 올린 그가 그녀를 단단히 선 제 것 위로 앉혔다.
“아흐으윽….”
허전한 곳을 꽉 눌러 채우는 감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뿌리까지 모두 들어가도록 앉힌 후엔 그녀의 엉덩이를 제게로 바짝 끌어당겼다. 아까보다 더욱 깊었다. 자극이 심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등 뒤의 매듭을 느슨히 한 그가 그녀의 드레스를 끌어 내렸다. 슈미즈의 어깨끈을 잡아 내리고 가슴골의 리본을 풀어 하나 남은 속옷까지 벗겨 버렸다.
가신들과 함께 사무를 보는 공간에서 나신에 가까운 상태로 그의 것을 문 채 앉아 있는 여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 아름다웠다.
게다가 사랑이라니. 저를 사랑한다니.
블레이크는 문득 이것이 꿈인가 했다. 아니면 질투에 미쳐 환각을 보는 건지도 몰랐다. 소박하지만 고운 꽃반지를 다른 남자와 나눠 끼고 와서는 사랑을 고백할 리가 있나.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그는 가슴이 뻐근하도록 기뻤다. 꿈이나 환상이라 해도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곱씹을 것이다. 이보다 더 미쳐 판단력과 분별력을 잃고 기억까지 흐릿해지는 날이 와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 한 조각만은 악착같이 붙들 것이다.
그녀를 놓칠세라 끌어안고 몸부림치듯 파고들고, 품고, 저를 새기며 그는 거듭하여 되새기고 다짐했다.
***
카페에서 엘리제가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여자 주인공부터 캐스팅을 새로 해야 하기에 크랭크 인이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카인은 저도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위약금이 얼마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는 도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며칠 내내 물 한 모금 안 마셨더니 목에서 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뻑뻑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감아 버렸다. 피곤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잠들 수 없었다.
충전기에 꽂아 놓은 핸드폰에 수십의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으나 엘리제에게서 온 건 한 건도 없었다. 가만히 액정을 들여다보다가 ‘0’을 두 번 누르고 마지막엔 길게 한번 눌렀다.
[응, 왜.]
내내 전원이 꺼져 있더니 뜻밖에 바로 연결됐다.
[엘리제. 뭐 하고 있어?]
[드라마 보는데. 넌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니?]
[…글쎄. 그런가.]
[약이라도 사다 줘?]
엘리제의 말에 그는 제가 누운 곳 주변을 훑었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잘못 발을 들였다간 깨진 유리 탓에 다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어서 치우면 되지만, 그에겐 그녀를 부르지 못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
답하는 중에도 엘리제는 키득거렸다. 고요한 중에 그녀의 웃음소리, 숨소리를 오랫동안 듣다가 통화를 종료했다.
[어때? 잘 지낸대?]
붉은 머리의 악마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엉망인 몰골임에도 악마를 노려보는 카인의 눈빛은 형형했다.
[네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엘리제가 살해당해 죽는다니.]
[그렇다고 이렇게 시간만 죽이다간 두 번 다시 네 전화를 받지 못하게 될걸?]
카인은 이를 갈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헛소리 작작 늘어놓고 당장 꺼져.]
[이봐. 나를 부른 것도 너고, 못 가게 붙잡고 있는 것도 너야. 네가 정말로 원했다면 난 여기에 발도 들이지 못했을 거라고.]
[…….]
악마는 지치지 않고 저를 노려보는 카인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아직도 망설이는 우리 고객님을 위해 정보를 좀 더 풀어 볼까. 오늘 막 입수한 따끈따끈한 정보야.]
악마는 새카만 코트 주머니에서 꺼낸 쪽지를 카인에게 건넸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쪽지를 받아 든 카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부릅뜬 눈으로 몇 번이나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극심한 충격과 분노로 하얗게 질렸다.
[벌써 세 명이나 살해했더라고. 앞으로도 두 명 더 죽일 예정인 걸 보면 한동안은 잡히지 않겠지? 앞서 세 명이 놈에게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얘기해 줄까? 아주 악마가 따로 없어. 지하 세계 섭외 대상 1호야.]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안 돼.]
카인은 그 누구보다 엘리제를 잘 알았다. 그녀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것으로도 모자라 몇 번이나 파양됐다. 멀고 먼 타국, 언어도 인종도 다른 세상에서 유일한 의지처인 양부모에게까지 학대당하다가 도망쳤다.
버려지는 법만 알아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엘리제는 늘 외톨이였다. 섞여 있어도 섞이지 못했다. 화려한 외양에 홀려 다가온 이들도 얼마 되지 않아 등을 돌렸다.
그런데도 그가 그녀에게 손 내밀지 못한 건, 저 또한 마찬가지인 사람이어서였다. 엘리제 못지않게 어둡고 절망적인 환경에서 자라, 비틀리고 어그러져 있는 제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리 없었다.
저 같은 사람은 엘리제를 욕심내선 안 됐다. 그는 그녀가 충분히 사랑받고 산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살길 바랐다. 공주님처럼 귀하게, 부족함 없이 살길 바랐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영 친구로만 남아 있어도 괜찮았다. 때론 도피처가 되어 주며 함께 늙어가는 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소중하여 감히 마음 한 톨 내보이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엘리제는 그렇게 죽어선 안 돼.]
[그럼, 그럼. 그렇게 죽어선 안 되고말고.]
[그놈에게 가야겠어.]
그가 저벅저벅 거실을 가로질렀다. 유리 파편을 잘못 밟아 상처에서 흐른 피가 카펫을 물들였으나 고통을 못 느끼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뭐야. 지금 간다고?]
당황한 악마가 허둥지둥 그를 따라나섰다. 아무렇게나 후드를 눌러쓰고 코트를 걸친 카인이 차 키와 핸드폰만 챙겨 집을 나섰다.
[이봐, 뭘 어쩌려는 거야. 이렇게 무작정 간다고 놈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아?]
[넌 악마잖아. 네가 날 도와.]
[내가? 왜?]
우뚝 멈춰 선 그가 붉은 머리의 악마를 돌아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쪽지에 적힌 게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면, 너와 계약하겠어.]
[정말?]
[두 번은 말 안 해.]
휘둥그레졌던 악마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좋아. 잘 생각했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웃는 그의 입술에서 음산한 뱀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후회하지 않을 거야, 카인 리베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