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기
-84-





아래가 충분히 적셔진 걸 확인하고 나선 그녀의 등과 허벅지에 조금 더 부어 넓게 펴 발랐다. 긴장하여 뻣뻣했던 몸이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나른히 풀어졌다. 적어도 그의 손이 그녀의 다리 사이, 가장 예민한 곳에 닿기 전까지는 그랬다.







엘리제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서서히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온 그의 손이 그녀의 음부에 닿았다. 양쪽 엄지로 갈라진 틈을 벌리며 날개 속까지 문질러 댔다. 그러다 질구에 다다르자 꾸욱 손가락 한 마디를 넣었다 빼며 다물린 입구를 열었다.







그가 다시 한번 병을 기울여 뻐끔대는 구멍에 향유를 흘려 넣었다.







“아…!”







움찔대는 엘리제의 등을 지그시 눌러 고정하고선 질 안까지 잔뜩 밀어 넣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액체와 함께 단번에 깊은 곳까지 침입한 그의 굵은 손가락 탓에 엘리제는 끙끙거리며 신음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부족하여 안달이 났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저 삽입한 손가락들로 내벽을 더듬어 꼼꼼하게 액을 바르는 데 집중했다.







“흐으, 응….”







질컥질컥.







엘리제가 흘린 애액과 향유가 뒤섞이며 야한 소리를 냈다. 몸 상태가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고작 그의 손가락 두 개가 들락날락하는 것뿐인데 너무 기분이 좋아 질질 싸다시피 했다.







그가 부어 바른 것이 단순한 향유가 아님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신에서 야릇한 열감이 피어오른 것이다. 양 가슴과 음부, 질 속은 물론이거니와 액이 발린 곳 전부가 성감대라도 되는 양 예민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히 화끈거리는 곳은 질 속이었다.







그런 엘리제의 상태를 분명히 알 텐데도, 블레이크는 그녀의 몸을 달구어대기만 할 뿐 셔츠 단추 하나 풀지 않았다. 평소 정성 들인 전희를 좋아하는 엘리제였지만 지금만은 그렇지 않았다.







“블레이크….”







흐느낌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간질간질 피어오른 욕망이 불길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제게 뭘, 흑, 바른 거예요?”



“정제한 마력석을 베이스로 한 향유입니다.”



“마력석…이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그가 친절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향유로 꾸준히 마사지해 주면 미약하게나마 몸에 마나가 스며듭니다. 대단한 효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부인의 연약한 피부를 보호해 줄 겁니다.”







엘리제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감탄했다. 같은 무게의 마력석이 금보다 배는 비싸다는 걸 오늘 막 알게 된 참이었다. 굉장한 고가의 아이템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이상…하죠?”



“다른 효능이 하나 더 있어서입니다.”







다정히 속삭이며 그가 그녀의 음핵을 엄지로 살살 문질렀다. 안을 들쑤시며 음핵까지 자극하자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했다.







“아, 앗, 자, 잠시만… 아아….”



“몸의 감각을 일깨워 줍니다. 물론 그러한 목적으로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요.”







그녀가 정신없이 신음을 내지르는 와중에도 그는 엘리제의 귓가와 목덜미에 자잘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아주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지요.”



“브, 블레이크으, 읏….”



“네, 엘리제.”



“저 못 참겠어요.”







울먹이며 내뱉는 목소리에 뜨거운 숨결이 실렸다. 엘리제는 서늘한 시트에 뺨을 비볐다. 그래 봤자 전신을 태울 듯한 열기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무엇이 말입니까.”







블레이크가 물었다. 지금의 상황에는 전혀 걸맞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잔뜩 몸이 단 엘리제는 이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그가 그녀의 귓불을 잘근 깨문 탓에 엘리제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또 앓는 소리를 냈다. 바르작거릴 때마다 젖꼭지가 짓눌려 비벼지며 아찔함을 선사했다.







“그렇습니까.”







그가 엘리제를 끌어안아 정신없이 움찔대는 그녀의 몸을 제 몸으로 구속했다. 비비는 속도가 빨라지며 질척거리는 물소리도 한층 요란해졌다.







“흐윽, 으응… 읏….”







거센 쾌감에 시달리는데도 오르가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진즉에 몇 번이나 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괴로웠다.







묵직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진즉부터 그녀의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바지와 속옷에 갇혀 있음에도 그의 것이 주는 존재감은 명확했다. 저것이 속살을 가르고 쿵쿵 찧어댈 때의 쾌감을 익히 알기에 더욱 지독한 갈증이 일었다.







“이거, 블레이크, 당신 걸….”







이미 머릿속이 새하얬다. 블레이크와 카인에 대한 고민 따위는 구석진 곳에 밀려나 고개도 들지 못했다.







지금은 일단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욕망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뒤로 손을 뻗어 그의 것을 만지려 할 때였다. 아래를 쑤시던 손가락이 갑작스레 쑤욱 빠져나갔다. 드디어 넣어 주려나 하는 기대감이 차오를 때, 그를 향해 뻗은 왼 손목에 무언가 서늘한 것이 감겼다. 곧이어 오른쪽 손목에도 비슷한 것이 감겼다.







‘응…?’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시야가 캄캄해졌다.







“안대입니다.”







멈칫 굳어 있는 그녀에게 그가 말해 주었다.







“시각을 차단하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지지요.”



“아….”



“혹, 불쾌합니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손목에 감은 천은 무슨 용도인지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녀가 싫어하는 짓을 억지로 할 리 없기에 거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안대를 채우든 손목을 묶든,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 건 하나였다. 일단 그가 어서 저를 안아 주었으면 했다. 평소처럼 가장 깊은 곳까지 버겁게 채워 주었으면 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을 만큼 기분이 좋아, 엘리제는 숨을 헐떡였다.







“괜찮으니 이제, 어서….”







자존심이고 뭐가 다시 한번 애원하듯 재촉했을 때였다. 그녀의 등에 닿아 있던 그의 몸이 제게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살결이 천에 스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멀리에서 들려왔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간 것 같아, 엘리제는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손목이 무언가에 의해 당겨지며 도로 풀썩 엎어지고 말았다.







엘리제는 오른쪽 손으로 제 왼쪽 손목을 더듬었다. 부드러운 천으로 된 보호대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끈이 침대 상판 어딘가에 연결된 듯했다. 지난번에 그가 사 온 마법 아이템 중에 이런 것을 본 것 같았다.







몇 번 일어나려 버둥대던 엘리제는 그만 포기하고 블레이크의 기척을 느껴 보려 애썼다.







“블…레이크?”







방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는 분명 못 들은 것 같은데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한 방 안, 자신의 숨소리만 크게 들렸다. 안대 탓에 보이는 건 없고, 몸은 더 예민하게 달아올랐다. 가만히 있어도 질질 애액이 흘렀다. 다리를 타고 흐르는 것도 모자라 시트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으읏, 응….”







아래에 손이 닿으면 자위라도 해볼 텐데 끈의 길이가 짧아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어디에라도 비비고 싶은데 닿는 거라곤 푹신한 베개나 이불뿐이었다.







속절없이 허벅지만 모아 비비는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세우고 엉덩이만 치켜든 자세로 허벅지를 비벼대는 제 모습이 얼마나 음란해 보일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만큼 참기 힘들었다.







“아아, 제발… 블레이크….”







지금처럼 그를 애타게 원한 적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방 안에 스며드나 싶더니 침대 한쪽에 체중이 실렸다. 방이 후덥지근할 만큼 벽난로에 불을 지펴놓은 데다가 몸에 열이 올라 견디기 힘들었던 차라, 미약하게 새어 들어온 바람이 반가웠다.







“이제, 그만 애태워요. 네?”







엘리제는 손을 뻗어 그의 아랫도리를 더듬거렸다. 손목이 당겨지는 걸 무시하고 간신히 버클을 풀러 속옷 위로 그의 것을 만졌다.







“참기 힘듭니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달궜다.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제의 머리칼을 그가 다정히 쓸어 주었다.







“말해 보세요. 무엇을 원하는지.”



“이거요. 이걸 넣어 주세요.”







그녀의 재빠른 대답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없군요.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이쯤 할까요’라고 속삭이며 그가 나직이 웃었다. 충분히 애태우지 않았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향유의 효능이 발휘되기엔 시간이 부족하단 소리인지 알 수 없으나 엘리제는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온 그가 엘리제의 손을 조심스레 이끌어 침대 상판을 잡게 했다. 세운 무릎을 넓게 벌리게 하고서 그녀에게 몸을 붙였다.







엉덩이에 단단한 것이 닿았다. 제 모습을 훤히 드러낸 그것이 그녀의 엉덩이 골과 음부를 미끄러지며 오갔다.







“아으으….”







그러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기대감에 입이 바짝 마르고, 몸이 떨렸다. 입구에 꾹 눌렸다가도 미끌, 스쳐 가는 것이 야속했다.







“어서, 어서요….”







이러다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엘리제의 재촉에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페니스 선단을 그녀의 질구에 고정했다. 그 직후, 굵고 단단한 것이 쑤욱 파고들었다.







“……!”







엘리제는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삽입과 동시에 지독한 절정감에 휩싸인 탓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들바들 떨렸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더니 평소보다 배는 자극적이었다. 그가 허리만 살짝 흔들어도 또다시 가버릴 것 같았다.







이를 아는지 그는 그녀에게 제 것을 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하곤 입을 맞췄다.







“으, 응….”







깊숙이 파고들어 여린 점막을 쓸고, 혀를 휘감아 비벼대는 난폭한 입맞춤에 엘리제는 가느다랗게 신음했다. 그에게서 흘러든 타액이 타는 듯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었다. 꿀꺽, 삼키고서 더욱 고개를 젖혔다. 스스로 입을 벌리고 더 휘저어 달라 재촉했다.







농밀한 입맞춤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그녀의 예민해진 몸을 멋대로 농락했다. 꼿꼿이 선 젖꼭지를 비트는가 하면 가슴을 움켜쥐어 이지러뜨렸다. 잔뜩 힘이 들어간 허벅지를 주무르고, 발기한 음핵을 비벼댔다.







그러다 그녀의 몸이 서서히 진정되어 갈 때쯤 허리를 물렸다. 느릿하게 절반쯤 빼어냈다가 철퍽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박아 넣었다.







“흑!”







휘청이는 엘리제의 상체를 한 팔로 감아 고정한 채 다시금 몸을 물렸다. 이번엔 귀두만 걸리도록 쭈욱 빼내 얕게 들쑤셨다.







“으응, 응, 읏….”







안달이 난 엘리제가 스스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의 것이 조금이라도 더 깊게 들어오도록 그에게 몸을 붙였다.







턱을 타고 흐른 타액이 가슴골까지 흘러내렸다. 흥건히 젖은 접합부에서도 투둑 툭, 말간 액이 흘렀다.







지독히도 음란하며 야한 광경이었다. 누구라도 이를 본다면 정신이 팔려 꼼짝하지 못할 만큼.











***











네프러스의 단장, 슈만 크롬벨에게 얼마간 시달리다 저택에 돌아온 카를리아즈는 술병을 방 안 테이블에 열 지어 세워 놓았다. 오늘 밤 주량 테스트를 하라는 엘리제의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다 일단 한 잔 가득 따라 마셨다.







취한 사람은 보통 몸을 잘 가누지 못해 똑바로 걷지 못한다. 걷는 것으로 취했는지 아닌지 판단하면 될 듯했다.







널찍한 방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끝에서 끝까지 걸어 보았다가 잘 걸을 수 있으면 다시 또 한 잔을 마셨다. 한 잔, 두 잔. 그렇게 일곱 잔째가 되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귀찮아졌다. 한 잔 더 마시고 걸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도 멀쩡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고 한 잔을 더 마셨다. 단번에 잔을 비우고서 내려놓는데 문득 글라스에 비친 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걸 본 순간 그는 갑작스레 울적해졌다.







이렇게 못생겼으니 엘리제가 받아 주지 않는가 싶었다. 원래의 제 모습은 이보다 훨씬 잘났다. 신이 그를 사랑하여 내려준 완전무결한 육신인 만큼 천사보다 아름다웠다.







그는 연거푸 두 잔을 더 비웠다. 충격적이게도 글라스에 비친 자신이 전보다 더 못생겨졌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엘리제는 그러한 이유로 자신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그를 염려하여 대답을 미룬 것뿐이다. 일을 잘 마치고 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긍정적? 정말 그녀가 그렇게 말했던가?’







멍한 정신에 긴가민가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그녀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다. 술을 얼마만큼 마시든 자신이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얘기해 줘야 했고, 블레이크에게 잡혀 아팠을 손목도 치유해 줘야 했다.







그러는 김에 제 진짜 모습이 지금보다 훨씬 나음을 슬쩍 얘기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