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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예요?”







이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의식하여 엘리제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힘을 쓰기 전에 녀석이 먼저 몸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간 건 아닐 거야.”



“근처에 있을 거란 소리예요?”



“그런 의지가 느껴지더군.”







대답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 남은 빛의 잔재가 요란하게 반짝였다.







엘리제는 그의 표정에 서린 기대감을 읽었다. 그녀의 요청대로 용을 쫓아내 줬으니 칭찬해 달라는 것이리라. 의식하지 않은 사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고도 바라는 게 이런 것뿐이다.







“고마워요, 칼. 역시 믿을 사람은 당신뿐이네요.”







블레이크만 아니었다면 뽀뽀라도 쪽, 해줬을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살짝 휘어진 눈에 기쁨이 그득했다. 엘리제는 점점 더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그가 기특했다. 물론 가장 대단한 건 그를 바꿔 놓은 저 자신이지만.







“아앗, 엘리제 님! 저는요!”







메리가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음. 메리도 수고했어.”







엘리제는 건성으로 말했다. 괜히 여기서 쥐어박았다간 눈치 없는 메리가 아무 말이나 쏟아낼 가능성이 컸다.







“별거 아니었어요.”







쑥스러워하며 메리가 헤헷, 웃었다. 사고를 쳤다는 자각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빠르게 가까워지던 말발굽 소리가 멎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말에서 내린 블레이크가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엘리제는 티 나지 않게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멀쩡히 뛰던 심장의 박동이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빨라졌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말아 쥔 손이 새하얬다. 엘리제는 지금 그를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블레이크가 카인일 거라는 예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카인 혹은 블레이크가 쏟아붓는 진심과 애정의 크기를 알아 버렸다. 그것의 무게를 깨달았고, 무슨 미친 짓까지 벌일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공룡이 크다’라고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마주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평생 이해할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를 강하게 옥좨 왔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런데도 몸을 비틀어 벗어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큰일 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저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의 고집을 알아차렸을까.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엘리제의 손을 잡아 왔다. 평소와 달리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팠다. 그러나 참을 만은 했기에 엘리제는 미간만 살짝 찌푸렸을 뿐 아프다고 말하거나 뿌리치지 않았다.







“부인. 대체 왜 여기 있습니까. 왜 성을 나왔습니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분노가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 그를 외면할 순 없었다. 혼란에 잠긴 그녀와 달리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몸을 돌리면서도 시선은 그의 가슴께에 둔 채 엘리제가 대답했다.







“궁금해서요. 용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했습니까. 기사들은 어쨌습니까.”







미쳤다고 기사들을 줄줄 달고 오겠는가. 다들 정신없는 사이 의상실 뒷문으로 나와 여기까지 왔다. 거기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로 저 눈치 없는 메리가 뚝, 뛰어내릴 듯했기에.







“다른 이들은 필요 없어요. 오라버니가 함께 와줬는걸요.”







늘 나긋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은 건조하다 못해 퉁명스러웠다.







“용 같은 건 무섭지 않아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극심한 피로감 때문이었다. 메리의 기행과 가속화된 균열, 카를리아즈의 이상한 착각 그리고 드디어 확신하게 된 카인 리베르토의 진심. 이 모든 걸 고작 하루 만에 이겨내고 멀쩡히 연기에 임하려면 배우 경력 30년 차는 되어야 할 것이다.







베테랑이라곤 해도 그녀는 경력 15년 차의 배우였고, 그저 ‘사람’이었다. 모든 걸 그러려니 받아들일 힘은 애초에 부여받은 적 없었다. 짊어지고 삭였을 뿐이다.







“엘리제.”







고작 기사 한 명의 힘으로 용을 잡는 게 불가능한 일이든 아니든 엘리제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루카스가 용을 쫓아낸 이상 블레이크는 그녀를 책망할 수 없다. 엘리제는 무사했고, 이제 위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가지요. 많이 놀랐을 텐데.”







그가 잡은 손을 당겼을 때, 엘리제는 저도 모르게 버텼다. 지금 저택에 돌아가 그와 계속 함께 있어야 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살피는 듯한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그가 가만히 서서 엘리제를 내려다보는 동안 클로드와 앨런이 당도했다. 갑자기 사라진 용에 관해 묻고 싶었던 그들은 분위기 탓에 눈치만 보았다. 메리도 지금만큼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엘리제와 블레이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







블레이크의 시선이 엘리제에게서 루카스로 옮겨갔다. 블레이크에게 잡힌 엘리제의 손을 바라보던 루카스도 고개를 들었다. 맞닿은 시선의 온도가 지독히도 낮았다.







“그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오늘은 클랜튼 경과 있겠습니까.”



“…네?”







엘리제는 제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가 대체 뭐라는 건가.







“나와 함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그제야 고개를 든 엘리제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린 듯한 미소를 보고 멈칫했다. 한번 깊은 의심에 빠지고 나자 그의 표정이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카인 리베르토를 떠올리고 만다.







사심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마냥 친절한 미소를 그녀는 꽤 자주 봤었다.







[이안과 나가는 것 같더니, 잘 됐어?]



[잘 되고 말고 할 게 있나. 그냥 얘기만 하다 헤어졌어.]



[왜? 이번에야말로 연애 좀 하나 했더니.]



[들러붙는 성격 같더라고. 귀찮은 건 질색이야.]







그때는 카인의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조금 재수 없고, 조금 편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의 오래된 감정을 깨달아 곱씹어 본 지금, 엘리제는 블레이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경고등의 불이 번쩍였다.







“그런 거 아녜요. 용을, 잠깐밖에 못 봐서…. 아쉬워서 그래요.”



“그렇습니까.”



“네. 정말 크고 예뻤거든요.”







엘리제는 구질구질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서 예의 그 미소가 사라지지 않자 재빨리 달라붙어 뻔뻔스레 팔짱을 꼈다.







“어서 가요. 해가 지니까 춥네요.”







파르르 몸을 떨어 애처로운 척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블레이크의 눈빛과 표정이 조금쯤 정상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준 블레이크가 엘리제를 안아 말에 올려주었다.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클로드가 말했다.







“먼저 가십시오. 저희는 크롬벨 경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수색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블레이크가 엘리제 뒤에 올라탔다.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엘리제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루카스를 힐끗 쳐다보고선, 그대로 출발했다.











***











저택에 돌아올 때까지 엘리제와 블레이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그를 기분 좋게 할 말을 여러 가지 던졌을 그녀지만 지금의 피로감은 그조차 미루게 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평소처럼 그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생전에도 엘리제는 맛있는 음식과 잠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나중에 잘 풀어 주면 되겠지.’







그녀를 몹시도 사랑하는 블레이크다. 당장엔 화가 났을지라도 달콤한 말을 건네며 살갑게 굴면 금방 풀리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은 건 그녀가 식은 몸을 데우려 욕실로 향할 때였다. 시녀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벗는 동안 곁을 비웠던 블레이크가 어느새 돌아와 그녀를 붙들었다. 벗은 몸에 얇은 가운 한 장만 걸치고 있는 엘리제를 말없이 안아 침대에 눕혔다.







“블레이크…? 왜 갑자기….”







내려다보는 눈빛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대답 없이 매듭을 풀고 엘리제의 가운을 양쪽으로 젖혔다.







그녀로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닦아 내긴 했지만, 루카스의 정액이 꽤 많이 묻었었다. 어딘가에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먼저 씻고 싶어요.”







가운을 도로 여미려는 그녀의 손목을 그가 잡았다. 천천히 침대에 내리누르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섬뜩하도록 어둑한 목소리였다. 엘리제는 등줄기가 뻣뻣해짐을 느꼈다.







“어차피 다시 씻어야 할 텐데, 무엇 하러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때마침 그가 고개를 숙인 탓에 검푸른 머리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그녀에겐 무엇 하러 씻냐 말했으면서 그의 머리칼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츠읍, 츱, 여린 살을 입술에 머금고서 깊게 빨아대는 소리가 귓구멍을 축축하게 적셨다. 목덜미 전체를 붉게 물들일 생각인지, 그는 느릿하며 꼼꼼히 흔적을 새겼다.







“아….”







별로 섹스할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목 좀 빨렸다고 아래가 젖어 들었다. 그에게 안긴 시간과 경험들이 그녀의 본능을 부추긴 탓이다.







그가 입술을 미끄러뜨려 가슴을 빨기 시작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곳마다 홧홧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으로 그는 그녀를 빨고 깨물며 핥아 댔다. 루카스의 손길이 닿았던 곳, 정액이 흩뿌려졌던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딘가에 희뿌연 얼룩이 남아 있었더라도 그가 모두 핥아 없앴을 것이다.







다른 남자의 것이 비벼졌던 아래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로이 흘러내리는 액을 제외하곤 남기지 않았다.







“흐윽….”







그녀의 다리 사이에 그가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스스로 들쑤셨던 좁은 구멍에 혀를 밀어 넣어 흥건한 액을 빨아 삼키고선 휘젓고 들쑤셨다. 다른 건 생각할 새도 없이 엘리제는 쾌감에 사로잡혀 엉덩이를 들썩였다. 시야가 흐려졌다가 밝아지길 반복했다.







쾌감의 파고가 점점 거세져 단번에 그녀를 집어 삼켰다. 허리가 붕 뜨고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바들바들 몸을 떨며 시트를 쥐어뜯었다. 붉게 물든 눈꼬리에 눈물이 도르르 흘렀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집요하게 그녀의 아래를 빨아댔다.







지나친 자극에서 벗어나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도망가는 그녀를 붙들어 엎드리게 하고선 엉덩이 골까지 혀를 내어 핥았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둥그런 살덩이가 양쪽으로 벌어졌다. 가장 수치스러운 곳이 훤히 드러났으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으읏, 블레이크… 잠깐만….”







뭔가를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이 없을 만큼 그는 거침없이 그녀를 쾌락의 늪에 처박았다. 그가 작정하였다는 걸 깨달은 이상 도망치는 건 불가했다. 이를 깨달은 엘리제가 버둥거리길 멈추고 얌전해졌을 때였다.







뽁, 하는 자그마한 소음이 들리더니 향긋한 향이 야한 냄새에 섞여들었다. 차갑고 끈적한 액이 그녀의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 회음부와 질구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