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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는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편안히 기댔다. 그녀를 따라 그의 몸이 함께 기울어졌다. 반쯤 누운 상태로 그들은 질척한 키스를 이어 갔다.







허벅지에 닿은 단단한 건 분명 욕망의 증거였다. 등을 감싼 손이 뜨거웠다. 사내로서의 본능이 생긴 건 좋은데, 잘못된 상대에게 푸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뭐, 여자에게 좀 더 능숙해지는 편이 시에나를 유혹하기엔 좋을 테니까.’







어차피 좀 더 높은 수위까지 가르칠 생각이었다. 지금으로선 어느 구멍에 넣어야 할지도 모를 그를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동정인데 절륜한 건 허구 속 인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안에 든 것이 500년간 수음 한번 해본 적 없는 윗세계 요원인 이상 알아서 잘하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어딜 어떻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만져야 여자가 좋아하는지부터 시작하여 어디에 넣고 어떻게 흔들어야 하는지까지 하나하나 알려 줘야 한다.







‘그래도 일단 한번 내버려 둬 볼까?’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치기에 앞서 한 번쯤은 마음대로 하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엘리제는 무릎 아래에서 빼내려다 깔린 그의 손을 끌어와 제 가슴 위에 올렸다. 지난번 몸을 만져 보라고 했을 때 유독 열심히 만졌던 게 생각난 것이다. 머뭇거리면서도 루카스는 그녀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그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성이나 단단해진 것을 바지 위로 힘주어 쥐자 그의 몸이 움찔 튀었다.







멈추고 싶다면 언제든 키스를 멈추고 일어나면 될 텐데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티는 걸로 보아 이 뒤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우리 루카스, 훌륭해졌네.’







이게 다 여태까지 훈련한 것의 성과인 것 같아 흐뭇했다.







굵직한 기둥을 감싸 쥔 채 쓸어 올렸다가 내리길 반복하자 그가 본능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옷 위로 어루만지는 데 그치지 않고 급기야 우악스럽게 드레스를 끌어 내린다.







답답하게 눌려 있던 봉긋한 가슴이 해방되어 서늘한 공기에 노출됐다. 빳빳이 고개를 든 정점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살짝 잡아 비튼다.







‘와아, 얘 봐라?’







가르쳐 주지도 않은 걸 잘도 한다. 이쯤 되자 엘리제도 슬슬 흥분되기 시작했다.







상황과 환경이 주는 배덕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피팅룸이니만큼 허락 없이 누군가가 들어올 염려는 없다. 그러나 커튼 한 장 너머에 루카스의 예비 연인이 앉아 있지 않나.







멜릭이 블레이크의 명을 받아 고용한 재봉사도 몇이나 있었고 대공가의 호위 기사들도 의상실에 한 명, 건물 바깥에 서너 명 대기 중이었다.







의붓남매로 설정된 그들이 이처럼 진한 수위의 애정행각을 벌이기엔 몹시 위험한 장소란 소리였다.







‘그래서 더 재밌는 거지.’







그녀의 목선을 따라 미끄러지던 그의 입술이 가슴까지 내려왔다. 아이처럼 그녀의 가슴을 머금고는 혀를 굴려 핥고 빨았다. 기분 좋은 한숨을 흘리며 엘리제는 루카스의 결 좋은 머리칼에 손을 넣고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이 아래에서 떨어지자 안달이 난 그가 스스로 자신의 것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직 옷 밖으로 꺼내 흔든다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몹시도 야해서, 감상하기에 딱 좋았다.







그의 행위가 멈춘 것은 밖에서 들려온 피터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엘리제 님, 라우디아 영애가 돌아갔습니다.”







그제야 루카스는 자위하던 손을 멈추고 그녀의 가슴에서 입술을 뗐다. 늘 선명하던 녹안이 열기에 잠겨 흐릿했다.







“엘리제 님?”







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러 번 눈을 깜빡이던 루카스가 시선을 내렸다. 엘리제의 붉게 부푼 입술과 젖어 번들거리는 가슴, 드러난 허벅지를 확인한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내가 지금 뭘….”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느긋한 손길로 차림새를 단정히 하며 엘리제가 물었다. 벌떡 일어난 그에게서 갑작스레 흰 빛이 터졌다.







“응…? 뭐 하는 거예요? 어디 아파요?”



“독에 중독된 것 같아서.”







엘리제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독이라니. 그런 거 없어요.”



“하지만…. 지난번처럼 음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게 바로 남자의 본능이라는 거예요.”



“내가 아무 외부적 요인도 없이 네게 발정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가?”







거울을 보며 머리 손질을 마친 엘리제가 루카스에게로 빙글 몸을 돌렸다.







“어머, 그런가?”



“엘리제….”







그녀는 그에게로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앞에 선 채 올려다보는 눈빛에 장난기가 서렸다.







엘리제의 손이 그의 뺨으로 향했다. 양손으로 볼을 감싸더니 꾸욱 꾸욱 힘주어 누른다.







“서로 좋아서 했는데 무슨 놈의 범행이에요. 괜히 또 억누르려 하지 말고 지금처럼 본능대로 행동해요. 그래야 시에나랑 섹스하죠.”



“정말…?”



“그럼요. 당신은 지나친 절제가 문제인 거니까요.”







지레 놀라서 다시 또 금욕남이 돼 버리면 큰일이다.







“분위기 잘 탔어요. 상대가 틀렸다는 것만 빼면 훌륭해요.”



“네게 또 폐를 끼쳤군. 면목이 없다.”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으니 이 정도는 도와야죠. 신경 쓰지 말아요.”







그의 뺨에서 손을 뗀 엘리제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먼저 나갈 테니까 진정되면 나와요.”







그의 엉덩이를 톡 두드리곤 엘리제는 홀로 피팅룸을 나갔다. 우두커니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카스는 아랫입술을 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모든 게 잘 돼 가고 있다는 건데, 어째서 심장이 이토록 따갑고 불편한지 알 수가 없었다.











***











온종일 엘리제는 의상실에 있었다. 시에나가 보내온 드레스를 확인하며 피터와 쿤, 재봉사들과 함께 도안을 수정했다. 다행히 멜릭이 고용한 재봉사들의 경력과 솜씨가 상당하여 어렵지 않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오전 일찍 입궁했던 블레이크는 일을 마치자마자 그녀를 보러 왔다. 편히 쉬며 구경 중일 줄 알았던 엘리제는 작업대에 붙어 앉아 있었다.







그는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엘리제를 살폈다. 무리하여 몸이 상할까 봐 걱정되었다.







“생각보다 재밌어서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엘리제가 생긋 웃어 보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엘리제는 즐거워 보였다.







‘의상실에 좀 더 신경 쓰라고 멜릭에게 말해 둬야겠군.’







내부를 꼼꼼히 훑던 그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루카스를 향했다. 꽃병 하나를 원수처럼 노려보다가도 이따금 엘리제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퍼뜩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이 몹시도 수상했다.







‘싸웠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루카스와 엘리제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길 바랐던 그였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몸이 약한 엘리제를 위해서는 루카스가 꼭 필요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 곁에 붙들어 놔야 했다.







엘리제를 치유하느라 생명을 소진하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었다. 블레이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엘리제가 그의 곁에서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정무 회의에 참석하여 영향력을 미치고, 타 귀족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려 작업 중인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클랜튼 후작이 의붓아들을 쥐락펴락하지 못하도록 정치적으로 고립시켜야 했다.







황궁 지하 감옥에 갇힌 사용인들이 형을 감면받고자 너나 할 것 없이 후작 부부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뱉었기에 일은 수월히 진행되고 있었다. 후작으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살려 두는 것만도 블레이크에겐 대단한 관용이었다. 엘리제의 친부가 아니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바닥에 처박고 나면 사용인들 차례다. 감면을 약속한 만큼 그들은 교수형을 면할 것이다. 대신에 키세프 섬에 보낼 예정이다. 그 사실을 알면 차라리 죽여 달라 울며불며 애원할 테지만.







그가 신경 써야 할 건 클랜튼 후작과 사용인들뿐이 아니었다. 루카스 클랜튼은 쓸데없이 능력이 출중하고 그만큼 인기도 많았다.







‘프로이젠에 데려가려면 네프러스 소속인 게 방해가 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슈만과 상의해 봐야겠군.’







스스로 사퇴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저 때문에 오라비의 날개가 꺾였다 여긴 엘리제가 슬퍼할 테니. 그녀가 다른 이 때문에 우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다. 엘리제의 눈물은 오로지 저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블레이크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제 거의 다 끝나가요. 금방 마무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밖에 나가 있을 테니 천천히 나와요.”



“고마워요, 블레이크.”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일이 더 늦어질 것 같아서 블레이크는 먼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오늘 엘리제의 호위를 담당한 기사들에게 물을 것도 있었다. 마침 바트 루오스가 눈에 들어왔다.







“바트.”







그의 부름에 바트가 재빨리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네, 주군.”



“오늘 대공비의 식사는 누가 챙겼지?”



“시녀장이 비전하께서 드실 음식을 바구니에 가지고 왔습니다.”



“뭘 먹었는지는 보았나?”



“자세히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샌드위치와 샐러드 위주로 드시는 것 같았습니다. 많이 남기셨다고 시녀장이 속상해했습니다.”







엘리제는 평소에도 식사량이 적었다. 저택에서 가져온 음식이 식었다면 맛이 없어 더욱 조금 먹었을 것이다. 미간을 찡그린 채 고민하던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옆 건물을 사야겠군.”







갓 만든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레스토랑을 차려 요리사를 상주시키면 될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나?”



“특별한 일이요…?”



“루카스 클랜튼. 오늘따라 유독 내 아내와의 사이가 서먹해 보이던데.”







바트의 눈이 당혹감에 흔들리는 걸 블레이크는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잠시간 말을 고르던 바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주군. 클랜튼 경은 미처 신경 써 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이 싸우시거나 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잠시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블레이크가 가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됐네. 앨런에게도 말해서 내일부터는 그를 눈여겨보도록.”



“네, 주군.”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블레이크는 바트와의 대화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엘리제.”







그녀를 향한 그의 얼굴엔 냉기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채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











카밀라와 함께 투리스 저택으로 향해 가면서도 시에나의 머릿속은 ‘사라의 의상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밀라는 그런 이름의 의상실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몹시도 맛있었던 케이크 얘기도 믿지 않았다. 시에나의 입맛이 저렴한 탓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이들에게 사기라도 당한 게 아니냐는 소리에 기분이 상한 시에나는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는걸.’







그들이 그녀에게 사기를 쳐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수선을 맡긴 옷을 들고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녀가 보내기로 한 드레스는 굳이 그럴 만큼 비싼 것도 아니었다.







‘수선이 잘 끝나면 카밀라도 데려가야지.’







어차피 그전까지는 그녀의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저택에 당도하기가 무섭게 시에나는 카밀라에게 떠밀려 목욕을 하고, 향유를 바르고, 새롭게 치장했다. 대체 방문한다는 귀한 손님이 누구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투리스 자작 부부는 선약이 있어 저택을 비운 상태였고, 손님을 맞이하는 건 카밀라의 몫이었다. 애초에 카밀라의 손님으로 오는 것이기에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귀한 분이긴 해도 그리 격식을 따지지 않는단다. 그래서인지 카밀라는 실내용에 가까운 진회색 슈미즈 드레스를 입었고, 시에나 역시 그녀와 비슷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그렇다니까.”







저택 입구에 마차가 멈춰 서는 순간까지도 시에나는 카밀라에게 재차 물었다. 이런 옷차림으로 귀한 손님을 맞이해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카밀라는 내내 태평했다.







“오히려 옷차림이 간소해질수록 좋아하셔.”







카밀라의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 네가 시에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