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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는 자신이 지금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엘리제를 찾아 성을 헤매며 스며든 최음제의 독이 전신에 퍼져 그의 정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 게 옳은 선택이다. 오래지 않아 프로이젠 기사단을 이끌고 이곳에 당도할 칼라드가 해독제를 가져올 것이다. 그 전까진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 없는 곳까지 물러나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속이 들끓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엘리제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겨 그런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에게 황자의 변명은 필요 없었다. 문밖에서 엘리제가 황자에게 하는 말을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껏 그녀에게 해준 건 정말 최소한의 것들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작 그 정도 이유만으로 그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니 황자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녀의 고백에 가슴이 뻐근하도록 기쁜 한편 분노와 안타까움이 치밀었다. 얼마 살지 못한다던 의사들의 한결같은 말이 떠오른 탓이다. 그녀는 욕심이 없어 바라는 것은 참으로 소박한데 타인을 신경 쓰느라 저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마냥 착해서는 다른 이의 곤란을 보아 넘기지 못했다.
며칠이나 앓다가 겨우 깨어나 놓고 블레이크가 곤란해질까 봐 무리하여 시합에 참여하고, 고양이 한 마리 잃었다고 기권도 못한 채 성을 헤매고 다닌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엘리제는 그 와중에도 저를 납치한 황자를 품에 안고 위로했다. 그 가냘픈 손으로 황자의 등을 쓸고 다독였다. 있지도 않은 친구를 만들어 소개해 주겠다니, 이를 위해 또 얼마나 무리하게 될 것인가.
그녀의 착한 심성을 이용하기 위함인지, 황자의 말과 행동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지 않던가. 블레이크는 엘리제의 손목에 감긴 가죽끈의 용도가 뭔지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 당장이라도 놈을 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황자가 그녀에게 온순한 양처럼 굴며 상냥한 마음을 흔들었기에 바로 처단할 수 없었다. 블레이크는 관용을 베푸는 척, 일단은 그를 내보냈다.
어차피 놈의 가면은 벗겨질 것이다. 엘리제의 마음에 한 점의 그림자도 남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해결하면 그만이다.
지금 중요한 건 엘리제였다. 놈의 간교함에 속아서 뱀의 아가리에 고개를 들이민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진실을 알려 줘야 했다.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건 싫지만, 그러지 않으면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엘리제는 제게 뻗어온 그의 손을 의심 없이 잡고선 뺨을 비볐다.
“당신이 찾으러 와줄 줄 알았어요.”
블레이크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슈미즈 드레스는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핑크빛 유두의 윤곽이 도드라진 거로 보아 드레스 안에 입은 건 고작 밀부를 가린 속옷 한 장뿐인 듯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네. 황자님이 친절히 대해 주셔서.”
친절히.
블레이크는 낮게 웃었다. 사납기까지 한 그의 웃음소리에 엘리제의 연보랏빛 눈이 동그래졌다. 무릎을 침대에 올리며 그가 그녀의 손목을 쥐어 들어 올렸다.
“엘리제. 손목의 이것이 뭔지 압니까?”
엘리제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렀다.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답을 내놓았다.
“손목… 보호대인가요?”
“아니요. 이건 수갑입니다.”
“수갑이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손목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블레이크가 손을 뻗었다. 설렁줄 곁에 달린 자줏빛 줄을 당기자 촤르륵, 소리를 내며 천장에서 은빛 사슬 한 가닥이 드리워졌다.
“이렇게 쓰는 겁니다.”
블레이크가 그녀의 양쪽 손목을 끌어 사슬에 가져다 댔다. 줄이 생각보다 짧아, 엘리제는 양팔을 위로 쭉 뻗고도 엉덩이까지 살짝 들어야 했다.
철컥.
“어….”
사슬에 철썩 달라붙은 가죽끈은 힘주어 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
“착용자의 마나를 억제하는 용도의 수갑이지만, 이런 식으로도 종종 사용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 혹은 기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지요.”
“그…렇군요.”
“침대에 이게 설치된 이유를 알겠습니까?”
“…….”
엘리제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제 손목에 이런 것을 채워 놓은 황자의 의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슬 끝에 양 손목이 결박된 채 침대 중앙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가련해 보이면서도 가학심을 자극했다.
엘리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블레이크가 다정히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모르겠다면 내가 알려 줄게요.”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간 그의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거쳐 가슴골에 닿았다. 리본을 당겨 풀고, 가슴부터 배꼽까지 이어진 매듭을 하나씩 하나씩 느슨하게 만들었다. 살갗에 닿는 그의 손길에 엘리제의 몸이 작게 움찔댔다.
“이런 옷은, 누가 입혀 주었습니까?”
그녀의 하얀 살결이 드러날수록 그는 이를 꽉 물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을 그대로 바라보며 황홀해했을 에릭 러셀을 생각하자 분이 치밀었다.
“모, 모르겠어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이미….”
“그렇습니까.”
그녀의 말에 답하는 블레이크의 목소리는 거칠고 탁했다. 훤히 드러난 봉긋한 가슴의 윤곽을 손끝으로 덧그리던 그가 돌연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흐윽.”
우악스러운 그의 손길에 그녀가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블레이크….”
“미안합니다. 아팠습니까.”
여린 살결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안쓰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자 향긋한 살내가 훅 끼쳐 왔다.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상처를 핥는 개처럼 제가 아프게 한 그녀의 살결을 핥았다. 꼿꼿하게 선 정점이 그의 혀에 눌려 이지러졌다가 톡,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으읏….”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이 그녀의 살에서 나는 내음만큼이나 달콤했다. 깨물면 어떨까. 더욱 달콤하게 신음할까.
잇자국이 날 만큼 한껏 베어 물고 싶지만, 그랬다간 그녀가 아파할 것이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당할 뻔한 일을 알게 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욕심을 앞세워 다치게 할 순 없었다. 블레이크는 흐릿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았다.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엘리제를 바라봤다. 그녀의 뺨은 발갛게 익어 있었다. 호흡 또한 흐트러져, 벌어진 입술에서 단 숨이 흘렀다.
“이쯤에서 멈췄을 리가 없지요.”
엘리제의 이러한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누구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부욱.
거추장스러운 치맛단을 잡아 찢자 드레스만큼이나 하얀 레이스 속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레이크는 그마저도 찢어 버렸다. 황자가 입혀 둔 것이라면 무엇 하나 그녀 몸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드레스를 앞에 두고 오늘을 상상하며 수음이라도 했을지 알게 뭔가. 어쩌면 정액이 튀어도 티 나지 않게 하얀 옷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브, 블레이크…? 지금 뭘….”
무릎 아래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며 양쪽으로 벌리자 수줍은 꽃잎이 훤히 드러났다.
“말했지 않습니까. 수갑의 용도를 알려 주겠다고.”
그녀의 허벅지 안쪽 살을 입술로 쓸며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침내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꽃잎 사이 갈라진 틈을 길게 핥아 올렸다.
“읏…!”
엘리제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매여 있으니 도망갈 수 없지요.”
혀를 내어 꿀이 맺힌 구멍을 빨고, 쑤셨다.
“아앙, 앗….”
벗느니만 못하게 찢긴 순백의 드레스가 사로잡힌 나비의 날개처럼 애처롭게 흔들렸다.
“사내들의 욕망이란 이토록 저열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그랬다.
프로이젠 대공성, 그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심처에 지금처럼 그녀를 속박하여 두고 홀로 감상하며 탐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그의 달뜬 숨이 그녀의 아래를 데웠다.
“으읏, 응…!”
왈칵 흐른 말간 액이 그의 입가를 적셨다. 고개를 젖히고 숨을 헐떡이는 엘리제를 탐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는 그녀의 밀부를 핥고 빨았다.
“제발, 그만….”
“그만두라니요. 이제 시작인 것을.”
그의 눈매가 휘어졌다. 그녀가 애원할수록 그는 엘리제의 다리를 더욱 활짝 벌리고 질척대는 소리가 나도록 혀를 휘저었다.
“모두 경험해 보아야 두 번 다시 당할 일이 없지요.”
또 한번 찾아온 절정에 엘리제가 몸부림칠 때에서야 그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입술을 뗐다.
“그렇지 않습니까, 엘리제.”
그녀가 흘린 액으로 번들거리는 입가를 혀로 훔치며 엘리제의 젖은 눈가를 다정히 어루만졌다.
“구애를 거절하면 그냥 놓아주리라 생각했습니까? 이런 것을 채워 두고도?”
줄에 매인 손목을 한 손으로 감싸 쥔 그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촉,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눌렀다가 뗀 후 붉게 부풀어 있는 그녀의 입술을 느릿하게 핥았다. 다른 사내의 타액을 제 것으로 지우려는 듯, 힘주어 덧그렸다.
“어디까지 허락할 생각이었습니까.”
그러는 사이 그의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젖어서 미끌미끌한 꽃잎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구멍을 더듬어 찾았다.
“가여운 황자에게 이 정도는 허락했을까요.”
입구를 지분대던 중지를 구멍에 쑤욱 밀어 넣었다. 놀라 벌어진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킬 듯 머금으며 혀를 옭아맸다.
“흡…!”
축축하고 뜨거운 속살이 그의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그대로 녹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내벽을 더듬고 문지르며 그는 마치 그녀를 범하듯 깊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곧장 한 개를 늘려 휘젓다가 다시 또 한 개를 늘렸다. 손가락 세 개가 그녀의 안을 빠르게 들락날락하며 쑤셔댔다.
평소보다 난폭한 욕망이었으나 이미 그의 이성은 제 상태를 깨닫지 못할 만큼 흐릿해져 있었다.
질척이는 소리가 음탕했다.
쩔그럭 절컥.
그녀가 몸을 비틀 때마다 사슬이 흔들려 낯선 소음을 일으켰다.
“흐윽!”
쾌감이 극에 달하자 그녀의 몸이 빳빳이 경직됐다. 그가 입술을 떼자 모자란 숨을 다급히 들이마신다.
그녀가 진정되길 가만히 기다리던 그가 아래에서 천천히 손을 빼냈다. 손을 타고 흘러내린 액이 후두둑 떨어져 시트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