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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쿤은 대체 왜 원래대로 돌아오질 못하는 걸까요?”



“음…. 잠시 이리 줘보겠니?”







엘리제는 비둘기를 받아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과거 메리가 했던 말에 의하면, 본래 개발부 소속인 쿤은 자신이 만든 아이템의 성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조사관 파견을 요청했다. 분명 몸 어딘가에 엘리제의 반지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건가?”



“뭐가요?”







메리가 엘리제의 시선을 좇아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여기, 얘 발톱에 금색 링 같은 게 끼워져 있잖아.”



“어? 그러네요?”







그들의 추측이 맞는 듯 비둘기가 구구,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작동시켜야 한다는 건데.”







링을 톡톡 두드려도 보고 돌려도 보며 이 방법 저 방법 써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제의 반지처럼 소유권을 가진 이에게만 반응하는 아이템인 듯했다.







“으음. 할 수 없네. 조금 힘들더라도 참을 수 있지, 쿤?”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 말에 비둘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엘리제는 비둘기의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부리가 발톱에 닿도록 머리를 콱 눌렀다.







“쾍!”







괴로운지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며 버둥거렸지만, 엘리제는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힘주어 눌렀다.







루카스와 메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동물 학대처럼 보이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저러다 목 부러지는 건 아니겠죠?”



“즉사만 아니면 살릴 수 있다.”



“아하.”







기어코 비둘기의 부리가 발톱의 링에 닿았다. 뭐라도 걸리길 바라며 엘리제는 비둘기의 부리를 링에 대고 아무렇게나 비비고 눌러댔다. 다행히 그 괴로운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펑, 소리와 함께 비둘기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담이라도 걸렸는지 쪼그리고 앉아 목덜미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청년에게 루카스가 다가갔다.







“이봐, 괜찮은가?”







머리에 루카스의 손이 닿는 순간 온화한 하얀빛이 쿤의 몸을 물들였다.







“오.”







엘리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하늘을 날 때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손에서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루카스가 새삼 달리 보였다.







빛이 사그라지자 쿤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엘리제는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쿤의 목을 부러뜨릴 뻔하긴 했으나 루카스보다는 떳떳했다. 저 윗세계 요원은 쿤이 그렇게나 창문을 두드려대도 본체만체하다가 덫을 놔 꼬치구이로 만들 뻔하지 않았나.







쿤은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대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환상 컨트롤타워의 조사관 쿤입니다.”







눈 밑에 작은 점이 있는 중간지대의 조사관은 메리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어쩌다 곤경에 처하게 된 건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고.”



“처음 해보는 거라 실수해 버렸어요.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알았으니 이제는 이럴 일 없을 거예요.”







엘리제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쿤이 황급히 답했다.







“부디 그러길 바라.”







또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최소한 스스로 반지를 두드릴 수 있는 동물로 변신해야 할 것이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쿤!”







반갑게 껴안으려 하는 메리를 쿤이 밀어냈다.







“떨어져, 멍청이.”







물론 메리는 밀려나지 않았다. 그 무지막지한 힘으로 쿤을 껴안고선 비비적댔다.







“에이, 못 알아봐서 삐진 거야?”



“삐지긴 누가! 너랑 어울리니까 바보병이 옮았잖아.”







나름 똑똑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생각 없이 비둘기로 변해 고초를 겪은 걸 보면 메리 못지않게 어리바리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평가가 그 수준이라는 걸 알면 엄청 충격받겠지.’







엘리제는 굳이 내색하지 않으며 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쿤. 나는 임시 조사관으로 파견된 엘리제야. 이쪽은 윗세계 요원 루카스고.”



“안녕하세요, 엘리제 님, 루카스 님.”







그의 인사에 루카스도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필립이 결국 엘리제 님 영입에 성공했나 보군요.”



“응! 정말 다행이지. 나도 엘리제 님이 구해 주셨어.”







쿤의 말에 메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날 아는구나. 신기하네.”







엘리제의 말에 쿤이 당연하단 듯 말했다.







“중간지대에 엘리제 님 팬이 얼마나 많은데요. 메리만 해도 그렇고요. 얼마나 대단한 배우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대단한 배우라 칭찬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엘리제는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본래 요원님은 프로이젠 대공에게 빙의하기로 되어 있지 않으셨어요?”







자신을 향한 쿤의 질문에 루카스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사고가 있었다.”



“사고요?”







의도치 않게 남자 주인공의 몸을 차지하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루카스는 엘리제에게 연기수업을 받기로 했다는 것 역시 쿤과 메리에게 말해 주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대신 그녀가 받기로 한 대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나도 이런 경우는 겪어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럼 <타락한 연인>의 남자 주인공은 어디로 간 걸까요? 혹시 알아내셨나요?”







쿤의 말에 엘리제가 되물었다.







“사라졌을 가능성은 없어? 우리가 차지한 몸의 설정값이 대체되었듯이.”



“조연은 상관없지만, 주인공은 달라요. 그들은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이 세계 자체예요. 없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질 않죠. 요원님이 빙의하기 전에 분명 다른 몸에 옮겨 갔을 거예요.”







루카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날 프로이젠 성에 있던 이들 중 하나일 테지.”







엘리제는 그가 블레이크를 의심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혹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쿤의 행방을 수소문하지 않았던가. 물을 것이 아주 많았다.







“저기, 쿤.”



“네, 엘리제 님.”



“내게 필립에게 받은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혹시 이것도 네가 개발한 거야?”







엘리제는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겉모양만 봐서는 알 수가 없어요. 아이템의 일련번호를 확인해 주시겠어요?”



“그건 어떻게 확인하면 돼?”



“반지를 활성화한 후 첫 화면 하단 오른쪽을 보시면 네 자리 숫자로 된 일련번호가 있을 거예요.”







그녀는 쿤이 시키는 대로 패널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하여 숫자를 확인했다.







“1001?”



“앗, 천 번대의 아이템이군요. 그럼 제가 속한 개발팀 아이템은 아니네요. 그건 아마 필립이 소유하던 걸 거예요.”







엘리제는 실망했다.







“그러면 넌 이 아이템에 대해 잘 모르겠구나.”



“그래도 궁금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시제품 테스트는 타 부서도 참여하니까요.”



“그래?”







메리와 쿤에게 어느 정도 정보까지 공유해야 할지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뭐, 내가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갑자기 회수하거나 하진 않겠지.’







조사관 역할은 처음이라는 쿤에게 딱히 그런 권한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엘리제는 ‘지도’ 탭으로 들어가 화면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럼 있잖아, 여기 지도에 표시되는 이 점들 말이야. 색깔이 다 다른데, 혹시 의미를 아니?”







쿤은 지도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다행히 잘 알고 있는 듯, 하나씩 짚어 가며 설명해 주었다.







“여기 이 노란색 점은 중간지대 조사관을 의미하고, 초록색 점은 윗세계 요원을 의미해요.”







메리와 루카스도 은근슬쩍 그녀의 등 뒤로 와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파란색 점은 조연, 검은색 점은 엑스트라?”



“맞아요! 잘 아시네요.”



“그러면, 회색 점은 뭔데?”



“회색 점이요?”







엘리제는 응접실 밖, 복도가 나오도록 지도를 드래그했다.







“보이지? 문 앞에도 한 명 있잖아.”







그녀의 말에 다들 반사적으로 응접실 문을 바라봤다. 엘리제는 살짝 긴장한 채 물었다.







“혹시… 악마를 뜻하는 거야?”







회색 점이 악마라면 럭스 러셀과 블레이크를 포함하여 셋이나 있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마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아요. 윗세계 분들은 협력 관계라서 파악이 되는 거거든요. 고작 이런 아이템 하나로 악마를 찾아낼 수는 없죠.”



“맞는 말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일이 훨씬 수월했겠지.”







루카스의 수긍에 엘리제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뭔데?”



“회색 점은 원작과 캐릭터 설정값이 달라진 이들을 표시해요. 그중에서도 저희 쪽 시스템에 사전 등록되지 않은 신원 불명의 존재들이죠. 만약 요원님의 정보가 저희 쪽 시스템에 미리 등록돼 있지 않았더라면, 요원님 역시 회색 점으로 표시됐을 거예요.”







쿤의 말에 의하면 악마인 렉스 러셀이나 제3의 빙의자들 모두 회색 점으로 표시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엘리제는 안도했다. 아직 블레이크나 바트의 정체가 확실히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일단 최악은 피한 셈이었다.







루카스는 미간을 찡그린 채 연신 응접실 문을 힐끔거렸다.







“엘리제, 혹시 저 문밖의 기사에 대해서 알아낸 바가 있나?”







루카스의 질문에 엘리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없어요. 빙의 6일 차에 저 기사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어쩌면 실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죽을 뻔했다고?”



“네. 저 기사가 대련 중에 상대의 검날을 부러뜨렸거든요. 부러진 검날이 제 얼굴 쪽으로 날아와서 정말 위험했어요.”



“그걸 어떻게 피했지?”



“메리 덕분에요. 날아오는 검날을 턱 하니 잡아서 바로 우그러뜨리더라고요.”







루카스의 경악한 시선에 메리가 쑥스러워하며 헤헷, 웃었다.







“대단하군.”



“뭘요.”







그의 순수한 감탄에 기가 찬 건 엘리제 혼자였다. 그녀의 예상대로 메리와 루카스는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실수든 아니든, 회색 점의 기사는 주요한 위험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군.”



“그러게요.”



“그럼, 엘리제.”







엘리제에게로 시선을 돌린 루카스가 그녀의 연보랏빛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문밖의 기사 외에 회색 점으로 표시된 이가 또 있었나?”







그의 질문을 들은 순간 엘리제는 멈칫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나왔어야 할 답이, 목에 걸려 한번에 뱉어지지 않았다. 그런 저 스스로가 당혹스러웠다.







“…블레이크요.”







결국, 약간의 머뭇거림이 대답 속에 섞이고 말았다. 어차피 그가 의심을 받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확증하는 기분이 몹시도 별로였다.







“그래. 역시나 그렇군.”







루카스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