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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다가온 블레이크가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이러고 있습니까.”







엘리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무릎을 꿇고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 난 것은 ‘용서해주세요’였다. 어리고 힘없던 시절, 엘리제는 조금이라도 적게 맞기 위해 허구한 날 무릎 꿇고 손을 비볐다.







‘하지만 지금 상황과는 좀…. 안 맞지 않나?’







블레이크가 딱히 그런 걸 좋아할 만한 남자 같지도 않았다. 다른 걸 떠올려야 했다.







‘그래, 그게 있었지!’







드디어 그럴듯한 걸 떠올린 엘리제가 냉큼 입을 열어 대답했다.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기도…?”







신이 있는 것도 알고, 들키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니 거짓은 아니지 않을까. 엘리제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이 무사히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날 위해서 말입니까.”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그는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엘리제를 침대에 앉히고서, 그새 빨개진 그녀의 무릎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고 엘리제는 말을 잘못 했나 생각했다.







‘혹시 무신론자인가?’







그럴 수도 있다. 환상에 불과하다지만 신전에서 그런 야한 짓을 벌일 정도면.







그래도 일단 신실한 척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설정에 충실해야 한다. 엘리제는 기쁜 얼굴로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신께서 기도를 이뤄 주셨네요.”







들키지 않고 무사히 지나갔으니 이뤄진 게 맞다. 생각해 보면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엘리제의 입맞춤에 블레이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엘리제….”







그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블레이크와는 좀 더 오랫동안, 지금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와의 관계가 원만해야 운신이 편해지기도 하거니와 엘리제는 블레이크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가 만나 본 그 어떠한 남자보다 근사하며 다정했다.







‘이런 남자를 마다할 여자가 어딨어.’







보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이 나는 남자였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예요?”



“…아닙니다.”







한마디 겨우 내뱉고 나서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새파란 눈동자를 반쯤 가린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엘리제.”







그는 늦지 않았다. 세 시간쯤 걸릴 거라고 루카스가 말했던 걸 생각하면 그는 매우 빨리 돌아왔다. 최선을 다해 서둘렀을 것이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러한 노고를 알아 달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기다리게 했음에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돌아와 주었으면 된 거죠.”







엘리제는 그에게 살며시 몸을 기댔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엘리제는 기분이 좋았다.







원 없이 디저트를 먹어 배가 부를 때의 나른함과도 비슷했다. 이대로 그와 몸을 맞댄 채 잠이 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블레이크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엘리제는 걸핏하면 바짝 힘이 들어가 버리는 그의 그곳을 힐끔 쳐다봤다. 역시나 불룩해져서는 매우 불편해 보였다.







‘하긴 나도 마찬가진가?’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몸도 빠르게 달아올랐다.







렉스와도 그렇고 루카스와도 그렇고 사고라 할 만한 일들이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엘리제는 블레이크를 생각했다. 그라면 만족하고도 남을 만큼 저를 즐겁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보낼 밤을, 이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그렇…군요. 어서 씻고 오겠습니다.”



“어, 아까 씻지 않았나요?”



“흙먼지를 뒤집어썼습니다. 더러운 손으로 부인을 만질 순 없습니다.”







엘리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하는 그를 졸졸 따라갔다. 욕조에 물이 차오르는 동안 그의 탈의를 도와주었다.







재킷을 젖히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자, 답답하게 갇혀 있던 건장한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치며 닿는 그의 단단한 가슴은 델 듯 뜨거웠다. 그녀를 향한 시선 또한 그러했다. 엘리제는 부러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닿는 순간 옷이고 뭐고 다 찢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의 옷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씻고 나오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몸을 돌리려는 그녀를 그가 붙잡았다. 예상했던 바이기에 엘리제는 놀라지 않았다.







“가지 말아요.”







돌아보는 엘리제를 안고서 그가 속삭였다.







“떨어지기 싫습니다.”







블레이크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그녀가 그의 허리에 살며시 팔을 둘렀다. 허락의 뜻이 담긴 몸짓에 블레이크의 얼굴이 환해졌다.







엘리제를 한 팔로 가뿐히 안아 든 그가 욕조 안으로 들어가 텀벙, 몸을 담갔다. 넓은 욕조에 차오른 물이 출렁이며 아직 벗지 않은 엘리제의 속옷을 적셨다.







몸을 타고 오르는 수증기에 젖어 드는 그녀의 입술을 그가 다정히 머금었다. 촉, 하는 간지러운 소리가 나도록 몇 번이나 그렇게 입을 맞췄다.







그가 그녀의 양쪽 골반 어름에 매인 매듭 끈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동동 떠오른 검은 레이스 속옷을 그가 움켜쥐었다. 그녀의 밀부를 가렸던 자그마한 천은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가해도 망가져 버릴 것 같은 그것을 욕조 밖에 내려놓고, 그는 그녀의 가슴을 가린 속옷도 조심스럽게 벗겨 냈다.







속옷이 아무리 예쁘고 야한들 그녀의 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엘리제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느 한구석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블레이크는 홀린 듯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녀에게 더욱 깊이 입을 맞추고, 물 안보다 따뜻한 그녀의 속살을 핥았다.







“으응….”







따뜻한 숨결을 흘리며 그녀가 그의 혀에 제 것을 비볐다. 향긋하고 달콤한 그녀의 타액이 목구멍을 타고 꿀꺽, 넘어왔다. 그저 입맞춤에 불과하건만 아찔하도록 야릇한 기분이 치밀었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 더듬었다. 물과는 다른 미끌미끌한 액이 손가락 끝에 만져졌다. 밀액이 흘러나오는 곳에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단번에 밀어 넣었다.







“흐읏…!”







엘리제가 움찔 몸을 떨며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물어뜯듯 조여대면서도 그녀의 몸은 그의 것을 끝까지 집어삼켰다.







참기 힘든 충동이 일어 그는 손가락을 빼냈다가 쑤욱 밀어 넣길 반복했다. 손목을 돌려 안쪽을 넓히며 내벽을 긁었다.







그녀의 안쪽이 충분히 풀어졌을 때, 검지와 중지를 벌리자 뜨끈한 물이 벌어진 구멍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블레이크…!”







그녀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 그거 이상해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는 손목에 그녀의 손을 매단 채 천천히 그녀의 안을 쑤셨다. 입구가 뻐끔거리며 열릴 때마다 그녀의 몸이 튀어 올랐다. 질 안으로 뜨끈한 물이 흘러드는 감각이 생경한 탓이었다.







“물이, 자꾸만 들어와서….”







그러는 중에도 손가락을 구부려 그녀의 예민한 곳을 누르고 비벼대자 미끄러운 애액이 왈칵대며 흘러나와 그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그렇군요. 그럼 불편하지 않게 내가 막아 줄게요.”







다정하게 속삭이고선 그가 제 손을 빼냈다. 직후, 몇 배는 굵은 것이 그녀의 속살을 가르며 버겁게 파고들었다.







“흐윽…!”







엘리제가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를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히 아껴 주고 싶으면서도 이럴 때 드는 충동은 몹시도 난폭했다. 그녀가 그의 것을 품고서 울며 매달리면, 영혼을 관통하는 전율이 일었다.







그는 루카스에게 과시하기 위해 어젯밤 그녀의 몸에 남긴 붉은 자국들을 입술로 더듬어 빨아댔다. 이를 세워 자근대다 상처를 핥는 개처럼 부드럽게 핥아댔다. 그녀의 목덜미와 어깨, 젖가슴에 더욱 짙은 흔적을 덧씌웠다.







“하아….”







긴 한숨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엘리제….”







그는 만족을 모르고 그녀를 몰아붙였다. 블레이크가 거세게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그의 목을 안은 엘리제의 팔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깊은 곳을 쿵쿵 찧어대는 그의 난폭한 허리짓에 엘리제의 몸이 움찔대며 굳어졌다. 첫 삽입 때부터 이미 뜨겁고 축축해져 있던 그녀의 안이 그의 것을 물고 수축했다.







그의 허리 양옆으로 벌어진 엘리제의 가느다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가쁘게 내쉬는 숨에 흐느낌이 섞였다.







“읏, 으응…!”







절정의 쾌감에 몸을 떠는 그녀는 참을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는 제 것에 달라붙어 조여대는 그녀의 부드러운 속살을 멋대로 휘저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를 옭아매고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빠르게 뛰는 그녀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그, 그만…. 블레이크.”







끝나지 않는 절정, 그 지독한 쾌감에 엘리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힘듭니까?”







블레이크의 질문에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처롭게 젖어 든 그녀의 연보랏빛 눈동자가 그를 옭아맸다.







갈증이, 갈망이, 욕망이 치밀어 머릿속을 검게 물들였다.







그녀의 타액을 빼앗아 마시고 젖은 샘을 들쑤셔야 해소될 갈증이었다. 한참은 더 그녀를 차지하고 흔적을 새겨야만 채워질 갈망이었다. 울며 몸부림쳐도 기어코 붙잡아 제 안에 가두고 영원히 홀로 탐해야만 비로소 사라질 욕망이었다.







엘리제의 엉덩이를 받친 채 그가 몸을 일으켰다. 물이 두 사람의 몸에서 촤르륵, 쏟아졌다.







“앗! 블레이크…!”







깜짝 놀라 엉겨 붙는 그녀를 그는 더없이 소중히 끌어안았다. 그녀를 안은 채, 욕조를 벗어나 욕실을 나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카펫을 가로질러 침대로 향했다.







겹친 몸 그대로 침대에 오르자, 매달려 있던 그녀가 안도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히 넘겨 주었다. 천천히 몸을 물려 입구에 귀두가 걸릴 때까지 빼내고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제, 내가 좋다고 그랬지요.”







환상 호수에서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때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엘리제의 목덜미 아래 손을 넣으며 그가 혀를 내어 그녀의 붉은 입술을 핥았다. 거의 동시에 그의 것이 푸욱, 박혀 들었다. 한껏 긴장을 풀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 다시금 그에게 안겨 왔다.







“나도 그렇습니다.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