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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 저것도 다 지어낸 표정일 게 빤했다. 악마가 그리 멍청하게 남에게 휘둘릴 존재던가. 마치 제가 당한 것처럼 저러고 있어도 이 모든 게 계획된 변수에 속할 것이다.
‘저놈은 저렇게 몸으로 어필해서 내게 뭘 얻어내려 하는 거지.’
엘리제는 그의 속셈이 궁금했다. 그가 제안한 내기보다도 오히려 이쪽이 그녀의 신상엔 더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데?”
그의 바지는 앞쪽이 둥그렇게 젖어 있었다.
“해 줄 거야?”
“일단 말해 봐.”
신이 난 렉스는 빠르게 옷을 벗어 던졌다. 엘리제는 그가 알몸이 되어 소파에 드러눕는 걸 조용히 지켜보았다.
작중 나이로 스물하나. 이제 막 청년이 된 황태자는 머리카락 색이나 눈 색을 제외하면 대본 속 인물 묘사와 비슷했다.
흰 피부에 살짝 마른 체격, 체모가 옅고 유두는 핑크빛이 돌았다. 남녀노소 불문,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만큼 몹시도 야한 몸이었다. 살짝 휜 채 바짝 올라붙어 있는 페니스만이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흉흉했다.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치고 소파에 누워 있는 자태가 요염했다.
엘리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서 물었다.
“혹시 말인데 당신, 날 꼬셔 볼 생각인 건 아니지?”
붉어진 눈매로 그녀를 올려다보던 렉스의 금안이 순간 흔들리는 걸, 엘리제는 놓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그거야말로 엘리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대체 저러는 이유가 뭘까.
“하긴, 날 꼬신다고 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맞아.”
“그래서 나보고 뭘 해 달라는 거야? 구경이나 하면 되는 건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그가 그녀의 발을 가리켰다.
“내 것 좀 밟아 줘.”
“…….”
잠시간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엘리제가 홱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 변태 새끼.”
“잠깐! 왜 가는 거야, 엘리제!”
요염한 자태를 포기하고 후다닥 소파에서 내려온 그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내가 뭐 그렇게 무리한 걸 요구했다고!”
“징그러워, 이 악마 놈!”
“취향을 존중할 줄 알아야 진정한 파트너지!”
“응, 그러니까 꼭 너 같은 파트너 구하세요.”
“엘리제, 그러지 말고. 한번 밟아 보면 너도 생각이 달라질 거야. 의외로 네 가짜 남편 취향이 이런 걸 줄 어떻게 알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 악마를 엘리제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못 참겠단 말이야.”
거짓이 아니라, 배에 바짝 올라붙은 그의 성기에서 말간 액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이놈은 그냥 변태인 건가?’
엘리제는 하마터면 그렇게 믿고 넘길 뻔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악마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밟아 주면. 뭐 줄 건데?”
“뭘 원하는데?”
그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에 엘리제는 전혀 그가 기대하지 않을 만한 것을 골라 말했다.
“마법 가르쳐 줘.”
순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가 눈을 끔뻑였다.
“마법이 네게 왜 필요해?”
“재밌을 것 같단 말이야. 현실엔 없잖아.”
검술과 마법 모두 배워 볼 생각인 그녀이기에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아는 마법사는 렉스뿐이었다.
‘잘하면 악마의 권능에 대해 알아낼 수도 있겠지.’
엘리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흔쾌히 답했다.
“좋아. 가르쳐 줄게. 한 주에 한 번 입궁해. 핑계는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았어.”
그 역시도 엘리제를 주기적으로 만날 기회를 얻는 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꿍꿍이가 뭐든지 간에.
“눕든지 앉든지 마음대로 해.”
엘리제가 턱짓하며 말하자 그는 신이 나서 소파에 도로 누웠다. 구두를 벗으며 그녀가 물었다.
“맨발이 좋아 이대로가 좋아?”
“둘 다 좋아!”
“그럼 그냥 해줄게.”
소파 옆에 붙어 선 엘리제가 드레스를 살짝 걷어 올리며 한쪽 다리를 들었다.
“헉, 너 가터벨트!”
“이 정도는 기본이지.”
어깨를 으쓱이며 엘리제는 그의 페니스 위에 발을 올려놨다. 단단하고 굵은 기둥이 그녀의 발바닥 곡선을 따라 밀착됐다.
“크흡, 하아….”
부르르 몸을 떠는 그의 상기된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엘리제는 페니스를 누른 발에 조금씩 무게를 가했다. 지그시 누르며 쓰다듬듯 뿌리부터 귀두까지 밀어 올리자 사정이라도 하는 양 말간 액이 튀었다.
“너무 좋아.”
물고기처럼 파닥대는 게 재미있어, 엘리제는 그의 것을 밟는 데 점점 더 몰입했다. 그가 손을 뻗어 허벅지 안쪽을 어루만졌지만, 그녀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흐으, 엘리제….”
발아래에서 헐떡대는 남자의 몸은 예쁘고 음란했다. 힘주어 누르면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신음을 내질렀고, 부드럽게 문질러 주면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안달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녀도 덩달아 흥분이 됐다. 허벅지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놈이 블레이크였으면, 확 덮치는데.’
그녀는 렉스의 모습에 블레이크를 겹쳐 보았다. 그 커다랗고 강인한 남자가 이렇게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신음하고 허리를 흔들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 버리지 않을까. 잠깐의 상상에 속옷이 젖어 들었다.
미약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밟아 주는 게 마음에 들어서인지, 오래지 않아 그는 파정했다. 뻣뻣하게 몸을 경직시킨 채 페니스에서 하얀 탁액을 뿜어대는 모습을 엘리제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 최고야.”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만족했으면 다행이고.”
엘리제가 그의 배 위에서 발을 내리고 구두를 신기 위해 돌아섰을 때였다.
갑작스레 그가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으며 소파 위로 넘어뜨렸다.
“윽! 뭐 하는 거야!”
그녀의 짜증 섞인 외침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허겁지겁 그녀의 드레스를 엉덩이 위까지 걷어 올렸다.
“당신! 미쳤어?”
손바닥만 한 레이스 팬티가 우악스럽게 뜯겨 나갔다. 그가 그녀의 밀부에 얼굴을 묻었다.
“잠깐!”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발버둥 쳤으나, 양 허벅지를 움켜쥔 그의 악력을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는 마치 발정난 짐승 같았다.
엘리제의 음부에 얼굴을 묻은 그가 게걸스럽게 그녀의 밀액을 핥아댔다. 꽃잎을 입에 머금어 빨아대며 질구에 혀를 밀어 넣었다.
“읏…!”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온 혀가 힘주어 구멍을 쑤셔대자, 엘리제는 더 이상 반항할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상체가 무너졌다.
그의 혀가 더욱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혀라면 닿는 것이 불가한 곳이었다. 속살을 핥는 껄끄럽고 차가운 것의 감촉에 엘리제는 진저리를 쳤다. 가느다란 뱀이 질 안으로 들어와 꿈틀대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번졌다. 멋대로 흥분한 몸이 왈칵 애액을 쏟았다. 그녀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그는 츱, 츱, 소리를 내며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추삽질에 가깝게 들쑤시며 안을 휘젓는 그의 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그녀는 절정에 다다랐다.
“흐윽!”
그녀가 경련하듯 몸을 떨어대는 와중에도 그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단단히 붙잡은 채 더욱 그녀의 다리를 벌리려 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가 이대로 멈추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저 흉흉한 성기를 쑤셔 박을 게 분명했다.
“그만해!”
엘리제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를 걷어찼다.
“억!”
어디를 어떻게 얻어맞았는지, 그가 드디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후다닥 소파에서 내려와 옷차림을 정돈한 엘리제는 구두를 집어 들고 마구잡이로 그를 후려쳤다.
“이 악마 놈이! 미친 거야, 뭐야!”
필립에게 듣기로 악마는 합의된 행위만을 통해 욕망을 채운다. 그렇기에 엘리제는 여태껏 겁 없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렉스가 저지른 일은 그런 악마들의 규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짓이었다. 실수한 걸 알긴 아는지 윽윽, 소리를 내면서도 그는 몸을 움츠린 채 얌전히 그녀에게 얻어맞기만 했다.
체력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때리고 나서야 엘리제는 씩씩대며 구두를 내려놨다. 그제야 그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금색 동공이 와르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미, 미안해.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면 다야? 계약이고 뭐고 다 무효야!”
엘리제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구두 두 짝을 던져 버리고선 홱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후다닥 달려와 그녀의 앞을 막아선 렉스가 싹싹 빌며 말했다.
“엘리제, 내가 잘못했어. 그런데 이건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 하지 마.”
“진짜야. 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네 체액에서 빌어먹게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엘리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여전히 몹시도 괘씸했지만, 한편으론 궁금했다. 달콤한 냄새라는 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핥아 먹었다고?”
“그래. 악마는 욕구에 충실한 족속이야. 이해 좀 해주라.”
엘리제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이런 일이 언제든 또 있을 수 있다는 거네.”
“아니라곤 못 하겠어.”
“…….”
힐끔거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제 손목에 끼고 있던 팔찌를 빼서 그녀에게 건넸다.
“사과하는 의미에서 이거 줄게.”
“팔찌는 왜?”
“평범한 장신구가 아니라 마법 아이템이야. 상대와 접촉해 있는 상태에서 ‘지져!’라고 시동어를 외치면 전격 마법이 발동돼.”
“전기 충격기 같은 건가?”
“비슷해. 호신용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마나 충전식이라, 이 보석이 지금처럼 투명해지면 사용할 수 있어. 아마 하루에 한 번 정도일 거야.”
그가 건넨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엘리제는 왼쪽 손목에 껴 보았다. 투명한 보석이 박힌 가느다란 금색 링은 나름 외관도 괜찮았다.
“나가면 다시 사라지는 거 아니야?”
“소유권 이전 신청을 하면 돼. 원래 황태자에게 귀속된 아이템이거든.”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우리 쪽도 중간지대처럼 나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까.”
“그럼 절차는 당신이 알아서 해. 앞으로 허튼짓 하면 주저 없이 사용할 거야.”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인 엘리제가 악수를 청하듯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아. 이번엔 용서해 줄게. 앞으로 피차 조심하자.”
“응.”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 렉스를 보며 엘리제 역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지져.”
콰지직!
“커헉!”
눈을 까뒤집으며 바들바들 떠는 그를 뒤로하고, 엘리제는 클럽을 가로질러 출구를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