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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천히 허리를 물려 그녀의 안에서 제 것을 빼냈다. 그러곤 희뿌연 액을 머금고 뻐끔거리는 그녀의 입구에 은색 구슬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것이 은밀한 곳을 침범하며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에 엘리제의 몸이 움찔댔다.
“아픕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구슬을 질 안 깊숙이까지 집어넣고서, 그는 막대에 연결된 검은색 가죽끈을 그녀의 골반과 양쪽 다리에 감았다.
“이제 됐습니다.”
블레이크는 철컥, 하는 소음과 함께 그녀의 몸에 고정된 가죽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희고 매끄러운 여체의 가장 은밀한 곳을 휘감은 가죽끈은 마치 뱀처럼 보였다.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안에 뭐가 들어 있으니 이상해요.”
나름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엘리제지만, 이런 종류의 도구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소중한 몸에 혹시 자국이 남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까 봐 줄곧 거부했었다.
“금방 적응될 겁니다.”
엘리제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허벅지를 모았다. 블레이크의 의도대로 구슬은 그녀의 가장 예민한 곳을 누르며 자극했다.
일어나 앉기 위해 무릎을 당기고 엉덩이를 치켜들던 그녀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죽끈이 당겨지며 꽃잎 사이를 누른 탓이었다.
지독히도 음란한 광경에 그는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쁘군요. 정말 잘 어울립니다.”
이대로 다시 그녀를 안고 싶은 욕망이 치밀었다. 루카스고 뭐고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수십 가지 방법으로 그녀를 범하는 상상만이 가득했다.
“블레이크, 저 좀 도와줘요.”
혼자 일어나는 데 실패한 엘리제가 그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바짝 힘이 들어가 말간 액을 질질 흘리는 제 것을 대충 닦아 바지 속에 욱여넣었다.
쉽게 가라앉지 않겠지만 상관없다. 그는 그녀에 대한 제 욕망을 감출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누구 앞에서든.
조심스레 엘리제를 안아 침대 아래로 내려온 블레이크는 그녀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부축해 주었다. 허리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드레스와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어서 가지요.”
“잠시만요. 속옷 좀….”
그녀의 시선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하얀 색 자그마한 천 조각으로 향했다.
“굳이 입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머뭇거리는 엘리제에게 잘라 말했다.
“더 불편하기만 할 것 같군요.”
정작 늦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면서, 블레이크는 어지간히도 그녀를 재촉했다. 덕분에 엘리제는 거울 한번 보지 못하고 방을 나서야 했다.
“으윽. 으….”
엘리제는 도통 제대로 걷질 못했다. 누워 있을 때나 가만히 서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던 구슬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와중에 계단을 내려가는 건 정말로 무리였다. 안 그래도 느린 편이던 엘리제의 걸음이 평소보다 배나 느려진 건 당연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블레이크. 전 그냥 방으로 돌아갈게요.”
계단을 고작 반 층가량 내려왔건만 엘리제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엘리제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블레이크가 그녀의 붉게 상기된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많이 힘듭니까?”
그의 손이 허리에 닿자 엘리제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의도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몸은 그의 모든 손길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몸이 안 좋아도 식사는 거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블레이크는 방으로 돌아가겠다는 엘리제의 청을 무시하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러면 되지 않습니까.”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실려 있었다. 엘리제는 지친 얼굴로 그의 목덜미에 머리를 기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렇습니까.”
“궁에 다녀오신 일이 잘 되었나요?”
“글쎄요. 원하는 만큼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그러고서도 부족했는지 그녀의 눈가와 귓가에 연신 키스를 퍼부었다.
1층 계단 밑에서 서성대며 그들을 기다리던 멜릭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손님은?”
계단을 모두 내려와 만찬실로 향하며 블레이크가 물었다.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행이군.”
이제 그는 완연히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입구에 이르렀을 때 엘리제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제 내려주세요. 걸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 건 예의에 어긋나잖아요.”
“클랜튼 경은 부인의 오라버니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겁니다.”
뭐라 말한들 내려줄 것 같지가 않아서, 엘리제는 그에게 가만히 안겨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만찬실에 들어가자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엘리제는 루카스의 녹안에 사나운 감정이 깃드는 걸 발견했다.
***
루카스에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정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일주일을 꼼짝 않고 기다리라 해도 불평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침묵과 인내.
현실 세계는 물론 윗세계와 중간지대, 지하세계를 통틀어 그만큼 그것에 능한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얌전히 기다린 결과가 영 별로일 땐, 아무리 그라 해도 불쾌감을 느꼈다.
엘리제가 블레이크에게 안겨 만찬실에 들어오는 순간 루카스는 눈치챘다. 블레이크가 왜 직접 그녀를 데리러 갔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오래 걸렸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그녀의 목덜미가 얼룩덜룩했다. 쇄골 어름까지도 그러했다. 드러난 살갗이 그렇다면 속살이 어떨지는 뻔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냄새는….’
감각에 각인돼 익숙해진 그녀의 체향이 남자의 정액 냄새에 뒤덮여 있었다. 오감이 예민한 기사들이라면 얼마든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사이 섹스라도 한 건가.’
루카스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맞은편의 엘리제를 살폈다. 만찬실에 들어온 지 꽤 됐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발그레했다. 눈가가 젖어 있었고 숨소리 또한 평온치 못했다.
지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블레이크는 그녀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일일이 생선살을 발라 그녀의 접시에 올려 주었고 스테이크 역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접시째 그녀 앞에 놔주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고마워요, 블레이크.”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루카스는 포크와 나이프를 쥔 제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손안에 남아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살의 감촉이 영 이상했지만, 그건 단호히 무시했다.
대신에 그는 제 기분이 나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그가 황궁에 남아 악마를 감시하는 대신 블레이크를 쫓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원작에선 보이지 않았던 블레이크의 괴팍한 독점욕이 추후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예측 불가한 변수가 많아질수록 완벽한 임무 완수는 요원해진다.
‘그래. 그래서이다.’
그래서 이토록 기분이 나쁜 것이다.
루카스는 음식을 먹는 척하며 블레이크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저런 종류의 독점욕은 악마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다.’
엘리제가 제 것이라도 되는 양 과시하려 드는 속내가 빤히 읽혔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이라니.’
정액을 묻혀 다른 남자 앞에 데려가는 방식은 너무 짐승 같지 않은가. 블레이크의 행동은 수컷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제 영역, 혹은 암컷에게 마킹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문득 불쾌감이 치밀어 오른 루카스는 자신의 정액이 묻은 엘리제의 손수건을 꺼내 블레이크의 낯짝에 집어 던지는 상상을 하곤 제풀에 깜짝 놀랐다.
‘뭐지? 정신병도 옮는 건가.’
그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곤 악령을 물리칠 때 외우는 기도문을 읊조렸다. 차차 정신이 맑아지며 머릿속을 맴돌던 악한 충동도 사라졌다.
블레이크를 향한 루카스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이 정도로 자신을 뒤흔들 정도면 블레이크는 평범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체를 알아내야만 한다.
“대공께 청이 있습니다.”
루카스와 블레이크의 시선이 맞닿았다.
“청이라. 무엇이오?”
“제게 프로이젠의 검술을 견식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얼마 전 프로이젠을 방문하였을 때, 대공을 향한 기사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대련을 청하는 거요?”
블레이크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루카스의 본래 의도가 어떠하든,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그렇습니다.”
“좋소.”
블레이크는 루카스의 대련 신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감정이 그리 좋지 못한 두 사람이 은연중 피워 내는 기세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때였다.
“와아, 재밌겠네요.”
툭 내뱉는 엘리제의 말에 루카스와 블레이크는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천진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저도 해보고 싶어요.”
“뭐를, 말입니까?”
제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블레이크가 물었다.
“대련이요. 아, 그 전에 검술 먼저 배워야겠지만요.”
루카스 역시 저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검에서 빛 나오는 거.”
엘리제의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예쁘게 휘어졌다.
“저도 배우면 할 수 있는 건가요?”
“엘리제….”
블레이크의 동공이 와르르 흔들렸다.
“꼭, 그걸 배우고 싶습니까.”
“네. 안될까요?”
“아니요. 안 되는 게 아니라 위험할까 봐서….”
블레이크는 뒷말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조심하면 되잖아요.”
계속되는 엘리제의 억지에 루카스가 그녀의 팔목을 가리켰다.
“근육 하나 없는 그런 팔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클랜튼 경,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소.”
“현실적인 충고일 뿐입니다.”
엘리제는 제 팔목을 쳐다봤다. 확실히 근육량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긴 했다.
“열심히 운동하면 될 것 같은데….”
“어느 세월에. 사과나무 씨앗을 땅에 심어 열매 맺히길 기다리는 편이 빠르겠습니다.”
블레이크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엘리제, 검술 말고 다른 걸 배워 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들의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에 엘리제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두 분 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루카스와 블레이크는 입을 다물고 유심히 그녀를 살폈다. 엘리제는 그들이 자신을 쳐다보든 말든 접시에 담긴 사과 파이를 포크로 잘게 조각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이 몹시 시무룩해 보였다.
‘마음이 상한 건가.’
그녀가 그러고 있으니 루카스와 블레이크는 대련에 관한 얘길 더는 이어 나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