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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흰색 제복 차림인 루카스가 그녀 앞까지 걸어왔다.







“왜 이리 늦었지? 한참 기다렸다.”







제도에 오는 것이 늦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테라스 문을 여는 게 늦었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의 표정엔 초조함이 드러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서두른 거예요. 알잖아요?”



“시간이 별로 없다. 해야 할 얘기도 많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엘리제는 그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에게 얻어낼 정보가 많은 만큼 이왕이면 좋은 분위기에서 얘기를 시작하는 편이 나았다.







“내 편지는 받았어요?”



“그래. 일단 클랜튼 후작 부부에 대한 정보는 아는 대로 여기 적어 왔다. 확인해 봐.”







엘리제는 루카스가 품에서 꺼내어 건넨 수첩을 일단 잘 갈무리했다. 루카스와 헤어진 후 천천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클랜튼 후작가의 마부 중 중간지대의 조사관이 있다는 게 정말인가?”



“네. 다른 조사관 하나가 말해준 정보이니 확실해요.”



“클랜튼의 마부라면 한 번씩은 모두 봤을 텐데, 이상하군.”



“구금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엘리제는 메리에게 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았었다. 어째서 <타락한 연인>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조사관과의 연락이 끊겼는지.







“동물로 변해 있을 수도 있어요.”



“동물?”



“네.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아이템을 실험해 보겠다고 <타락한 연인>에 파견 신청을 했다더군요. 실험이 뭔가 잘못됐다면 곤란한 상황에 닥쳐 있을 거예요.”



“그렇군. 알았다. 최선을 다해 찾아보도록 하지.”







역시 선을 대표하는 윗세계의 요원이라서 그런가, 그녀가 이것저것 도움을 청해도 루카스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도와 달라는 그의 청에 대뜸 대가부터 요구했던 그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심지어 생색내거나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러니 악마한테 이기질 못하지.’







속으로 혀를 차며 엘리제는 선심 쓰듯 제가 알고 있는 정보 하나를 그에게 말해 주었다.







“당신 혹시 황태자 렉스 러셀, 그의 정체에 대해 파악했나요?”



“아직까진 그와 접점이 없었다. 다만 원작에서의 이름, 용모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특수한 빙의자에 속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악마예요.”







그녀의 말을 들은 루카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윗세계 요원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가 악마에 대한 감시이니만큼 그에게 있어 매우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확실한 정보인가?”



“네. 확실해요. 본인 입으로 직접 듣기도 했고, 악마가 아니라면 알지 못할 일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공간을 분리하거나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능력도 있더군요.”







엘리제의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번 일도 그들의 목적과 연관이 있는 건가.”







엘리제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블레이크가 다급히 달려간 이유에 대해 루카스 역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을 벌였기에요?”



“알고 있겠지만, 아직 황태자에겐 비는 물론이거니와 약혼자나 공개된 애인도 없다. 한마디로 연회에 그와 함께 참석할 파트너 자리가 공석이란 소리지.”



“그런데요?”



“연회 전일, 기사와 마법사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시합’이 개최되는 걸 알고 있나?”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들어요.”







친목 도모 시합이라니.







갑옷을 입고 창을 든 기사들이 말을 타고 서로에게 돌진해 쾅, 하고 부딪히는 그런 종류의 시합을 말하는 걸까. 엘리제는 중세시대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 본 적 있던 마창 시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종목이 뭔데요?”



“보물찾기.”



“…네?”







그녀의 머릿속, 박진감 넘치는 마창 시합의 광경이 단숨에 귀엽고 아기자기한 보물찾기 광경으로 바뀌었다.







“본래는 특정한 물건을 숨겨 두고 그걸 찾는 이에게 상을 수여했지. 그런데 기존의 방식은 별 재미없다며 황태자가 룰을 바꿨다.”



“어떻게요?”



“귀부인들과 영애들까지 시합에 참여하도록. 그녀들은 각자 두 명의 보호자를 지목한 후 그들의 도움을 받아 시합에 참여하게 된다.”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표정을 읽은 루카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바로 그 귀부인들과 영애들이 술래가 차지해야 할 ‘보물’이야.”



“사람이 시합의 부상이라고요?”



“그래. 술래에게 붙잡힌 쪽은 잡은 쪽의 파트너로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게 이번 보물찾기의 룰이다.”



“아….”







엘리제는 어째서 블레이크가 안절부절못했는지 이해했다. 결혼 후 처음 참석하는 부부 동반 연회였다. 그런데 바로 그 첫 연회 참석부터 자칫 서로 다른 파트너와 함께 입장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블레이크가 입궁한 이유는 아마도 엘리제를 시합에서 제외하는 것을 청하기 위함이 아닐까.







“흐음….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무엇이 말이지?”



“어차피 렉스가 무슨 꿍꿍이를 가졌다 한들 고작 연회의 파트너를 정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진 않아서요.”







물론 블레이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딱히 그녀의 임무에 지장을 줄 만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합을 구실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 내겐 나쁘지 않아.’







운 좋게 환상 컨트롤타워의 조사관을 발견해 구출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보물이지.’







그런 그녀와 달리 루카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의 꿍꿍이가 뭔지 파악하기 전까진 방심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악마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활하고 사악한 존재다.”



“으음. 네,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색마 같던 렉스 러셀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린 엘리제는 가볍게 대답하고선 생글생글 웃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이제 진도 빼야죠.”







그녀의 말에 루카스가 다소 침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표정이 왜 그래요? 대사 다 못 외웠어요?”



“아니. 암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흐음…. 그럼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뭐였죠? 그 부분을 먼저 집중적으로 가르쳐 줄게요.”



“…….”



“왜 말을 못 해요? 지금 시간 없는 거 알죠? 괜찮으니까 빨리 말해 봐요.”







엘리제의 재촉에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지문에 보니 여자의 몸을 만져서 소리 나게 하는 부분이 있더군.”



“…소리요?”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엘리제의 의아한 표정에 그가 해당하는 지문을 그녀에게 읊어주었다.







“‘드레스 속으로 손을 넣고 다리 사이를 더듬는다’라는 지문이 있다. 그러고 나면 여자 주인공이 ‘으응’ 하는 신음을 내게 돼 있다.”



“아.”



“그리고 그런 것들이 매우 많이, 대본에 등장한다.”



“…….”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엘리제는 팔짱을 끼고 루카스를 응시했다. <타락한 연인>은 청불 등급의 영화 시나리오다. 야한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하며 그중 절반 이상이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이다.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가장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요.”



“가장 중요한 것? 그게 뭐지?”



“혹시 당신, 섹스해 본 적 있어요?”



“아니.”



“하긴 키스도 처음인 것 같던데.”



“…….”



“서긴 서요? 거기 그거.”







엘리제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찾아 고개를 내린 루카스는 그대로 한동안 제 바지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왜 대답도 없이 저러고 있어?’







한참 만에 들려온 그의 대답은 최악이었다.







“모르겠군.”



“……?”



“노력해 보지 않아서.”



“노력….”







엘리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떤 이들은 넘쳐서 주체 못하는 것도 간혹 어떤 이들에겐 노력해야 할 대상이지.’







윗세계에서 파견된 이인 만큼 그녀가 가진 일반적인 기준은 내려놓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좋아요. 그럼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니까 먼저 확인 좀 해보도록 해요.”



“그러지.”







대답은 해놓고서 그는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뭐해요?”



“……?”



“바지 내려요.”







엘리제의 말에 그의 얼굴에서 사악, 핏기가 가셨다.







‘아. 바지 내려야 하는 줄은 몰랐구나. 나도 내가 네 바지 내려야 할 날이 올 줄은 몰랐어.’







엘리제는 심드렁하니 생각했다.







“일이에요, 일. 건강검진 받는다고 생각하고.”



“건강검진….”



“그래요. 난 의사, 당신은 환자.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죠?”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는지, 루카스는 버클을 풀고 바지를 엉덩이 바로 아래까지 내렸다.







“이 정도면 되나?”



“속옷도 내려야죠.”



“…….”







엘리제의 말에 그는 창백한 얼굴로 속옷 역시 내렸다. 그러고 나자 그의 중심이 가린 것 없이 환히 드러났다. 엘리제는 유심히 그의 그곳을 바라보았다.







‘남자주인공 아니랄까 봐 꽤 괜찮네. 발기 전인데도 저 정도면 여주 만족시키는 건 문제없겠는걸.’







“됐나?”



“되긴 뭐가 돼요? 가만히 있어요. 서는지 안 서는지 확인해 봐야죠.”







엘리제는 그를 잡아끌어 제 곁에 앉혔다. 본래 자세가 편해야 발기도 수월한 법이었다.







“잘 느껴 봐요.”







루카스의 표정을 살피며, 엘리제는 조심스럽게 그의 페니스를 손에 쥐었다.







“윽.”







보석처럼 맑은 그의 녹안이 와르르 흔들렸지만, 그는 입술만 꾹 깨물 뿐 꼼짝하지 않았다.







‘뭔가 순진한 애 희롱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래도 말은 참 잘 들어서 다행이야.’







그리 생각하며 엘리제는 손으로 천천히 그의 것을 훑었다. 그러나 어쩌면 예상하였던 대로 그의 페니스는 별 반응이 없었다.







“으음…. 혹시 천사에겐 섹스 기능이 없는 거 아니에요?”



“…난 천사가 아니라 요원이다.”







억눌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뭔가 달라요?”



“당연히 다르지. 난 현실 세계에서 십이 년을 살다가 죽었고, 그 후 윗세계의 주민이 되었다.”



“어? 그러면 당신도 사람이란 소리네요?”



“그렇지.”







엘리제는 여러모로 놀랐다.







일단 윗세계 가는 게 몹시 어렵다는 얘길 메리에게 들었던 터라 그가 새삼 달리 보였고, 천사도 아닌데 섹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너무 문외한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걸 몰라요?”



“내가 살던 곳에선 누구도 이런 걸 가르쳐 주거나 시도하지 않았다.”



“어디에 살았는데요?”



“수도원.”



“태어나면서부터 쭉? 죽을 때까지?”



“그래.”







엘리제는 난감함을 느꼈다. 열두 살까지 수도원에서 살다가 죽은 윗세계 요원에겐 성욕이란 게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게 안 서면 여주를 꼬실 수가 없는데. 큰일이네요.”



“…그렇게 큰 문제인가?”



“그럼요. 남자 구실 못하는 사내를 어떤 여자가 좋아해요? 대사 연습할 필요도 없겠네요. 끝이에요, 끝.”



“잠깐!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순 없다!”







루카스가 엘리제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는 유능하지 않나.”







얼마나 다급했는지 딱딱하던 그의 어투가 애원에 가까워졌다.







“흐응.”







그런 루카스를 보는 그녀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좋아요. 그럼 뭐라도 해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