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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필요 있나요? 전 이미 당신의 아내예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인이 나의 아내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녀를 빼앗길 것 같다는 그의 불안감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타락한 연인>의 배경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다. 귀부인이 애인을 두는 걸 책하지 않는 시대였다. 물론 사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진한 처녀를 농락하는 저질스러운 내기, 혹은 서로의 애인을 바꿔서 섹스하는 귀부인들, 가면무도회의 난교 등이 <타락한 연인>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등장한다. 타락의 정점에 있는 황태자를 중심으로.







블레이크의 허리짓이 점점 더 강해졌다.







“마음 같아선, 부인이 내게 푹 빠질 때까지 대공성에서 나오지 못하게 강제하고 싶습니다.”



‘그건 감금이잖아. 안 돼. 그러지 마.’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엘리제는 설마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싶어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겁쟁이라서, 그것도 불가하지요.”







그러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







퍽, 퍽, 그의 것이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때마다 그녀의 몸은 밀액을 쏟으며 환희했다. 그녀의 취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그의 낮고 울림 좋은 목소리가 그녀를 더욱 흥분케 했다.







‘으응, 바로 거기…. 그렇지, 조금만 더 빨리….’







그녀의 바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더욱 빠르고 강하게 그의 것이 박혀 들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그의 마지막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대답할 필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흘려듣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그에게 대답을 들려주었다.







“염려 말아요, 블레이크.”







멈칫하여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고서 엘리제는 그의 콧잔등에 쪽, 입을 맞췄다.







“난 이미 당신이 몹시도 좋아졌는걸요.”



“……!”







그 한마디에 그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엘리제는 바로 앞에서 목도했다.







‘와….’







무표정할 때면 날카롭고 서늘해 보이는 얼굴에 번져 가는 기쁨이 너무도 생생했다. 뺨은 물론 귀와 목까지 빨개지고, 새파란 눈동자는 와르르 떨렸다.







몸의 반응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투명했다. 그녀의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굵은 기둥이 뜨거운 액을 질질 흘렸다.







‘어떻게 말 한마디에 사정하지?’







이런 게 가능해지려면 대체 얼마나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엘리제는 놀랍고 신기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미안합니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왜 가려요? 얼굴 좀 봐요.”



“아니, 잠시만….”







제 몸을 쑥 빼낸 그가 엘리제의 몸을 홱 돌려 버렸다. 졸지에 단상에 엎드린 상태가 되어버린 엘리제는 다시금 쑤욱 파고 들어오는 그의 페니스에 움찔 몸을 떨었다. 한번 사정했음에도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게 느껴졌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하지요.”



“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부인을 만족시키려면 멀었다는 걸 압니다.”







그녀에겐 그의 오해를 풀어줄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발갛게 물들 정도로 그가 강하게 제 몸을 부딪쳐 왔다.







“흑…!”







철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느긋하게 안을 휘젓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쾌감이 그녀의 몸에 번져 갔다.







“흐윽, 읏, 으읏…!”







넓은 홀의 끝까지 번져 갈 정도로 그녀는 교성을 질렀다. 짐승 같은 그의 숨소리가 그녀의 등줄기에 쏟아졌다. 단상을 짚은 그의 손에 퍼런 힘줄이 도드라졌다.







애써 익힌 기교고 뭐고, 이건 무조건 ‘강, 강, 강’이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선택하라 한다면 엘리제는 도저히 고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블레이크와 비견될 만한 인물을 엘리제는 단연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쫘악.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작스레 들린 불길한 소리에 엘리제가 단상에 처박았던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갑자기 뭔가 허전해진다 싶더니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드레스가 단상 위로 축 늘어졌다.







‘이 인간이 또 드레스를 찢었어!’







거추장스러웠는지 등 쪽을 쥐고 양손으로 쫙 찢어 버린 것이다.







‘어쩌려고! 집에 어떻게 가라고!’







속마음으론 왁왁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 교정뿐이었다. 걸리적거리는 게 사라지자 그는 정말 미친 듯이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앙, 아…. 아앗! 너무, 응…. 너무 좋아…!”







이성을 배반한 그녀의 몸은 절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또 휩쓸리다 떠내려갈 지경이었다.







‘그래, 이미 찢었는데 어쩌겠어. 뭔가 대책이 있겠지.’







그녀의 장점 중 하나인 빠른 판단력과 적응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머릿속을 순식간에 정리한 엘리제는 이 짐승 같은 섹스에 몸을 내맡겼다.







권력에 재력에 섹스까지 잘하는 블레이크 프로이젠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최고의 남편이었다.











***











엘리제는 눈을 데구르 굴렸다. 그녀는 블레이크의 품에 안겨 있었다. 블레이크가 덮어 주었을 망토로 허리까지 가리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신전의 단상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셈이었다.







‘뭔가 좀 기분이 이상하네.’







생전엔 신을 믿지 않았던 그녀지만 지금은 엄연히 신이 존재함을 알고 있지 않은가.







‘하긴 실컷 섹스까지 해놓고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웃기지.’







실소하며 엘리제는 힐끔 블레이크를 쳐다보았다. 블레이크는 그녀가 그를 봐 온 이래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절로 시선이 갈 만큼의 미남이 저를 보물처럼 끌어안고 자고 있으니 엘리제는 실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숨 푹 잔 것 같은데 여전히 창을 통해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를 깨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소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져 망토를 어깨까지 끌어 올리려던 엘리제는 문득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가장한 중간지대의 아이템)가 희미하게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응?’







이런 일은 처음이라 엘리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라도 블레이크가 깰까 봐 망토를 아예 머리까지 덮어쓰고서 그녀는 반지를 톡톡 두드렸다.







손바닥만 한 패널 디스플레이가 떠올랐다. <타락한 연인>의 시나리오 대본 위로 알림창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새로운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지도에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







‘지도 업데이트?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얘길 필립에게 들은 기억이 없다.







‘뭐, 업데이트라니 나쁜 건 아니겠지.’







엘리제는 일단 수락 버튼을 눌렀다. 알림창이 사라진 자리에 업데이트의 진도를 알려 주는 얇은 가로 바가 생겼다. 엘리제는 숨을 죽인 채 가로 바의 게이지가 모두 차오르길 기다렸다.







10초쯤 흘렀을까, 가로 바가 사라지고 다시금 알림창이 떠올랐다.







『오류 발생. 지도에 표시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시스템 버전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지도에 표시할 수 없는 지역?’







지금 그녀가 들어와 있는 이 세계는 실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였다. 그러니 설정된 세계관 설정 외의 것들은 듬성듬성 얼기설기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이 ‘환상 호수’가 그러한 곳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시스템 버전 업그레이드라.’







엘리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쨌든 내게 나쁠 건 없어 보이는데. 한번 해보자.’







엘리제는 이번에도 수락 버튼을 눌렀다. 가로 바가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매우 느린 속도였다.







‘아, 정말. 왜 이렇게 느리담. 이러다가 들키면…….’







언제 블레이크가 깨어날지 몰라 엘리제는 초조해졌다.







‘응? 잠깐……. 이거 뭔가…….’







액정을 노려보던 그녀는 문득 새로운 가정에 생각이 미쳤다.







본래 블레이크의 몸에 들어갔어야 했던 루카스는 알 수 없는 ‘에러’ 때문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블레이크의 몸을 누군가 먼저 선점하였든지, 혹은 캐릭터 설정 값에 치명적 오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블레이크는 세계의 허점에 해당할 만한 장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빙의……. 빙의라. 설마 블레이크도 렉스처럼 악마인 건 아니겠지……?’







그 역시 빙의자라면, 일단 윗세계 요원이나 중간지대 조사관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그랬다면 루카스나 메리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오류, 즉 <타락한 연인> 원작 남주 루카스 클랜튼의 캐릭터 설정값이 블레이크에게 잘못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편이 가장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둬야 했다.







만약 블레이크가 지하세계의 악마 혹은 현실 세계에서 잘못 넘어온 제3의 빙의자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좋겠는데.’







그녀가 생각을 이어 가는 사이 가로 바의 게이지는 80퍼센트가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힘내라! 조금만 더!’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이 세계의 통신망을 응원하고 있을 때, 닿아 있는 그의 몸이 미동하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란 엘리제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으응’ 하고 잠꼬대를 흉내 냈다.







깨어난 게 맞는지, 블레이크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망토 끝을 그가 붙잡는 게 느껴지는 순간, 엘리제는 서둘러 패널 디스플레이를 꺼버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그가 망토를 끌어 내렸다. 망토를 엘리제의 목 언저리까지 내려 잘 여며 준 그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히 어루만졌다.







“엘리제…….”







이런 상황에도 그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엔 감미롭게 들렸다.







엘리제는 이제 막 깨어난 것처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초점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며 두어 번 눈을 깜빡이다 배시시 웃어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블레이크.”



“나 때문에 깼습니까?”



“으음…. 그런가? 그래도 깨자마자 당신을 보니까 좋네요.”



“그렇습니까?”







블레이크의 얼굴에 녹아내릴 듯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서, 그가 말했다.







“이만 돌아갈까요.”



“네. 그런데 제 드레스가….”



“그건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먼저 상체를 일으킨 블레이크가 그녀를 붙잡아 일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왜요?”



“말했지 않습니까. 이곳은 ‘환상’일 뿐이라고.”







엘리제가 그와 함께 단상 아래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화악-!







어디선가 불어온 미풍이 그와 그녀를 스쳐 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자 그들은 처음 발을 디뎠던 호숫가로 돌아와 있었다.







“아…!”







놀라움에 엘리제는 탄성을 터뜨렸다. 찢어졌던 그녀의 드레스를 비롯하여 어깨에 걸친 숄까지. 모든 것이 원래대로였다.







‘세상에. 이거 정말 굉장한데.’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 옷차림과 주변을 둘러보던 엘리제가 블레이크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살피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성공리에 제 보물을 자랑한 소년같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고마워요. 이 신비로운 장소에 절 데려와 줘서.”



“무엇이든 그럴 겁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그대에게 줄 겁니다.”







그녀를 향한 선명하도록 푸른 눈이 그의 진심을 증명했다. 감탄이 나오도록 잘생긴 블레이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엘리제는 끙, 하고 신음했다.







‘제발 악마만 아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