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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호숫가 가까이 이끌었다. 어디까지 가려나 싶으면서도 엘리제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주었다.
그녀의 구두코가 물에 닿을락 말락 해졌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 광경이 바뀌었다.
“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블레이크는 그제야 ‘짠!’ 하는 표정을 지은 채 그녀의 놀란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요?”
실제 마법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도 지금의 현상은 신기한 일인 모양이었다.
‘여긴 어디지?’
엘리제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금보다 더한 당혹감을 느꼈다.
놀랍게도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그녀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또한 <타락한 연인> 시나리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소이기도 했다.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밀밭 사이, 자그마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흔들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접힌 채 놓여 있는 담요까지, 모든 게 그녀에게 익숙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이 호수에는 ‘환상’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지요.”
엘리제는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진짜인 양 생생했다.
“이곳이 부인이 마음속으로 그리던 장소군요. 평화로워 보입니다.”
블레이크의 말이 그녀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여길….’
그녀는 표정을 조금도 제어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면 ‘그’가 서 있을 것 같아서였다.
기억 속 ‘그’는 어울리지 않게 앞치마를 매고 있었다. 흰색 셔츠의 소매는 돌돌 말려 있었고, 늘 말끔하게 넘기던 머리칼은 이마 위에 부드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내 생일 선물이 어때? 전부터 이런 곳에 살고 싶댔잖아.]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매에 웃음기를 매단 채 ‘그’는 그녀를 맞이했었다.
떠올린 순간 속이 울렁거려, 엘리제는 입을 틀어막았다.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준다고?’
엘리제는 조소했다. 만약 그녀에게 이곳을 바랄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카인 리베르토의 뺨을 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못해 감각을 잃을 때까지 때려 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엘리제?”
“…이제 다른 곳으로 가요. 가능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장소로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블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반응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엘리제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는 사이 오두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긴장하여 차갑게 식었던 그녀의 손끝에 서서히 온기가 돌았다.
“이곳이 내가 가고 싶던 곳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로운 장소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여기는….”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지요.”
그곳은 바로 블레이크 프로이젠과 엘리제 클랜튼이 결혼식을 올렸던 신전이었다. 창 너머 은은히 스며드는 달빛과 촛대의 불빛이 적막한 홀을 고요히 밝히고 있었다.
아직 빙의 전이었던 그녀는 환상 컨트롤타워의 보스, 필립의 설명을 들으며 모니터로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임시로 그녀의 모습을 복제하여 구현한 인공지능 엘리제가 부디 아무 사고 치지 않길 바라며.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걸 제외하면 신전의 모습은 결혼식 당일의 풍경과 똑같았다. 엘리제는 신기한 마음으로 홀을 둘러보았다.
“결혼식이 꽤 길었지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엘리제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응시한 채 그가 끼고 있던 장갑 끄트머리를 이로 물어 천천히 벗었다.
엘리제는 카인 리베르토와의 기억으로 인해 불쾌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정화되는 걸 느꼈다.
젊고 잘생긴 대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능 그 자체였다. 장갑이 차례로 바닥에 툭, 툭, 떨어졌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만약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부인에게 입을 맞췄을 겁니다.”
엘리제를 번쩍 안아 든 블레이크가 단상에 그녀를 앉혔다. 대신관의 주재하에 나눠 마신 술이 진설 되어 있던 단상이었다. 그곳에 걸터앉고 나서야 블레이크와 그녀의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엘리제는 그의 새파란 눈동자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이지요.”
술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머금은 그가 그녀에게 입술을 겹쳤다. 벌어진 입술로 달콤한 포도주가 흘러들어왔다. 입 안의 포도주 향이 옅어질 때까지 그의 혀가 그녀의 입 안을 부드럽게 유영했다.
입술이 떨어지자 엘리제가 혀를 내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맛있어요.”
그의 눈빛이 한층 짙어졌다.
“그럼 한 모금 더.”
다시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두 번째는 더욱 달았다. 그와 엮인 혀가 녹아들 것 같았다.
입맞춤이 깊어지며 그녀의 상체가 뒤로 기울었다. 손을 받쳐 조심스레 그녀를 눕히고서 그는 농밀한 입맞춤을 이어 갔다.
은잔의 포도주가 바닥 날 때까지 그와 그녀는 술을 나눠 마셨다. 그녀의 뺨에 발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예쁘게 부푼 가슴이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닿은 몸이 뜨거워진 것을 서로가 느끼고 있었다.
“술을 다 마셨네요.”
“그렇군요. 술잔이 비었습니다.”
그녀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그럼 이제 돌아가나요?”
“그럴 순 없습니다. 포도주 한 잔을 나눠 마시기 위해 여기에 부인과 함께 온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요?”
블레이크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거슬러 올랐다. 은밀한 부위를 더듬는 그의 손길에 엘리제가 가는 신음을 흘렸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사랑스럽게 흐트러지는 부인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속옷 위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는 드러난 엘리제의 어깨 위에 입술을 비볐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마신 건 몇 모금 되지 않건만 엘리제는 술에 취한 듯 몽롱함을 느꼈다. 가쁘게 호흡하며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의 손가락이 젖은 속옷을 젖히고 곧장 그녀의 밀부를 더듬어 찾아냈다.
“아…!”
굵은 손가락이 쑤욱 들어오는 감각에 엘리제는 허리를 경직시키며 바르르 떨었다.
“이렇게 뜨겁고, 부드럽고, 축축할 거라고…. 그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빙그르 손가락을 돌렸다. 안을 더듬고 문지르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만약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엘리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고역이었을 겁니다. 그 긴 시간,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참는 것이.”
쑤욱 쑤욱, 그녀의 아래를 쑤시는 손가락이 하나 더 늘어났다. 젖은 소리가 음란하게 들렸다.
낮은 한숨 끝에, 그가 다시금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포도주의 잔향이 그녀의 입 안에 달콤하게 번져 갔다.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입맞춤을 졸랐다. 울컥 배어 나온 애액이 흐르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주었으나, 다리 사이에 그의 몸이 있어 더는 다물리지 않았다.
엘리제의 몸에 힘이 들어갈수록 속살을 농락하는 손가락의 속도 또한 빨라졌다.
기다란 엘리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도망가려는 그녀를 단단한 몸으로 가두고서 그가 더욱 깊게 입을 맞추었다. 호흡과 숨결을 집어삼키고도 부족한 듯, 절박하게 파고들었다.
“……!”
절정의 순간은 빠르게 찾아왔다. 움찔 튀어 오르는 그녀의 몸에서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말간 액이 그의 손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아름답습니다, 엘리제.”
그는 황홀함이 깃든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어 엘리제는 멈칫했다.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을 더 이어 가기 전, 그가 엘리제의 젖은 속옷을 벗겼다. 버클을 푸는 소리가 들리자 엘리제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 블레이크, 지금은…!”
그러나 그는 그녀가 진정하길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직 절정의 여파가 남아 잔뜩 좁아져 있던 그녀의 속살을 강제로 벌리며 그의 두툼한 페니스가 파고들었다. 지나친 자극에 그녀의 몸이 물고기처럼 퍼덕댔다. 그런 그녀를 한 팔로 감아 고정한 채 그가 제 몸을 단번에 끝까지 밀어붙였다.
“흑…!”
“하아….”
짧은 신음과 긴 한숨이 그녀와 그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얕은 절정감이 끝날 때쯤,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부드럽게 그녀의 안을 휘저으며 느긋하게 빠져나갔다가 삽입하길 반복했다.
“상상했습니다.”
그녀의 귓불을 어루만지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관과 그대의 가족, 나의 가신 그리고 기사들. 우리의 결혼을 보러 온 모든 이들 앞에서 부인을 범했다면 어땠을까.”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구는 건 아니었다. 그는 참기 힘든 듯 어금니를 꽉 물고 있었다. 내쉬는 숨도 거칠었다.
다만 당장의 성욕을 채우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이 그의 안에 자리하고 있어 참고 있을 뿐.
“그랬다면, 누구도 부인을 내게서 앗아 가려 들지 않을 텐데.”
그건 강렬한 소유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이용하고 있었다. 엘리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극치의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하여 움직였다.
황제에게 재차 삼차 선택되길 바라여 방중술을 익히던 후궁들처럼, 그는 그녀가 제 몸이 주는 쾌락에 중독되길 바라고 있었다.
굵직한 귀두가 그녀의 내밀한 곳에 있는 쾌락점을 꾹꾹 누르고 비벼댈 때마다 엘리제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아…. 이 남자 정말, 너무 잘해.’
여자를 잘 알아서 생긴 닳고 닳은 능숙함이 아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뛰어난 관찰력에 몸을 쓰는 재능이 더해진 결과로 보였다.
그의 행위는 다소 우악스러웠던 초야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몸을 겹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섹스에 대한 그의 숙련도는 확확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의 모든 경험을 통틀어, 그가 최고였다.
이토록 기분이 좋으니, 엘리제는 블레이크의 말도 안 되는 말들이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맨정신으로 들었다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쾌감에 절여진 상태로 들으니 마냥 너그러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할 겁니다.”
앞쪽 여밈이 풀리며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고개를 내린 그가 꼿꼿하게 곤두서 있는 정점을 입에 머금고서 혀로 힘주어 굴렸다.
“으응….”
할짝대다가 이로 자근거리고, 다시 혀로 비벼댔다.
자극이 커질수록 그녀는 몽롱해져 갔다. 개를 쓰다듬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만하게 다리를 벌려 더욱 깊게 그를 받아들였다.
“부인이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 두려워, 나는 아마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겁니다.”
본래 생각만으로는 못할 일이 없는 법이다. 정상인과 미친놈의 차이는 그걸 실행에 옮기느냐 아니냐가 아닐까.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블레이크는, 다소 특이하긴 해도 정상 범주 안에 있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