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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새끼!’
엘리제는 번쩍 눈을 떴다.
누군가 그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고, 지금은 뺨에 입 맞추고 있었다. 검푸른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였다.
꿈속 장면이 이어지는 줄 알고 철렁하였으나, 다행히 그녀는 살아 있었고 꿈틀대며 움직일 수 있었다.
“…블레이크?”
얼마나 오래 잔 건지, 꽉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깼습니까?”
엘리제는 그에게 깔려 불편한 몸을 뒤척였다. 체중이 실린 것은 아니나 커다란 몸 아래 갇혀 있으니 답답했다.
그러나 그는 비켜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추고는 조금 더 몸을 붙여 왔다. 엘리제는 자신이 알몸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옷을….”
“내가 벗겼습니다.”
블레이크는 태연히 대답했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느라.”
“…괜찮다고 했잖아요.”
“직접 보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자는 사람의 옷을 홀딱 벗긴 것이 좀 그랬지만, 엘리제는 모른 척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젠 안심하셨죠?”
엘리제의 말에 그가 낮게 웃었다. 울림이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아니요.”
뜻밖의 대답에 엘리제가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래를 파고드는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엘리제.”
“……!”
놀란 엘리제가 그의 팔을 부여잡으며 숨을 들이켰다.
‘무슨…?’
그녀가 놀라거나 말거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둥근 선단을 욱여넣고서 뿌리를 쑤셔 박는 순간까지,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갑작스러운 행위임에도 조금의 불편감도 없다는 점이었다. 뻑뻑한 느낌이나 통증 없이 매끄럽게 쑤욱 삽입됐다.
축축하게 젖은 속살이 그의 것을 빨아들이듯 머금고선, 기분 좋게 움찔댔다. 단번에 차오른 쾌감에 숨이 찼다. 그의 몸 양옆으로 벌어진 다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무엇이 그를 자극하였던 걸까. 엘리제는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블레이크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그는 새파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물렸다가 쑥, 박아넣길 반복할 따름이었다.
“으읏, 블레이크….”
제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듯 입술을 맞댄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입 벌려요.”
거부할 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유두를 비틀었기 때문이다. 벌어진 입 안으로 침범해 온 그의 혀가 무자비하게 그녀의 속살을 유린했다. 벌을 주듯 혀끝부터 뿌리까지 비비며, 가장 깊은 곳을 찔러댔다.
타액과 함께 무언가 달콤하고 시원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엘리제는 고개를 젖히며 헐떡였다. 갈증이 일어 참을 수가 없었다.
엘리제는 안달하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팔로 그의 목을 휘어 감고 키스를 졸랐다.
“더…. 더 해주세요.”
지그시 내리뜬 눈으로 엘리제를 바라보며, 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능란하게 엘리제의 입 안을 휘저었다.
그의 탐닉은 위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녀에게 삽입한 제 것을 빼지 않고 허리를 돌리며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을 누르고 문질렀다.
‘아아, 너무 기분 좋아….’
황홀할 지경이었다. 엘리제는 스스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를 받아들였다. 전후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오로지 더 큰 쾌락을 좇고 있었다.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으며, 뜨겁게 달아오른 전신이 찌릿찌릿했다.
몇 번이고 울컥울컥 쏟아진 애액이 엉덩이와 시트를 흥건히 적셨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블레이크, 으응….”
엘리제의 매끈하게 뻗은 다리가 그의 허리에 엉겼다. 촘촘한 근육으로 뒤덮인 그의 단단한 몸이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짓눌러 발갛게 물들였다.
“엘리제….”
잔뜩 억눌려 거칠게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엘리제를 더욱 안달 나게 했다.
“당신, 읏, 너무, 좋아.”
저 스스로 그에게 입술을 비비고, 그의 턱 끝에 맺힌 땀을 핥았다. 그녀가 그럴수록 블레이크의 눈빛은 점점 더 사나워졌다.
몸짓이 격렬해진 건 당연했다. 삽입의 속도가 더해지고 깊이 또한 깊어졌다. 그의 굵은 기둥이 안쪽 주름을 넓히며 속살을 헤집을 때마다 쾌감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짐승 같은 숨소리와 질컥거리는 소리, 정신없이 핥고 빠는 음란한 소리가 침실을 채웠다.
블레이크는 그녀를 더욱 완벽히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녀는 그를 이용해 제 빈 곳을 틈 없이 채우려 몸부림쳤다.
사정을 앞둔 그의 것이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엘리제의 속살이 그를 물어뜯듯 조여 댔다. 사정을 재촉하며 뜨겁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더 빠르게, 혹은 격렬하게 움직이는 대신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편을 택했다.
엘리제의 다리를 제 어깨 위에 걸친 그가 한계까지 몸을 치댔다.
“흐윽, 아…. 거긴, 너무….”
누구에게도 범해진 적 없던 곳이 강제로 벌어지는 기분에,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신음했다. 엘리제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찔러대며 블레이크는 거친 숨을 쏟아냈다. 사정감을 참아내며 엘리제를 끝없이 몰아붙였다. 귀두 끝이 안쪽 어딘가에 걸리자, 얕고 강하게 쳐올렸다.
“아아…!”
그녀의 속살이 파드득 떨며 조여들었다. 경련하며 움찔대는 그녀의 몸을 블레이크가 한 팔로 감아 고정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몸을 적셨다.
그는 아주 느리게 제 몸을 빼냈다가 쑥, 밀어 넣었다.
절정에 절정이 더해졌다. 그는 이를 꽉 물고 몇 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의 이마에서 뚝뚝 떨어진 땀이 그녀의 가슴골에 고였다.
엘리제가 도리질 쳤다.
“이제 그만….”
지독한 쾌감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울며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엘리제를 새파란 눈으로 내려다보며 그는 끝도 없이 자신을 새겼다.
그의 팔을 부여잡던 그녀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애처로웠다. 몸부림치던 엘리제가 완전히 늘어진 후에야 그는 그녀 안에 파정했다. 쿡, 쿡, 가볍게 박아대며 씨물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좁은 안쪽을 빠듯하게 채운 애액과 정액이 접합부를 따라 배어 나왔다. 그는 느릿하게 그녀의 안을 휘저으며 후희를 즐겼다.
“너무해….”
엘리제는 눈을 감고 투덜거렸다.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힘에 부쳤다.
“…너무한 건 부인입니다.”
드디어 그가 제 것을 빼냈다. 한껏 벌어졌던 입구에서 주르륵, 희뿌연 액이 흘렀다.
엘리제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어요.”
‘혹시 잠결에 카인의 이름을 부른 걸 수도.’
꿈속에서 그리 이를 갈며 애타게 불러 댔으니, 입 밖으로 한 번 정도는 새어 나왔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부인이 웬 남자의 이름을 잠결에 내뱉었다면, 정인으로 오해하여 화를 낼 법도 했다.
‘물어봐야 하나…. 아니야, 그랬다가 그게 누구냐고 하면 뭐라고 말해. 날 죽인 놈이라고 할 순 없잖아.’
의미 없는 생각들이 엘리제의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다 사라졌다.
“…….”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블레이크는 한참이나 엘리제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꺼덕거리는 굵은 기둥이 그녀의 오목한 배에 아무렇게나 짓눌렸다. 눈 뜰 힘도 없어 색색 숨만 몰아쉬던 그녀가 가물가물한 정신을 놓아 버리려는 찰나.
블레이크가 엘리제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겹쳐 도장 찍듯 꾸욱 누르다가 살짝 떼어냈다. 입맞춤 후에도 그의 입술은 여전히 그녀에게 닿아 있었다.
“좋은 꿈 꾸십시오, 엘리제.”
그의 낮은 속삭임, 스치는 입술의 감촉, 스며드는 숨결이 꿈결처럼 멀어지는 걸 느끼며 엘리제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무래도 이상해.”
엘리제의 중얼거림에 메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가 말씀이세요?”
그날의 사건 이후 메리는 엘리제의 개인 시녀로서 정식 인정받았다. 이에 메리가 매우 기뻐하며 방방 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메리는 하루 만에 붕대를 벗어 던지고 엘리제를 졸졸 따라다녔다.
시녀장 케이트는 제도행 준비로 워낙에 바빴기에 현재 엘리제 곁에 머무는 건 메리 하나였다.
덕분에 엘리제는 안심하고 마음 편히 행동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요가 동작을 하며 누군가에 대한 수상한 이야기를 한다든지.
“저렇게 잘생기고 몸 좋고 다정한데 밤일까지 잘하는 게 말이 돼? 너무 몰아 줬잖아. 아무리 봐도 주인공 포지션이라고.”
메리는 눈을 끔뻑거렸다.
“대신 성격이 안 좋잖아요.”
“성격? 저 정도는 애교지.”
오늘 아침, 엘리제는 결혼반지를 조작하여 블레이크가 등장하는 부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체크했다. 워낙에 출연 분량이 적고 대사도 적어 원작의 설정이 어떠한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가끔 대공비가 루카스와 지나치게 친밀하게 지낸다고 생각될 때 질투 섞인 대사를 하는 거로 보아 본래 애처가 설정 같았다.
“딱히 나를 감시하려 들진 않잖아.”
“아내를 감시하다니…. 그건 너무 무서운데요.”
“네가 아직 ‘집착, 소유욕’ 키워드를 제대로 탑재한 사람을 못 겪어 봐서 하는 소리야. 그런 애들은 장난 아니거든.”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든, 블레이크는 다소 과격하게 섹스하는 거로 불만을 표출할 뿐이었다. 이후엔 오히려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더 잘해 주려 애쓰니 나쁠 게 없었다.
“그런데 엘리제 님, 아까부터 뭐 하시는 거예요?”
“보면 모르니? 요가 하잖아.”
“그냥 똑바로 누워만 계시잖아요.”
“원래 이 자세에서 그대로 상체를 일으켜야 하거든? 근데 복근이 하나도 없어서 못 일어나겠어.”
“그, 그럴 수가.”
“놀랍지? 나도 놀랍단다.”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윗몸일으키기를 해보려 배에 힘을 줬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비전하, 기사 앨런 루오스와 바트 루오스가 뵙기를 청합니다.”
벽에 바짝 몸을 붙인 메리가 문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실력자의 기척이에요!”
“아무렴 그렇겠지. 어서 표정 원래대로 하고 문이나 열어 주렴.”
엘리제는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로 이동해 앉았다. 흐트러진 매무새를 순식간에 단정히 하고서 곧게 허리를 폈다.
메리가 문을 열자, 동시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건장한 두 기사가 바짝 굳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
아무래도 메리를 보고 긴장한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저 애가 바로 검날을 껌 씹듯 씹어먹을 수 있는 무서운 시녀란다. 조심하렴.’
엘리제는 심드렁하니 생각했다.
“안 들어오세요? 그럼 닫아도 돼요?”
메리가 도로 문을 닫을 듯한 태세로 손잡이를 잡자 두 사람은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