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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자인 건 예상했지만, 실로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그녀의 목숨을 제 목숨과 함께 앗아간 남자, 카인 리베르토. 그것이 정말 황태자에게 빙의한 존재의 정체라면.







여전히 엘리제가 침묵한 채 입을 열지 않자 그는 그녀의 손목을 쥐고 부드럽게 당겼다.







“12월 28일, 글렌데일 브랜드 우드 호텔 뒷골목.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와 시간이지.”







딱히 저항하지 않고 엘리제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의 무릎에 앉았다.







“소살리토 선상 파티에 파트너로 참여했던 거 기억나? 네 물빛 드레스, 정말 아름다웠는데.”







엘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혹시 내 말을 못 믿겠어?”







그는 한쪽 손을 들어 그녀의 아랫배를 은근하게 문질렀다.







“여기에 흉터가 있잖아. 네 나이 열네 살에 생긴.”







엘리제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너 누구야.”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엘리제의 말에 렉스의 눈꼬리가 시무룩하게 처졌다.







“왜 그래, 엘리제. 널 위해 죽은 날 설마 잊은 거야?”







엘리제는 웃으며 그의 손을 제 배에서 떼어냈다.







“이봐요, 황태자 님. 그놈 기억은 왜 훔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당신이 ‘카인 리베르토’가 되는 건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카인 리베르토였다면, 아무리 제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라 한들 그녀의 흉터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엘리제는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 구겨진 드레스 자락을 탁탁 쳐 정리했다.







“거짓말을 아주 뻔뻔스럽게 하는 걸 보니 뭐 악마 같은 건가? 혹시 그 녀석, 지옥 갔어?”



“…….”



“그러게 쓸데없이 자살 같은 걸… 멍청한 놈 같으니.”







렉스는 엘리제를 따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너 설마….”



“왜? 카인인 척하면 내가 고마워하며 반겨줄 줄 알았어? 크게 착각했네. 당신이 진짜 그놈이었으면 난 싸대기부터 날렸을 거야.”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데룩데룩 눈을 굴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던 엘리제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물었다.







“그런데 당신, 정말 악마야?”



“…뭐?”







상황이 급했기에 필립은 사후 세계를 이루는 거대한 틀과 존재들에 대해 그녀에게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윗세계의 요원, 중간지대의 조직원이 있다면 ‘악’을 대표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엘리제 홀로 짐작했을 따름이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카인 리베르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딘지 다소 어설프다. 그렇다면 상대를 방심하게 한 뒤 최선을 다해 정보를 캐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리라.







엘리제는 날 선 경계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호기심만을 오롯이 드러냈다.







“아니, 정말 지옥이나 악마 같은 게 있는지 궁금했거든. 어차피 들통난 거, 알려 주면 안 돼?”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던 렉스가 뭘 생각했는지 갑작스레 씨익 웃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내가 내 정체를 알려 주면 넌 내게 뭘 해줄 거지?”







엘리제는 인상을 썼다. 악마(로 의심되는 남자)와의 거래라니. 누가 그딴 걸 제정신으로 하겠는가.







“…됐어.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아. 악마 비스름한 거로 생각하면 그만이지.”



“비스름한 거라니….”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죽자마자 여기 왔어. 아는 것도 없고 네게 줄 것도 없어.”







루카스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굉장한 정보를 손에 쥔 셈이지만, 이놈에게 넘길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도로 소파에 앉으려는 그녀를 그가 덥석 붙잡았다.







“한 번만 넣게 해줘. 그럼 알려 줄게.”



“뭘 넣어?”



“네 거기에서 좋은 냄새가 나. 무슨 세계관 보정이라도 받은 거야? 꼴려서 질질 싸기 직전이야.”







엘리제는 기가 차서 웃었다.







‘혹시 색마 같은 건가? 색마도 악마에 속하나? 뭐가 다른 거지?’







어쨌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싫은데.”







그러나 렉스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펠라티오라도.”



“그것도 싫어.”







거듭되는 거절에 그는 입을 뻐끔거렸다.







“내 정체가 궁금하다며?”



“네가 정 알려 주고 싶다면, 손으로는 해줄 수 있어.”



“그건 너무 약하잖아!”



“싫으면 말고.”



“아니야. 대신 네 팬티 벗어서 나한테 줘.”







그를 보는 엘리제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별 변태 같은 놈을 다 봤네.’







그러나 딱히 손해나는 거래는 아니었다. 엘리제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속옷을 끌어 내렸다. 그러곤 그에게 넘겼다.







“됐지?”







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도로 소파에 앉아 허리춤을 풀었다. 그가 드로어즈를 내리자 굵직한 기둥이 퉁겨져 나왔다. 살짝 휘어진 데다가 핏줄까지 도드라져 흉악스러워 보였다.







“해줘.”



“알았으니 보채지 마.”







엘리제는 그의 굵은 기둥 선단을 손으로 감쌌다. 싸기 직전이란 말이 맞는지 미끌미끌하게 젖어 있었다.







“말해봐. 넌 악마야? 아니면 그쪽도 요원이라고 부르나?”



“요원은 무슨…. 겉멋만 든 윗세계 놈들 같으니. 그냥 악마라고 생각해. 어차피 뭐라 부르든 내가 누군지는 정해져 있으니까.”



“뭐, 맞는 말이기는 한데.”







엘리제는 손대기가 무섭게 질질 흐르는 투명한 액을 기둥에 골고루 펴 바르곤 천천히 위아래로 문질렀다.







“왜 카인인 척했어? 날 네 편으로 만들려고?”



“조금만 더 빨리….”







안달하는 그의 요구대로 엘리제는 조금 더 빨리 그의 것을 흔들었다. 방울져 흐르는 액체가 그녀의 손을 끈적하게 적셨다.







“크윽, 하아… 그래, 일단은 그러려고 했지. 네가 그놈에게 조금쯤은,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우스운 소리네. 그 녀석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날 죽였어. 살인자일 뿐이지.”







고양감을 견디지 못한 그가 숨을 헐떡대며 애원하듯 말했다.







“알았으니 네 거기에 손가락 하나만 넣게 해줘. 너도 질질 싸고 있잖아. 네가 풍기는 냄새에 미칠 것 같아.”







아래에서 애액이 흐르고 있다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곧 블레이크가 올 거야.”



“안 들키게 할 수 있어.”



“어떻게?”



“악마라고 했잖아. 공간을 분리해 시간의 흐름을 조정하면 돼.”



“흐응, 당신 꽤나 유능하구나?”



“말해 줬으니까 이제 넣게 해줘.”



“내가 원한 정보가 아닌데?”



“그럼 뭘 더 원하는데?”







엘리제는 그의 것에서 손을 뗐다. 쾌감을 빼앗긴 굵은 성기가 불만스럽게 꺼덕댔다. 엘리제는 붉어진 그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소파에 눕듯이 기댔다.







“넣게 해줄 테니까 어떻게 그놈 기억을 가지게 됐는지 말해 봐.”







그러곤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방만하게 다리를 벌렸다. 촉촉하게 젖은 분홍빛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혹시 당신, 머릿속을 훔쳐보거나 기억을 훔쳐내는 능력도 있어?”







그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 그저 거래를 했을 뿐이야.”



“거래? 어떤?”



“그건 말할 수 없어. 금기에 해당해. 이제 넣어도 돼?”







그는 조급하게 물었다.







“좋아. 손가락 하나만이야.”



“알았으니까 내 것도 계속 흔들어줘.”







기듯이 그녀 위로 올라간 그가 무릎과 한쪽 팔로 제 몸을 지탱하며 엘리제의 아래를 더듬었다. 액을 흘리는 입구를 정확히 찾아낸 그의 중지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하아, 끝내주네.”







그는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엘리제의 손에 제 것을 다시 쥐여 줬다.







엘리제는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아래에 주어지는 쾌감을 즐겼다. 타락의 온상답게 훌륭한 손놀림이었다. 어디를 누르고 문지르며 긁어대야 여자를 기분 좋게 하는지 꿰뚫고 있는 듯했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그녀의 속살이 움찔대며 조여들었다.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어 더 강한 쾌감을 쫓았다.







엘리제는 고개를 젖히며 완전히 쥐어지지도 못할 만큼 굵은 그의 페니스를 빠르게 훑었다. 액이 줄줄 흐르는 틈새를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으, 흑, 하아….”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래를 쑤셔대며 그는 연신 허리를 튕겼다. 붉어진 얼굴로 거친 신음을 내뱉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진짜로 섹스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손으로 해주는 건데 되게 좋아하네.’







아무래도 악마란 존재는 성감이 예민하게 발달돼 있는 모양이었다.











***











블레이크가 돌아왔을 때, 엘리제와 렉스는 태연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기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건 과자의 개수뿐이었다.







‘마법이라는 거, 되게 편하네.’







비록 속옷은 빼앗겼지만, 흥건히 젖었던 아래가 깨끗해져 그리 찝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창 즐긴 탓에 나름 기분도 좋았다.







블레이크는 안심한 얼굴로 렉스가 내민 서류에 인장을 찍었다. 렉스 역시 서류에 황가의 인장을 찍곤 블레이크와 한 부씩 나눠 가졌다.







일을 마무리 지은 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또 보겠군.”







그 역시 만족하였는지 더는 엘리제에게 질척대거나 도발하지 않았다.







“제도에서 뵈어요.”







엘리제는 다소곳이 그에게 인사했다. 실로 가식적인 행동이었으나 렉스는 피식 웃을 뿐 별말 하지 않았다.







홀로 렉스를 배웅하고 돌아온 블레이크가 유심히 엘리제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그가 무도하게 굴진 않았습니까?”



“그냥 대화만 했어요. 결혼하기 전 어찌 살았는지 물으시더라고요. 혹시 걱정하셨나요?”



“네. 그는 위험한 자입니다.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어떠한 의미에서든 블레이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엘리제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지금 그에게 메리에 관한 얘길 꺼낼까 고민하던 엘리제는 곧 생각을 바꿨다. 그녀를 곁에 두는 건 절대 실패해선 안 될 일이었다.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시도해야 했다.







엘리제는 블레이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가벼운 담소를 나눴고 그 후엔 그의 배웅을 받아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계획이 실행되어야 하는 시각은 깊은 밤이었다.











***











적당한 때가 이르렀을 때, 엘리제는 설렁줄을 당겼다. 오래지 않아 시녀장 케이트가 방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그녀는 단정한 차림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전하께서 늦게까지 업무를 보시는구나. 야식을 좀 가져다드리고 싶은데 준비해 주겠니?”



“어제 받아온 포도주와 햄, 치즈는 어떠신가요?”



“딱 좋을 것 같네.”







떠올리니 새삼 군침이 돌았다.







“간단하게 입고 가실 옷도 가져올까요?”



“음… 그럴까?”







케이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네. 제가 골라 드릴게요.”







의욕적으로 드레스 룸에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엘리제는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나 눈치가 빠르다니까.’







엘리제의 예상대로 케이트가 가지고 나온 옷들은 하나같이 야했다. 축약하여 말하자면 망사와 레이스로 된 야한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참으로 유능한 시녀장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