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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로 엘리제의 외투 앞섶을 움켜쥐고 있던 루카스가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멱살을 놔주곤 제가 구긴 옷깃을 툭툭, 털어 펴주었다.







“클랜튼 경!”



“아,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감정이 좀 격해져서….”







루카스를 지나쳐 허둥지둥 마차에서 내리는 엘리제를 블레이크가 붙잡아 주었다. 휘청이던 그녀의 몸이 블레이크의 품에 안착했다.







“정말…입니까?”



“네. 정말이에요.”







엘리제는 그에게 기댄 채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그의 녹색 눈엔 여전히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가세요, 오라버니.”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루카스는 그들 부부에게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곤 마차 문을 닫았다. 멀찍이서 대기 중이던 마부가 허둥지둥 달려와 마부석에 올랐고, 곧 마차는 출발했다.







엘리제는 클랜튼 후작가의 검은색 마차가 멀어지는 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블레이크는 볼 수 없겠지만 그녀의 입술엔 미소가 내걸려 있었다. ‘남주의 약점을 쥐게 된 악역 여조의 다소 야비해 보이는 미소’였다.







마차가 성문을 통과하자 비로소 반지의 진동이 멎었다. 엘리제는 미소를 거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 괜찮습니까?”







블레이크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엘리제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물론 그녀의 머릿속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대체 그 상황에 멱살을 잡으면 어쩌자는 거야.’







본래대로라면 여민 망토의 매듭을 풀고 있어야 했다. 아마도 더듬더듬 매듭을 찾다가 안 풀리니 통째로 잡고 끌어올린 것 같은데, 그래서야 루카스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위협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타락한 연인> 속 프로이젠 대공은 대공비가 수상한 짓을 하는 것은 그리 개의치 않지만, 그녀를 해하려 드는 존재에 대해선 가차 없다. 대공비는 그러한 남편의 성정을 이용하여 몇 번이나 여주 주변인을 모함했고, 궁지에 몰았다.







‘하마터면 이야기가 틀어질 뻔했어.’







그녀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까 전 블레이크가 보인 살의는 고스란히 루카스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차라리 키스한 걸 들키는 게 낫지, 폭력은 안 돼.’







다음에 그를 만나면 이 점에 대해서 제대로 경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던 그가 시각을 확인하더니 엘리제에게 말했다.







“늦었군요. 오찬 시간이 지나버리겠습니다.”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그는 가볍게 미소 짓고는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가지요.”







그의 변함없는 태도에 안심하며, 엘리제는 그에게 팔짱을 꼈다.







블레이크와 함께 성으로 돌아와 복도를 걸으며 엘리제는 지나간 장면을 다시 한번 쭉 되짚어 보았다. 자신이 연기한 부분에 대한 모니터링은 배우로서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크게 실수하진 않았지만, 루카스의 이상 행동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어. 좀 더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도록 표정 연습을 해야겠어.’







그 정도 수준의 발연기를 펼치는 배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마차 앞에서 그가 짓고 있던 괴상한 표정을 본 순간, 엘리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었다.







‘그래도 루카스…. 키스만큼은 금방 늘던데.’







엘리제는 부풀어 오른 입술을 무심코 매만졌다. 처음엔 분명 서툴렀지만 금세 적응해선 훌륭하게 키스씬을 완수했다. 그놈의 멱살 사건만 아니었어도 꽤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영화의 남주인 만큼 앞으로 루카스가 연기해야 할 건 키스뿐이 아니다. <타락한 연인>이란 제목에 걸맞게 매우 다양하고 음란한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뻣뻣한 나무토막처럼 굴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을 듯했다. 뭐든지 한 번씩 해보다 보면 몸으로 익히지 않을까.







생각에 열중하는 사이 어느덧 두 사람은 만찬실 앞에 다다랐다. 어제와 달리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제는 식당 안에 들어섰다.







문 앞에 준비돼 있던 은쟁반의 물로 손을 씻고 수건을 받아 닦았다. 그의 에스코트를 기다리며 조용히 서 있는데, 손을 닦은 블레이크가 수건을 내려놓으며 시종장에게 명했다.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모두 나가 있도록.”







그의 명령에 시종장과 시녀장을 비롯한 사용인들 모두가 만찬실 밖으로 나갔다.







‘응…?’







의아한 마음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있으려니, 그의 새파란 눈이 그녀를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던 눈빛이 어쩐지 사나워 보였다.







‘설마….’







엘리제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자가, 그토록 부인을 험하게 대해도 부인은 그가 좋습니까?”







명백히 화난 목소리였다. 사용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이제까지 화를 억누르고 있던 걸까? 잘 넘어간 줄 알고 미처 대비하지 못했기에, 엘리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그가 성큼 그녀에게 다가섰다.







“대답해 보십시오. 그로 인해 웃고 울만큼, 그가 소중합니까.”







점점 낮아지는 목소리. 엘리제는 고민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타락한 연인>에 대공부부의 이러한 갈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이니까요?”



“이제는 내가, 부인의 가족입니다.”







‘누, 누가 뭐래? 왜 저렇게 무서운 얼굴로 말한담.’







가슴이 맞닿을 만큼 바짝 다가선 그가 엘리제가 두르고 있던 외투의 여밈 매듭을 잡아당겨 풀었다. 스륵, 미끄러져 떨어지는 감색 외투 아래로 얇고 하얀 드레스가 드러났다.







“이런 차림으로 기사단까지 걸음 하였군요. 그를 만나러.”







그리 야한 차림도 아니건만, 그의 눈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미 서로의 몸이 맞붙어 있는 상태임에도, 그는 조금 더 바짝 몸을 붙여왔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엘리제의 엉덩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닿았다. 홀 중앙의 기다란 대리석 테이블이었다.







그는 테이블에 막혀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곧 음식이 나올 텐데.”



“부부가 다정히 대화 나누는 걸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의 손이 드레스 속으로 들어왔다. 페티코트가 없으니 드레스는 손쉽게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갔다.







다리 사이로 파고든 그의 손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 닿았다. 팬티를 젖히며 갈라진 틈을 헤집었다.







“흐윽…!”



“젖어 있군요. 나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녀에게로 고개를 기울인 그가 혀를 내밀어 그녀의 턱부터 입술까지 단번에 핥아 올렸다.







엘리제는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가 혀로 핥아 올린 곳은, 아까 루카스와 키스할 때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내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흔적이 남아 있었나?’







“나를 봐야지요.”







낮게 속삭인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킬 듯 머금었다.







“흐읍….”







심적 동요를 들키지 않으려 엘리제는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입술을 빨고 혀를 밀어 넣으며, 그는 그녀의 아래를 손가락으로 들쑤셨다.







투명한 액체가 손을 적시자, 그는 손가락을 늘려 더욱 빠르고 격렬하게 그녀의 속살을 농락했다. 루카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타액이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지나친 자극에 배 속이 짜릿했다. 황홀한 쾌감이 눈앞을 하얗게 물들였다. 강한 절정감에 허리가 튀었다.







그런데도 그는 손가락을 빼지 않았고 오히려 엄지로 그녀의 음핵을 문지르며 한 손으로 바지 버클을 풀었다.







‘와, 이 남자 한번 뚜껑 열리니까 장난 아니네.’







엘리제는 버둥대며 그를 밀어내었다.







물론 그런 척만 하는 것이었지만 그게 꽤나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는 저를 밀어내는 엘리제의 손목을 붙들어선 위로 모아 고정했다.







“그가 부인을 이름으로 부르더군요.”







둥그런 귀두가 그녀의 입구에 비벼졌다. 그녀의 속내를 대변하듯 아래가 뻐끔거리며 그를 삼키려 들었다.







“말해 보십시오. 둘만 있을 때 부인은 그를 뭐라 불렀습니까.”



“그, 그냥 오라버니라고, 흐윽…!”







잔뜩 성이나 단단하게 부풀어 있던 기둥이 뜨거운 속살을 헤집고 끝까지 쑤셔 박혔다.







‘흐아아, 깊어…!’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눈앞이 흐려지며 입술이 벌어졌다.







“이름 부른 적, 없습니까?”







있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들었을 리 없는데. 엘리제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의 것이 입구까지 빠져나갔고, 단숨에 쑤욱 들어왔다. 굵은 귀두에 내벽이 긁히며 속살이 움찔댔다.







“그자보다 내가 더, 부인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걸 백번 공감하는 엘리제였지만, 대답할 새가 없었다. 그는 점차 속도를 높이며 자신을 박아 넣었다.







“어떻게 해야 나만 볼 겁니까. 나, 블레이크 프로이젠이야말로 부인의 남편이 아닙니까.”







그의 어조는 비난이나 질책이 아닌 애원에 가까웠다.







‘화난 게 아닌가?’







어쩌면 다른 시점에서 그의 말과 행동을 판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멈칫, 몸을 굳힌 그가 제 것을 빼내지 않은 채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식탁에 엎드린 자세가 되자 그의 것이 아까와는 다른 곳을 찔렀다.







그는 그녀의 골반을 붙잡고 부드러운 엉덩이에 퍽, 퍽, 제 몸을 부딪쳐 왔다.







“으응, 아, 아앗…!”







뾰족하게 곤두선 유두를 그가 꼬집듯 비틀었다. 얇은 드레스는 그녀의 몸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르고 애액을 토해낸 탓에 아래는 이미 흥건했다. 접합부를 온통 적시고도 모자라 허벅지를 타고 뚝뚝 흘러 바닥을 적셨다.







질컥질컥, 음란한 소리가 넓은 공간을 메웠다. 그의 거센 허리짓에 그녀의 가냘픈 몸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짐승 같은 교합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탐욕이 도를 넘어, 최초의 이유조차 잊었다.







연달아 두 번이나 파정을 하고 그녀의 목덜미를 왕, 왕, 몇 번이나 깨물고서야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











“미안합니다. 내가 과했습니다.”



“…….”



“부인….”







식사시간 내내 블레이크는 엘리제의 눈치를 살폈다. 따르던 오라버니에게 멱살 잡혀 흔들린 그녀를 위로해 주진 못할망정 투기하고 범했으니, 죄책감을 가질 법도 했다.







‘뭐, 남편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인데 말이지. 솔직히 기분도 좋았고.’







이토록 격렬한 섹스는 인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엘리제는 그를 쉽게 용서해 주는 대신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루카스와 세워둔 계획을 진행시키려면 블레이크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의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약속을 받아 두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