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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한 말이었다. 색사에 낮과 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엘리제는 마음속 깊이 그에게 수긍했다.







‘아니, 잠깐. 이게 아니잖아!’







엘리제는 재빨리 다른 핑곗거리를 찾았다.







“제가 조금 곤하여 쉬고 싶은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리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엘리제의 손목을 놓아준 대신 발목을 움켜쥐었다.







“그, 그럼 먼저 씻고 올게요!”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말인데 효과가 있는 듯했다.







‘아. 하지만 나만 욕실로 가면 루카스가 빠져나갈 수 없잖아. 어떡하지?’







팽팽 머리를 굴리던 엘리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기다리기 싫으시면, 같이…. 씻으러 가실래요?”







발목을 놓아주지 않은 채로 블레이크는 엘리제를 묵묵히 내려다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엘리제의 눈에 문득 무언가가 들어왔다.







‘헉…!’







그의 바지춤이 그야말로 터질 듯이 팽팽해져 있었다.







엘리제는 깨달았다. 그녀는 방금 잘못된 버튼을 누른 것이다.







‘같이 씻는 게 뭐 어떻다고.’







뒤늦게 울상을 지으며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의 새파란 눈엔 이성 잃은 욕망이 범람하고 있었다. 당장에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될, 아주 잠시도 기다려 주지 못할.







‘으으, 내가 미쳐.’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도발해 버린 꼴이 되었다.







“후우, 부인.”







툭, 툭.







벗겨진 엘리제의 구두가 차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의 양 발목을 잡고 침대 가장자리까지 끌어 내렸다.







“앗…!”



“같이 씻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내가 좀…. 참기 힘들군요.”







이제 엘리제는 엉덩이만 간신이 침대에 걸친 채 반쯤 누운 자세가 돼 버렸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양 발목이 그에게 잡혀 있어 불가했다.







“놔 주세요, 전하….”







젖혀진 드레스와 페티코트 아래, 흰색 타이즈에 감싸인 늘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물론, 그럴 겁니다.”







침대에서 내려간 그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바닥에 꿇어앉았다.







“전하…?”







‘저러다 침대 바닥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겠지?’







조금만 더 몸을 낮추면, 침대 밑의 루카스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놀란 엘리제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의 입술이 그녀의 발목 안쪽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살을 덥혔다.







“흣….”







그는 간지러울 만큼 부드러운 접촉으로 그녀의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웠다. 그녀의 연보라색 눈을 응시하며 입술을 비볐다.







그의 노골적인 눈빛과 야릇한 입맞춤에 엘리제의 눈가가 붉어졌다.







발목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입맞춤은 종아리를 거쳐 허벅지 가장 안쪽까지 이어졌다.







어젯밤 블레이크가 선사한 쾌락을 기억하고 있는 몸이 알아서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했다. 배 속이 뜨거워지며 조금씩 밀액이 배어 나왔다.







‘이럴 때가…. 아닌데….’







엘리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침내 그의 입술이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에 닿았다. 이미 젖어 있는 얇은 천 위를 그가 느릿하게 핥아 올렸다.







“아…!”







절로 고개가 젖혀지며 엘리제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전하, 그만….”



“샅샅이 맛보고 싶습니다. 부디 다리를 더 벌려주시겠습니까.”







거친 숨결에 실린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부탁이었지만 그녀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의 다정했던 모습과 다르게, 지금의 그는 몹시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머뭇머뭇 다리를 벌리자 그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잘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골반 어름으로 손을 넣어 속옷의 이음새를 투둑, 끊어냈다. 축축하게 젖은 천이 그녀의 음부에서 떨어져 나가며 투명한 실이 끈적하게 이어졌다.







“예쁘게 젖었군요.”







엘리제는 이 정도 행위와 이 정도 언사에 얼굴을 붉힐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과 몸은 온통 발개져 있었다.







‘으으, 이 남자 너무 야해…!’







지금 엘리제의 머릿속엔 침대 밑에 숨어 있는 윗세계 요원 따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붉은 혀가 도톰한 꽃잎 틈새를 길게 핥아 올릴 때마다 배 속 깊은 곳이 움찔거리며 조여들었다. 배우 생활을 하며 여러 남자와 밤을 보내 봤지만, 이토록 정성껏 아래를 빨아준 이는 없었다.







‘혹시 모르지. 그놈은 이렇게 해줬을지도.’







그 오랜 세월 전혀 내색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그녀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 남자. 평생의 동료요 라이벌이었던 남자. 그와 잠자리를 가졌더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 마주한 그의 눈빛은 그 정도로 미쳐 있었으니까.







“조금 부은 것 같은데. 어젯밤, 많이 아팠습니까?”







엘리제는 그의 새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목덜미를 물었을 때처럼, 희미한 죄책감이 비치고 있었다.







“…참을 만했어요.”







가까스로 호흡을 고르며 엘리제가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여자를 잘…. 몰라서.”







날카롭게 뻗은 그의 눈꼬리가 아래로 살짝 처졌다.







“나 때문에…. 내가 부인의 이곳을, 이렇게….”







‘많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려 볼까? 잘하면 그만둘 것 같기도 한데.’







그리 생각하며 엘리제가 무릎을 오므리려던 순간, 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꾹 잡아 눌렀다.







“이대로 두어선 안 되겠습니다.”



“…네?”







뭔가 버튼이 한 번 더 잘못 눌린 기분이었다.







“내가 가라앉혀 주겠습니다.”



“자, 잠깐….”







그의 혀가, 속살을 파고들었다.







“아…!”







부풀어 다물려 있던 입구를 비집고 들어온 살덩이가 어루만지듯 내벽을 쓸었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조금씩 더욱 깊이까지 들어왔다.







성기나 손가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지독히도 섬세하여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오뚝한 그의 콧날에 예민한 부분이 눌리며 자꾸만 아래가 젖어 들었다. 점점 커지는 물소리가 지독히도 음란했다.







“시, 싫어…!”







자극이 너무 심했다. 고통스러울 지경이라 엘리제는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고 격렬하게 쑤셔댔다. 입을 벌려 아래를 빨아대며 야하고 게걸스럽게.







허리가 들리며 고개가 젖혀졌다. 움켜쥔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거센 쾌감에 휩쓸린 엘리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하아, 하아….”







애무당한 건 엘리제 쪽인데 블레이크의 호흡이 더 거칠어져 있었다.







타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가 빠르게 버클을 풀었다.







‘맙소사, 안 돼!’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엘리제의 손과 발이 그를 밀어내기 전에 그의 것이 먼저 그녀에게 닿았다. 굵고 단단한 것이 쑤우욱, 박혀 들었다.







“흐윽…!”







절정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삽입된 남자의 성기는 단번에 그녀를 오르가슴으로 이끌었다. 엘리제는 꼼짝도 못하고 이불만 쥐어뜯었다.







“기분…. 좋습니까?”







엘리제의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한쪽 무릎을 침대 위로 올린 블레이크가 더는 불가할 때까지 제 것을 밀어 넣었다.







“나도 그렇습니다. 참을 수 없이, 윽…. 좋군요.”







대꾸는커녕 신음 한마디 뱉지 못하는 그녀를 새파란 눈으로 내려다보며 그는 퍽,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허리짓을 했다. 굵은 귀두가 사정없이 내벽을 긁었다.







삽입만으로 이만큼 기분 좋았던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엘리제의 속살은 블레이크의 페니스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극치의 쾌감을 쫓았다.







루카스를 의식하여 신음만은 참아 보려 했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엘리제는 연기가 아니고서야 상상도 못할 표정과 목소리로 야하게 울었다.







밀물처럼 연달아 찾아오는 절정감에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새로 얻은 몸이 원래의 몸보다 몇 배는 민감한 것 같았다.







‘주, 죽을 것 같아.’







“그렇게 조여 대면…. 큭, 견디기가 힘듭니다.”







엘리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래! 어서 싸라!’







파정 후 그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바로 욕실로 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윗세계 요원이고 뭐고 나부터 살고 봐야지.’







엘리제는 작정하고 그를 조여댔다. 윽, 앓는 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린 그가 완전히 침대 위로 올라왔다.







“엘리제.”







낮고 거친 목소리로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곤 그녀의 허벅지를 양쪽으로 붙잡아 벌리며 내리찍듯 몸을 붙여 왔다. 그의 것이 그녀의 가장 깊고 예민한 곳을 찌르고 문질렀다.







“이, 이건 너무 깊, 흡…!”







겨우 한마디 하려던 차에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입 안을 헤집듯 범하는 그의 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엘리제는 그가 흘려 넣는 타액을 꿀꺽꿀꺽 받아 마시며 애타게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가능한 모든 부분을 그가 채우고 있었다. 이로 인한 만족감을 엘리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남자와 밤을 보낼 때 그녀가 가장 원했던 게 바로 이러한 만족감이기에.







사랑하진 않지만, 열렬히 사랑을 주고받는다. 섹스는, 사랑을 배우지 못한 그녀가 제 결핍을 어떻게든 채워 보려 선택한 사랑의 유사행위였다.







이토록 열렬히 자신을 탐하는 남자를 대할 때 그녀는 잠시나마 착각할 수 있었다. 몸의 행위가 심장을 데우고 있노라고.







언제 어깨끈을 끌어내렸는지, 훤히 드러난 가슴을 그가 난폭하게 주물렀다.







곳곳에서 주어지는 거센 자극에 엘리제의 몸이 다시금 절정감에 휩싸이는 찰나, 안 그래도 굵고 단단했던 그의 것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입술을 떼어낸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한층 더 격해지는 몸짓. 입구까지 빠져나갔던 그의 것이 거세게 박혀 들며 정액을 토해냈다.







“흐읏!”



“윽…!”







하얗게 점멸하는 시야.







떨림이 가라앉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백 미터를 전력으로 질주해도 이처럼 숨이 가쁘진 않을 것이다. 몇 번이나 움찔거리며 제 안에 남은 액을 모조리 뱉어낸 그의 것도 서서히 진정돼 가고 있었다.







“후우….”







엘리제는 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서서히 몸의 긴장이 풀리자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와, 정말 엉망진창으로 섹스했네.’







비쌀 것 같은 드레스는 회생 불가처럼 보였고, 그가 한 번 싸는 동안 자신은 몇 번을 간 건지 모르겠고, 침대 밑의 윗세계 요원은….







‘어…. 음….’







엘리제는 무념무상을 선택했다. 밀려오는 수치심에 머리를 쥐어뜯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더 경악할 일은 그때부터 벌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듯 그가 느긋하게 허리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하?”



“아, 이런. 불편했겠군요. 먼저 벗겨 드려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만.”







그리 말한 블레이크가 그녀의 드레스와 페티코트를 한 번에 쥐고 양쪽으로 쫘악,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이런 미친…?’







기가 차 얼어붙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낮에 보는 부인의 몸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제대로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