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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대공비의 위험한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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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살이 한가득 비쳐드는 방 안과 다르게 성의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문 앞에 우뚝 선 남자 역시 복도의 어둠에 묻힌 듯 보였다.







그녀의 심장이 괜스레 쿵쿵쿵 뛰었다. 못된 짓을 하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를 내색할 그녀가 아니었다.







“들어오세요.”







엘리제는 눈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한걸음 비켜섰다.







방 안에 들어선 그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리곤 뺨에 입을 맞췄다.







“쉬고 있었습니까.”



“네. 조금 노곤해서요. 전하께선 무슨 일로….”



“일이 있어야 보러 올 사이는 아니지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엘리제는 어제부로 그, 블레이크 프로이젠 대공의 아내가 되었고 이곳은 그들이 어젯밤 초야를 함께했던 침실이었다.







그러나 남편을 기쁘게 반기기엔 지금 그녀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결혼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아내의 침대 밑에 그녀의 의붓오빠가 숨어 있는 걸 발견하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아….”







그가 바짝 몸을 붙여 오는 바람에 엘리제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하지만 지금은 용건이 있어 들렀습니다.”







다소 긴장한 듯한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난밤에 내가 부인의 침대를 망가뜨렸지요.”







엘리제를 놓아준 그가 침대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혹시 그가 침대 밑을 살피기라도 할까 봐, 엘리제는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







침대 머리맡 앞에 멈춰선 그가 금이 간 나무판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툭툭 두드렸다.







“아무래도 침대를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견고하고 안락한 거로.”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엘리제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초야를 보내다 침대를 망가뜨린 새신랑이라니. 제법 마음에 드는 설정 아닌가.







그러나 지금 엘리제는 블레이크의 발치에서 겨우 몇 뼘 떨어진 곳에 누워 있는 루카스로 인해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그래서 미소만을 살짝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세요.”



“혹시 원하는 재질이나 디자인이 있습니까?”







엘리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침대에 걸터앉아 ‘음…’ 하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적어도 침대 밑을 들여다보려 허리를 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치마 속을 들여다볼 목적이 아니고서야.







“침대는 전하께 맡길게요. 최대한 튼튼해야 할 것 같네요.”







엘리제는 침대 헤드를 쥔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톡톡 두드렸다.







“아무래도, 힘이 넘치셔서.”







순간, 그의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런.’







그저 장난스러운 말과 행동이었다. 엘리제의 행동에 그를 자극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뒤늦게 뜨끔한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그녀의 손이 제게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급히 붙잡았다.







“부인.”







손목을 움켜쥔 거센 힘에, 엘리제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넓고 단단한 가슴과 툭 튀어나온 목울대를 지나 그의 새파란 눈이 엘리제의 시야에 들어찼다. 어느 샌가 자리한 짙은 정염이 그 안에 뜨겁게 일렁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몇 번이나 갈망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블레이크는 이대로 넘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차피 바꿀 침대, 조금 더 망가뜨린들 상관없겠지요.”



‘맙소사.’







이미 늦었다.







그에게서 전해져 오는 열기와 숨소리만으로도 엘리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











엘리제는 죽었다.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마음껏 놀아 보려 작정한 바로 그날에 어이없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중간지대. 천국과 지옥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으로 ‘선’ 측 혹은 ‘악’ 측 존재들이 현실 세계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경찰 노릇도 담당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환상 컨트롤타워’에 배속받았고, 곧바로 타워의 (임시) 조사관 신분이 되어 시나리오 속에 파견됐다.







<타락한 연인>







엘리제가 마지막으로 출연을 제안받았던 영화였다.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그러하듯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시나리오였고, 캐스팅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안타깝게도 제작은 무산됐지만.’







지금 이 시나리오 안엔 엘리제를 포함한 다수의 빙의자가 득실거렸다.







[최근 일이 년 사이 다른 세계 존재들의 환상계 침입이 잦아졌네. 빙의한 이들이 예정되지 않은 경로로 이야기를 트는 일이 잦아지며 생겨난 후폭풍을 우리가 다 감당해야 했어.]







엘리제의 새로운 보스, 필립은 <타락한 연인>에도 수상한 빙의자들이 침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여, 그들의 배후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관들을 대거 투입했다.







[그러곤 연락이 끊겼네!]







그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자네는 매우 뛰어난 배우지. 어느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도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을 걸세. 그러니 부디 우리 조사관들을 구해 주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들을 구해서 제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뭔데요? 혹시 실적을 많이 쌓으면 저 위에 갈 수 있다거나?]



[저 위?]



[네. 천국? 극락? heaven? 뭐, 그런 곳이요.]



[아아! 그래.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많이 미치면 전업할 수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대신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자네가 원하는 이야기 속 배역으로 장기 휴가를 보내 주겠네.]







배우로 살아온 그녀에게 ‘원하는 이야기 속 배역’이란 제안은 ‘저 위’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 때문에 엘리제는 자칫 갇힐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시나리오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배역은 프로이젠 공국의 대공비, 시작 시점은 신혼 초야. 목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신랑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 엘리제는 캐릭터 설정값에 빙의, 연기를 시작했다.







본래 맡기로 했던 배역은 아니었다. 심지어 대본을 들춰볼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엘리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신인 딱지를 뗀 후부터 그녀는 거의 NG를 내는 법이 없었다.







어차피 후작가의 금지옥엽이 신혼 초야, 침대 위에서 보일 모습이란 뻔하지 않은가.







“전하….”







그러니 지금, 남편 블레이크를 올려다보는 엘리제의 눈빛과 표정은 매우 그럴듯했다.







두려움과 수줍음이 혼재되어 정처 잃고 흔들리는 동공, 물기 어린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엘리제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제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워낙에 실감 나게 연기한 탓에 상대 배우가 그녀의 마음을 착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블레이크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목을 움켜쥔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에 반응하여 엘리제는 아주 살짝 몸을 비틀었다. ‘아아’ 하는 신음도 빼놓지 않았다.







허벅지에 닿아 있는 그의 것은 진작부터 단단했다. 사실,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기도 전부터 이미 그의 아래는 부풀어 있었다. 엘리제에겐 흔한 일이었다. 그녀와 밀도 높은 스킨십을 연기했던 배우치고 페니스를 세우지 않았던 건 게이뿐이었다.







엘리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랑한 허벅지로 그의 굵은 살덩이를 비볐다. 그저 꼼지락대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남자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연기이기에 더더욱, 상대 배우의 몰입을 끌어내는 건 중요했다.







역시나, 그가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블레이크의 손이 다소 우악스럽게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허벅지를 움켜쥔 악력에 엘리제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불평하진 않았다. 어정쩡하게 구느니 마음먹고 제대로 하는 편이 나았다.







엘리제는 그녀의 초반부 대사를 떠올렸다. 살짝 목을 가다듬고는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만, 살살….”







그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리곤 애처롭게 애원했다.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않는다. 어차피 모든 대사의 목적은 문밖에 선 이를 위함이었다.







이 거대한 성의 방음이 그 정도로 형편없을 리 없건만, 본래 창작 세계란 다 그런 법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엘리제는 신음을 흘릴 때마다 복부에 힘을 줬다. 연극이나 뮤지컬에도 종종 출연할 만큼 그녀의 발성은 훌륭했다.







한계를 넘은 듯, 블레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예쁘게 매듭지어 있던 엘리제의 침의 허리끈을 뜯어내듯 풀어냈다. 거추장스럽게 걸쳐져 있던 제 침의도 침대 아래로 벗어 던졌다. 하얀 휘장 너머, 은은히 비쳐드는 달빛에 남녀의 벗은 몸이 야릇하게 드러났다.







엘리제는 드러난 그의 몸을 빠르게 스캔했다. 얼굴만 훌륭한 줄 알았더니 몸매 또한 정확히 그녀 취향이었다. 최근 엘리제의 상대 배우들이 얼마나 쟁쟁한 이들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이는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윗세계 요원이라더니, 과연.’







과하지 않게, 그러나 빈틈없이 들어찬 근육이 그녀의 부드럽고 말랑한 몸을 내리눌렀다. 여자를 기분 좋게 만들기에 적정한 무게감이었다.







엘리제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데워진 숨결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단단한 그의 어깨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딱딱한 기둥이 비벼졌다. 선단에 방울져 맺혀 있던 액체와 그녀의 밀지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뒤섞였다.







‘아…. 이건 좀 위험한데….’







배 속이 뜨끈해져 오고 있었다. 접촉의 수위가 생각보다 높았다. 진짜 현장이었다면 ‘공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이와 같은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으응….”







조금씩 엉덩이를 들썩여 그의 것을 피해 보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리어 아래쪽, 맞닿은 부분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 왔다.







“향유는, 딱히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거칠어져 있는 호흡과 섞여 나와 한층 관능적으로 들렸다.







실제로 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엘리제는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한편 겁먹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긴장하면 더 아플 겁니다.”







아. 이 대사가 마지막이었다. 이제 문밖의 남자주인공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피할 것이다.







“전하….”







엘리제는 대본대로 그를 불렀고, 장면 전환을 알리듯 약지에 끼워진 반지의 진동이 멎었다.







긴 숨이 내쉬어졌다. 어떻게든 넘겼다는 생각에 몸의 긴장이 풀렸다. 블레이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엘리제는 살짝 미소 지은 채 그를 올려다봤다.







뭐라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까. 성공리에 첫 합을 맞춘 윗세계 요원과 중간지대 조직원끼리의 첫 대화면 역시 자기소개부터일까. 아니면 이후에는 어떻게 서로 협조하며 움직일지에 대해 논해야 할까.







엘리제가 고민하는 사이, 예상했던 대로 그가 몸을 물렸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뭐, 뭐야. 얘 왜 이래.’







그의 것이 어느 한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적당히 올려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지점, 밀액을 흘리는 여성의 가장 은밀한 부분. 마치 진짜 파고들려는 듯, 둥근 선단이 그곳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