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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경.희. - 26부
"화....끈해? 어떻게?"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이 목놓아 꺼이꺼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눈앞에 들어오는 김과장이 잠시 누군지 기억이 안났으며 내가 어떻게 이 친구와 엮어지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가슴을 주무르며 사근사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블랭크현상이 찾아왔다.

"아니.. 좀 그렇더라고요. 그 부부 애정도 없는 것 같고... 나 그렇게 술 잘 마시는 중년 여성은 처음 보는 것 같았어. 오빠 친척 이야기라 기분 나쁜 거 아녜요?" 태주가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내게 깊은 호응을 얻고 있는 화두를 제 입으로 발굴해낸 듯한 득의양양의 표정을 건넸다.

"그랬어? 우리 외숙모에 그런 면이 있었단 얘기라? 오호.. 이거 흥미가 상당히 진진스러운데... 무슨 일이 일어난건데? 말해줘. 궁금하면 두드러기 나, 나."

"아니.. 좀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서..." 그녀가 부릉부릉 발동을 걸고 있는 시발점의 경주차 같았다.

"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말빨 좋은 자기가 얘기해 주면 진짜 스펙타클 그 자체겠는데. 아.. 기다려진다." 태주의 입을 열기 위해 약간의 동기부여용 알랑방귀가 필요했고, 아 잠깐만, 그 얘기 듣기 전에 이쁜 너에게 뽀뽀 한번 하구서.."하고 입술을 쭉 빨아줬다. 한손으로 내 가슴을 퉁 치며 이그으..하며 김과장이 입을 열었다. 내 입술이 타들어갔다.

"사장님이 김변호사님 댁에 초대받았다고 나랑 같이 가자구 그래서 같이 갔어요. 집도 크데.. 변호사는 다르긴 다르구나하구선, 저녁 먹고... 음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거실에서 술을 한잔 하게 되었어요.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이며 고급 가구들, 고혼가 고갱인가 그림도 있고.. 참 좋더라, 그 집.. 나도 그런데 살아봤으면...참, 오빠는 더 잘 알겠구나... 호호호, 난 꼭 삼천포로 빠진다니깐.." 군더더기 가득찬 나레이션 극치를 달리던 김과장의 이야기에 괜히 너 말빨 좋다 아부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인내심이 필요하긴 했다.

"술먹다가 업무 이야기 나오고 정치 이야기 나오고 해서...따분하기도 하고.. 서재며 베란다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변호사님이 김과장님처럼 미인하고 꼭 해야될 놀이가 있다며 나를 큰 소리로 부르더라." 김태주가 내게 말을 놓건 안 놓건 괜히 시비붙여 이야기를 끊고 싶지는 않았다. 담배를 하나 불붙여 물고 연기가 김과장에게 가는 걸 막으려 손사레를 쳐줬다. 김과장이 괜한 마른 기침을 쿨럭쿨럭 하며 약간의 인상을 써, 내가 미안.."했다.

"오빠, 왕게임 알죠? 요즘 X세대들이 많이 하며 노는 게임 중 하난데, 누군가 왕으로 선발되면 다른 사람 누구에게나 명령을 할 수 있고 그 명령을 받은 사람은 그 명령이 무엇이건간에 죄다 따라야 해. 옷을 벗으라면 벗고 다른 사람과 뽀뽀를 하라면 하고.." 김태주의 설명의 세세하고 친절함에 피우고 있던 담배를 그녀의 아가리에 쳐넣어 지져대고 싶었지만, 옷을 벗고 뽀뽀를 해야 한다는 그녀의 설명에 그 날 정말 일이 있어도 된통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걸 하자는 거야 대체. 나는 얼마나 놀랬겠어? 몇번 안본 사람들하고 그런 게임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다 중년에 배 나오고..그리고 오빠 삼촌은 대머리에... 밑져도 한참 밑지는 짓거리를.. 호호 우습지,오빠? 그래서 사회 생활 하기가 힘든거예요. 하기 싫은 일도 상사 비위에 다 맞춰주고 살아야하니.. 확, 시집이나 가버릴까?" 김태주가 잠시 내 얼굴을 보며 의중을 살피는 것 같길래, 그래서 자기가 대단하다는 거야. 웬만한 남자들도 그런 자리 오래 버티지도 못할껄? 진짜 용감하다, 자기라 중간 주유를 해줬다.

"그래서 네 사람이서 왕게임을 하고 놀았다구요.... 이상, 끝!" 하마터면 주먹이 올라올 뻔 했으나 어금니를 앙당물고 이겨냈다.

"에에이.. 왕게임을 어떡하구 놀았냐니까?

"아이 참, 뭐 그런 걸 자꾸 알려구래?" 김과장이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었다. 그녀의 턱을 들어 그녀에게는 짧을 키쓰를 해주며,

"나 실은 그 부부에게 삼촌 조카 사이지만 억하심정이 좀 있어. 사업자금으로 쓸지 결혼자금으로 쓸지 고민했던 나에겐 큰 돈이었는데... 갚는다 갚는다 하고 아직이야." 결혼 자금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자극이 될 것이라 자신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이야기 만들어내는 내 거짓말 실력이 하늘을 찌른다 싶었다. 딱벌어진 홍석이의 얼굴이 떠올랐던 이유는 왜일까도 내심 궁금했다.

"정말? 얼마나 되는데?" 그렇지, 니 관심은 그런거지.. 생각이 들었다.

"한 두장 정도.. 장가도 못가게 생겼어, 그 돈 떼이면. 그니깐, 태주씨 알겠어? 내가 그 부부들 뭔가를 잡고 있어야 뭐라도 큰 소리를 좀 치지. 오늘 자기를 만난것 너어어무 다행이다. 당신은 행운덩어리야." 그녀의 왼가슴에 손을 얹고 오른쪽 목덜미와 귓볼에 부드러운 입술맞춤을 해줬더니 눈을 지긋이 감고는 금새 손을 뻗어 내 기둥을 움켜쥐었다. 내가 입술을 떼어 그니깐.. 자기야 얘기해줘라, 응?이라 하자, 그녀가 아쉬운 듯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이에게 넌 좀 커야 이런 말을 해줄텐데..의 표정으로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내게 다시 돌아누운 그녀의 왼손은 내 기둥을 놓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예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오빠, 그럼 내가 그런 게임해야 했었다는 거 이해해야 해, 응? 그거 회사일이잖아. 나, 죽는 것보다 더 싫었었어. 그리곤 다시 묻지 않기로...약속."

"그럼, 나 너 이해해. 아마 이야기 듣고 나면 너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될거야. 한심한 철딱서니 쑥맥보다 너처럼 강한 여자가 좋아."

김 태주가 끊어졌던 이야기 끝을 다시 더듬어 찾아 이어나갔다.

"게임이 시작되고.. 벌칙으로 폭탄주가 돌고... 술 좀 먹는다는 나도 한 세 잔 마시니깐 좀 정신이 없어질라 하는데, 그 때 오빠삼촌이 왕이었나 했을때 자기 마누라.. 아니 미안, 와이프가 걸렸을 때 웃옷을 벗으라는 거야. 나나 사장님이나 맨첨엔 얼마나 놀랬는데..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와이프가.. 아무런 거부 반응없이 순순히 일어나서 원피스를 허리까지 내렸다? 브라쟈만 입었는데.. 오빠네 삼촌부부.. 혹시 영화에선가 봤던... 거 뭐...있잖아.. 부부끼리 서로 파트너 바꾸고... 응?" 입 안에 삼킬 침도 없었다.

"내 생각엔.. 꼭 그런 걸 즐기는 부부같았어. 옷벗기기가 시작되니 또 다들 그것만 시키데? 사장님도 김변호사님도 빤쓰만 입고 오빠 삼촌 와이프도 브라쟈랑 빤스만 입고... 근데 나는 용케 몇번 안 걸렸다? 스타킹도 신고 속치마도 입고...내가 원래 옷차림엔 정확한 사람이거든.." 니가 보지털을 내놓고 있던 오리털파카를 입고 있던 내 알 바는 아니다라 속으로 고래고래 내질렀다.

"그 다음엔 오빠 삼촌이 신났나고 게임을 계속 진행시키는거야. 그게 뭔지 알아? 두 사람씩 시켜서 뽀뽀를 하게 하는데, 왕이 지정한 시간동안 입을 떼면 안되는거야. 내가 왕이 되어 사장님과 오빠 삼촌하고 뽀뽀를...한 십초 시켰는데, 얼마나 웃기던지...지금 생각해도...오호호호..." 김과장에겐 잊지못할 즐거운 기억이자 경험에 틀림없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외숙모가 자리도 안 뜨고 그걸 다 했어?"

"에이.. 내가 보기엔 베테랑이라니까.." 내 눈에서 불이 나왔다.

"어...떻...게..?"

"사장님하고 그 와이프하고 키스할 때가 제일 압권이었어. 그 여자가 먼저 사장님에게 다가갔고 사장님이 그 여자를 무릎에 앉으라 하고... 얼마나 찐하게 뽀뽀를 하던지... 초를 재는 나도 잠시 쳐다보기만 했다니까. 내 생각엔...." 숨이 끊어진 나의 얼굴을 보며 김과장이 왜그래? 묻자 나는 "아니이..했다.

"내 생각엔.... 오빠 삼촌이 사장님에게 접대를 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듣기론 우리 회사 소송건만 생기면 김변호사님에게 대 간다고 들었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마누라가 딴 남자하고 그렇게 붙어먹는데 박수치고 웃고... 그래, 그렇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오빠 결혼 자금 떼어먹는 사람들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겠다."

"..그리고, 또 어떻게... 되었는데?" 혀도 석고처럼 굳었다.

"아이 이제 그만하자. 나 쪽팔려."

"..그러지..말고.. 다 얘기해줘. 나 꼭 그 사람들에게 돈 돌려받고 싶어." 말하기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씨, 그만하고 싶은데. 알았어, 그럼. 그러다.. 그러다.. 응, 맞다. 사장님이 왕이구 그 와이프가 또 걸리자, 그 여자의 제일 야한 옷을 방에 들어가서 입고 나오라고 그랬어."

"...."

"그 여자가 방에 들어가 한참 있더니 다시 나오는데... 그야말로 어머머머였어. 화장도 다시 하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브라자도 안 하고 속이 다 비치는 나이트웨어를 입고 나왔는데... 입이 딱 벌어져 말이 안 나오더라. 그 나이에 예쁘긴 하더라 오빠 외숙모... 피부는 하얘갖고.. 후우.... 나도 이 놈의 술자리만 아니면..옛날엔 피부가 좋았었는데.." 김태주의 말이 웅웅웅 벌떼가 지나가는 소리로 들렸다.

"그... 다음엔 사장님이 활딱 벗었다. 빤스도 안 입고 그것도 덜렁덜렁... 오호호 아니다 딸랑딸랑.. 오호호호.."

"......."

"음...그리고 오빠 삼촌도 다 벗고..그리구..음..음.." 이야기를 끝까지 다 해줄 심산으로 들렸다.

"애들은? 애들은 집에..없었어?"

"외갓집인가 보냈다던데? 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 아주 첨부터 작심을 한 거였었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방에 자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장의 집요함을 뿌리쳐 도망다녔다는 숙모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음.. 삼촌이 시켜서...박사장이 그 여자에게 애무를 하라 그랬어. 사장님이 달려들어 가슴이랑 거기랑 뽀뽀를 하는데... 난 참 기가 막혔어. 그런 일들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상상해봐. 사장님하고 그 여자가 소파에 올라가서... 사장님이 그 여자 거기를 막 뽀뽀하고.. 그런데.. 오빠삼촌이 나한테 와서.... 막 만지구.. 어..어떡해? 근데, 오빠 나 별 일은 없었어.."

"후우우우.." 내 한숨이 크크크크 소리가 더 맞았다. 김과장은 자신의 당시 상황에 내가 속이 상한 줄 알고 정말이야, 나 별일 없었어..를 몇번 반복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사장님더러 방에 들어가자 먼저 그랬어. 방문을 닫자 사장님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그 부부 침대에서... 나는 너무 겁이 나서 벌떡 일어서는데 오빠삼촌이 자꾸 뒤에서 만지고.. 그 방에서는...하는 소리가 들리고... 사장님 소리도 들리고 그 여자 소리도 크게 들리고...아..." 김과장이 지 말에 뻑이 가는지 갑자기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내 기둥을 입에 물어 삼키고는 어어 소리를 내며 빨아대기 시작했다. 바이아그라 약발이 아직 잔뜩 들어간 그 기둥은 그저 내가 내린 명령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다시금 제 임무에 충실하려 단잠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호텔 방 천정에는 어릴 적 배웠던 소피아성당의 대표 무늬같은 게 규칙적으로 펼쳐져 있어, 그것이 몇 개의 조합인지 하나, 둘, 셋.. 갯수를 세기 시작했다. 박사장의 육중한 몸뚱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왜소한 성기를 몸을 엎드려 뒤로 받아내는 숙모의 표정은 더이상 괴로움이나 학대받음이 아닌 쾌락과 환희 그 자체였다.

기...가......막혔다.

폭력이라 말하는게 나을 피스톤 운동을 김과장에게 퍼부어 주고는 그녀가 곯아 떨어지기 직전, 내일 만나 회사 장부 샘플을 좀 보자는 약속을 주지시키고 나 놔두고 갈거야? 라는 말을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는 눈이 벌겋게 피를 흘리고 있는 말 한마리가 서 있었다.

새벽 한 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담배를 하나 더 피우고 시동을 걸었다.

삼촌과 혜주가 산다는 아파트 앞이었다. 삼촌이 잠결에 어..니가 왠..일이야..? 쉰소리로 전화를 받고 호수를 가르쳐 주었다. 문을 열어 준 삼촌 뒤로 잠옷을 겨우 걸친 혜주도 보였다.

"니가 왠일이냐?" 삼촌이 방금 잠에서 깨어나서 그런지 숱없는 머리가 더 듬성거렸고 혜주 덕인지 얼굴도 반쪽이 되어 있었다.

"........"

"들어와라, 들어와.."

거실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삼촌이 내 오른편 나홀로 소파에 앉고 혜주는 안방 입구 벽 모서리를 잡고 얼굴을 반만 보이며 서있었다. 내가 일어나자 삼촌도 일어낫다.

"갈래? 술마셨냐, 너?"

나는 대답대신 삼촌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끄으으윽.. 어어헉..."

쏟아지는 눈물과 울음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삼촌이 어쩔 줄을 모르며 혜주에게 여보 당신은 들어가 있지라 했지만 혜주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걸아왔다. 삼촌이 입을 뗐다.

"너.. 이러면 안돼. 남녀간의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네 여자친구였지만, 이 사람이 그러는데 너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는 말이야.. 너도 맘을 잡아야지..." 변호사가 법정 심문하듯 이야기했다.

눈물이 병신처럼 콸콸 쏟아졌다.

"끄으으...왜, 왜, 왜 그.....랬어?"

"주혁아, 너에게 나쁜 짓을 한 게 되었다만, 혜주는...."

"그..거..말..고..이..병..신..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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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경.희. - 에필로그
며칠이 흘렀는지 몰랐다. 고열과 오한으로 초가을임에도 두터운 캐시밀런담요를 머리위까지 끌어올려 죽음과 같은 잠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과일을 사라는 트럭 녹음기에 잠시 깨었던 것 같았고 미친년처럼 울려대는 핸드폰과 초인종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던 기억도 있었다. 꿈들은 더 가관이었다. 숙모와 삼촌과 혜주와 박승기와 김태주와 홍석과 현규와 작은 이모가 나를 에워싸고 우하하 호호호 웃는 꿈이 두차례나 연속으로 꿔졌고 그 포위망에서 나를 감싸주며 그들을 물리쳐 준 이가 다름아닌 모친이었다. 그 여자는 회사 사무실로 내 손을 이끌어 사장실로 박차고 들어가 나를 다시 회사에 복직시켜 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20층 빌딩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나와 나의 모친을 제지하려 아비귀환의 장을 연출했다. 부끄럽고 괴롭고 죽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모든 것을 모친의 활약과 언성에 의지하고 있었다. 사장을 위시한 모든 직원들이 내 입과 틀어막고 팔을 비틀며 땅바닥에 머리를 쳐박자 모친이 달려들어 긴 칼로 그들의 팔을 잘라내고 있었다. 내 아들, 내 새끼...을 외쳐대며...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나흘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수십통의 음성과 문자가 남겨져 있었는데 대다수가 홍석과 태주와 회사에서 온 걱정어린 메시지들이었다. 승희는 홍석이가 보유한 최고의 타자답게 박승기와의 첫 대면을 성공적으로 런치시켰다 홍석이가 득의양양하게 자랑했고, 그의 목소리는 아마도 박사장이 승희를 강제로 범하도록 상황과 분위기를 잘 만들었을테며 박사장의 정액과 자신의 피복조각과 승희의 핸드폰사진 몇장으로 증거물을 확보하리라는 초기 설계도면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승희의 사촌오빠가 등장하여 박사장과 대면할테고 이가 크던 작던 난관이 봉착되면 내가 태주에게서 빼낸 그의 회사의 이중장부와 그의 아이들의 신상정보가 팔로우업이었다. 홍석이는 며칠간 컨택이 되지 않아왔던 내가 그래서 그리도 그리웠를테다. 김태주의 메시지도 상당히 많았으나 여자의 자존심으로 연락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압축된 문자메시지에서 엿볼 수 있었다. 보고싶어 연락했다는 뉘앙스는 전무했고 단지 그녀는 회계장부 처리법을 가르쳐 달라는 나의 요구때문에 연락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했다. 혜주의 메시지가 뜻밖이었다. 오빠, 많이 안 좋아?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기다릴께..^^라는 문자외에 몇번의 전화수신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내 상황과 고민을 가장 깊게 알고 있는 그녀인지라 출처모를 동지애와 그리움 같은 것이 일었다.

숙모로부터의 전화는 새 통화와 무슨 일 있어?라는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몸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나흘만에 배속을 가득채운 물이 다시 거꾸로 솟아 변기통에 입으로 코를 통해 우르르르 쏟아져 나왔다.

오피스텔을 빠삐용의 마음으로 그러나 거북이의 걸음으로 탈출했다. 조그마한 흰 종이에 예쁜 글씨체로 적힌 메모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괜찮은거지? 전화해. 꼭.라 씌여 있었다.

도대체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나의 출현에 쌍수를 들고 맞아줄 홍석과 태주를 만나 박사장과 맞설 기운을 차리고 추스릴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며 숙모나 삼촌을 찾아가 나의 궁금함을 속 시원히 충족시켜줘야 하는지, 아니면 혜주라도 찾아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섹스를 나누며 정신적인 안식처라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회사에 가서 구구절절히 변명하고 이유를 달아가며 벌써 잘려나갔을 나의 자리를 구걸해야 하는지.... 정말 도대체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유로를 거침없이 달리고 올림픽대로에서 꽉 막혀 반나절을 보냈다. 홍석이와 태주의 전화가 몇번 울렸으나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아서 나의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려 반나절내내 밀려드는 외로움을 위로받고 싶었으나, 설령 그랬다해도 딱히 그들에게 할 말도 없었고 그들의 원망에 대응해 줄 기력도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여의도 한강둔치에 차를 세웠다. 캔맥주를 치익 따서 입구멍에 들이부었다. 콸콸 쏟아져 내려와 어느새 가벼워져버린 오비라거 맥주깡통을 보며 내 가슴 속에 가득차 있는 두엄덩이들을 무식한 삽으로 퍽퍽 퍼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내 얼굴이 시뻘개진 하늘에 바람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날라다녔다.

핸드폰이 간암환자처럼 울렸다. 삼촌이었다. 망설이다 받기로 결정할만큼 나에겐 누군가가 필요했다.

"........"

"여보세요. 주혁이냐? 나다 삼촌."

"........."

"듣고 있냐? 이 자식아, 말 좀 해."

"..........뭐..?" 나흘만의 첫 목소리라 땅끝부터 끌어올리느라 애먹엇다.

"너 뭐 하나만 물어보자."

".........."

"듣고 있냐고?"

"...뭔..데...?"

"너 미나애미랑 어떤 사이야?"

"........"

"빨리 말 못해? 니들 그렇고 그런 사이 맞지?"

"...지랄하지 ..마."

"내가 이것들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더라니..." 나에게나 숙모에게나 자신의 혜주와의 관계도 미안해야 할 입장에서 큰 소리가 점점 커지는 모양이 아마도 이혼소송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인가 보다, 아마도 녹음기라도 하나 꽉 쥐고 전화를 하나보다 생각이 훽훽 지나갔다.

"....생각하는 거 하고는... 나이를 똥꾸멍으로 쳐먹었냐?"

"뭐 이 자식아? 그런데 이거 뭐야? 응?"

"뭐가.. 뭔데?"

"니 외숙모 오늘 손목 끊었다.. 너한테 보내는 편지 써놓고...이거 뭐냐.. 이거 뭐냐고? 엉? 엉?"

"......."

"이 시발 것들이 나를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

"혜주년도 다 니가 작당한거지? 여런 쥐새끼 같은 것들.."

".......병원..이 어디..야?"

"니가 찾아가서 뭐하게 이런...나쁜 자식아...."

"어....디....냐고?"

"왜 니 둘이 병원에서 뒹굴어먹을라고?...이런...." 숙모가 살아있었다.

"야이 씨발좇같은 아저씨야... 숙모 죽는게 중요하냐 니 지랄이 중요하냐.. 빨리 말 안해?"

개거품을 그득 문 삼촌에게 빠른 대답이 나오기는 만무했기에 전화를 끊고 대신 미나에게 물었다. 미나도 몰랐다. 서울에 병원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만큼 모두 전화를 걸었고, 숙모는 집 근처 그리 크지 않은 개인 종합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다 들었다.

뜻밖에도 혜주가 숙모 옆을 지키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숙모가 남겨 두었다는, 그리고 삼촌이 마음대로 훼손했을 것 같은 봉투 속의 편지를 받아 쥐었다. 숙모의 얼굴이 줄기에서 떨어져 까맣게 타들어버린 목련꽃 같았다.

"괜..찮대니?" 혜주에게 물었다.

"...응..." 혜주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이런..씨..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목이 메었다.

"어어...흐흐.억억..." 난 그 당시에도 혜주를 몰랐다.

"......."

"허어어어엉... 내가... 내가... 미안해.. 오빠 숙모..에게..헝헝.. 너무 상처를... 줬어..엉허허."

"그만 해.." 보지도 않고 얘기했다.

"으으으흑흑.." 입을 가리고 울음을 참자 소리가 더 커졌다.

간호사의 제지를 받고 둘이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꺼내 혜주에게 건넸다. 화장기 지워지고 눈이 퉁퉁 부은 혜주는 지나가는 남자들이 혜주를 돌아보고 노려보고 입벌리고 보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시발년이야."

"......."

"나만 없었으면..."

"내가 시작한거야."

"........으흐흐흑..." 다시 울기 시작해서 어깨를 감싸안아줬다.

"미안하다."

"...오빠, 나 임신 한 것 같아.."

숙모의 편지는 생각보다 짧은 글이 써 있었다.

주혁아. 미안해. 너 힘든 거 알아. 내가 너에게 더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너에게 지울 짐이 너무 커서... 다 용서해라. 모두들 용서해드려.

숙모와 미나와 승준인 소와 양이 사람보다 많다는 뉴질랜드로 떠났다.

혜주가 어디론지 자취를 감췄다며 삼촌으로부터의 길길이 날뛰는 전화가 여러 통화 왔었다.

홍석이와 승희는 박 사장과 전쟁을 치루웠고 누구도 승자가 없는 결과를 낳았다고 여러번 나에게 동참을 윽박지르는 연락이 왔었다.

망구는 몇 해 지나 병을 얻어 자리에 오래 누워있고 내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전해들었다.

나 박 주혁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여 지금도 건재하다.

그리고... 그 후로 4년인가 지난 올해...

숙모 경희가 뉴질랜드로부터 돌아왔다. 다시 만난 그 날 삼성동 현대백화점앞 작은 공원에서 그녀가 내게 건네준 웃음은 눈이 부셔서 까무러쳐 쓰러질 뻔 했다.